PHILOSOZZY

ESSAY / 040

사소한 엇박자에 져주는 이유

Why We Yield to Small Off-Beats

원칙은 큰일에나 세우고, 작은 일에는 그냥 져준다.

글
사월
발행일
주제
알베르 카뮈 · 임마누엘 칸트 · 실수
테이블과 등 돌린 두 사람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 골목 어귀의 작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선다. 바깥의 열기와 소음이 닫히는 문 뒤로 물러서고, 주방 환풍기 돌아가는 일정한 기계음만이 빈 공간을 메운다. 테이블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주문을 하려 고개를 든다. 다가온 직원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 물병을 테이블 위에 툭 소리가 나게 내려놓고는, 메뉴판을 건넬 때도 눈길 한번 마주치지 않는다. 무엇 드릴까요 묻는 목소리는 짧고 건조하다. 주문을 받아 적고는 대답 한마디 없이 고개만 까딱이더니 곧장 주방으로 몸을 돌린다.

손님으로서 기대하는 최소한의 예의나 상냥한 인사는 어디에도 없다. 함께 온 사람의 표정이 굳고, 숟가락을 집어 들던 손이 허공에서 멈춘다. 누군가는 참지 않고 곧장 따져 물을 것이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왜 그러냐며 직원을 불러 세우거나, 사장을 불러 서비스가 왜 이 모양이냐며 드잡이할 수도 있다. 영수증 리뷰에 별점 하나를 남기며 점원의 불친절을 고발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틀린 행동이 아니다.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는 자리에서 기본적인 예의를 요구하는 것은 손님의 분명한 권리다. 약속된 기준과 직업적 상식을 앞세우는 지적은 언제나 흠결 없이 명확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물기 맺힌 컵 표면을 만지작거리며 멀어지는 직원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오늘 저 사람에게 무언가 말 못 할 걱정거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어디가 몹시 아프거나, 방금 주방 안쪽에서 심한 꾸지람을 들었거나, 오늘 하루를 온통 무너뜨릴 만큼 힘겨운 소식을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손님에게 건넬 표정 하나 챙기지 못할 만큼 고단한 사정이 저 사람에게도 있을지 모른다고 가만히 짐작해 본다.

왜 한쪽은 잘못을 따져 물으며 시비를 가리려 들고, 다른 한쪽은 모르는 척 그냥 져주는 쪽을 택하는 것일까.

원칙의 잣대로만 따지자면 직원을 나무라는 쪽이 백번 옳다. 손님을 맞이하는 직업인이 불친절한 태도로 응대하는 것은 분명 태만이자 결례다. 그 잘못을 지적하고 사과를 받아내는 일은 어렵지도 않다. 정당한 권리를 쥔 손님의 위치에 서서 규정을 상기시키는 일만큼 확실한 일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틀린 말 했어라는 반문 뒤에 서면 누구든 손쉽게 당당해진다.

하지만 직원을 세워두고 낯빛을 붉히며 기어이 잘못을 인정받아 냈을 때, 손에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상대를 굴복시켰다는 짧은 우월감 뒤로, 모처럼의 식사 자리를 망쳐버린 텁텁한 뒷맛과 피로감이 찾아온다. 지적을 당한 사람은 부끄러움과 수치심 때문에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아걸고, 지적을 한 사람은 자신이 정당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느라 식사 내내 상대의 다음번 행동을 날카롭게 감시한다. 맞는 말로 상대를 몰아붙일수록 식탁은 숨 막히는 공간으로 변하고 만다.

우리는 왜 일상의 사소한 결함 앞에서 번번이 재판관처럼 굴고 싶어 하는가. 세상의 거대한 불의나 구조적인 부정 앞에서는 침묵하거나 슬그머니 타협하면서도, 왜 식당 점원의 굳은 얼굴이나 곁에 있는 사람의 사소한 말실수 앞에서는 이토록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드잡이하려 드는가. 상대를 바르게 고쳐놓겠다는 그 올곧은 열망이, 역설적으로 그 사람이 오늘 하루를 버텨낼 수 있는 작은 숨구멍마저 틀어막아 버린다.

알베르 카뮈는 1940년대에 남긴 작가수첩의 한구석에 짧은 문장 하나를 적어두었다. '원칙은 큰일에나 적용할 것, 작은 일에는 연민으로 충분하다.'

카뮈가 평생을 바쳐 바라본 인간은 흠 하나 없는 대리석 조각상이 아니었다. 지중해의 뜨거운 햇볕 아래 땀을 흘리고, 가난과 질병 속에서 비틀거리며, 언제든 헛발을 디딜 수 있는 살갗을 가진 나약한 생명이었다. 소설 '페스트'에서 오랑 시를 덮친 역병을 마주했을 때, 그가 주목한 것은 신의 징벌과 회개를 부르짖으며 재앙의 도덕적 원인을 따져 묻던 성직자의 거창한 교리가 아니었다.

소설 속 오랑 시의 의사 리외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성실하게 아픈 자를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절실했던 것은 누가 죄를 지었는가를 심판하는 일이 아니라, 피고름이 흐르는 환자의 이마를 닦아주고 붕대를 감아주는 소박한 일상의 손길이었다. 거대한 이념과 신념이 구체적인 인간의 생명을 제물로 바치라 요구할 때, 카뮈는 그 거창함을 단호히 거부했다. 진정으로 단단해야 할 원칙은 인간의 존엄과 폭력에 대한 거부 같은 커다란 기둥에나 세워두는 것이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투른 걸음걸이마다 들이댈 잣대가 아니라는 통찰이었다. 식당 직원의 굳은 표정 뒤에 숨겨져 있을지 모를 어떤 피로와 슬픔을 헤아려보는 일, 그것이야말로 카뮈가 말한 구체적인 연민의 표정이다.

인터넷의 초기 통신 규약을 정립했던 컴퓨터 과학자 존 포스텔의 생각도 이와 같은 궤적을 그린다. 수많은 기계와 개발자들이 얽혀 돌아가는 거대한 네트워크 시스템을 설계하면서, 그는 유명한 견고함의 원칙을 명시했다. 자신이 전송하는 규약은 보수적으로 엄격하게 지키되, 타인으로부터 받아들이는 데이터는 조금 어긋나거나 불완전하더라도 너그럽게 수용하라는 원칙이다.

만약 네트워크의 모든 수신기가 상대방 패킷의 사소한 포맷 오차나 띄어쓰기 결함을 이유로 연결을 끊어버린다면, 전 세계의 통신망은 단 하루도 멈추지 않고 돌아갈 수 없다. 상대가 보낸 신호가 약속된 규칙에서 조금 벗어났더라도, 그것을 오류로 낙인찍어 버리는 대신 어떻게든 뜻을 해석해 다음 단계로 넘겨줄 때 시스템은 마비되지 않는다. 큰 뼈대를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기에, 사소한 오차를 품어낼 수 있는 품이 생기는 법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선의 맞은편에서, 임마누엘 칸트의 단호한 물음이 앞을 가로막는다. 작은 일이라며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원칙은 대체 언제 지켜지는가.

칸트에게 도덕은 상황이나 상대의 처지에 따라 늘어났다 줄어드는 편리한 고무줄이 아니었다. 인간이 존엄한 존재로 설 수 있는 이유는 감정이나 동정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세운 보편적 도덕 법칙에 복종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살인자에게 쫓기는 친구를 집 안에 숨겨두었을 때조차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극단적인 지점까지 사유를 밀어붙였다.

친구를 살리고 싶다는 애틋한 정이나 인간적인 동정 때문에 거짓말이라는 예외를 허용하는 순간,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사회의 보편적 약속 전체가 무너져 내린다는 준엄한 경고였다. 오늘 식당 점원의 불친절을 사정이 있겠거니 넘겨주고, 내일 누군가의 업무 태만을 연민으로 눈감아주기 시작하면, 규칙은 어느새 힘 있는 자의 편의나 자의적인 기분에 따라 흔들리는 누더기가 되고 만다. 원칙의 엄격한 뼈대가 사라진 자리에는 결국 자의적인 특혜와 감상적인 무질서만이 번져갈 뿐이다.

원칙에 작은 틈 하나도 내어주지 않으려는 칸트의 엄격함과, 그 사소한 틈새에 연민을 두어야 인간이 숨을 쉰다는 카뮈의 시선은 정면으로 맞부딪힌다.

어느 한쪽의 손을 쉽게 들어줄 수는 없다. 원칙 없는 연민은 무엇이 옳은지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나태한 방임으로 미끄러지기 쉽고, 연민 없는 원칙은 살아 있는 사람의 숨통을 조이는 잔인한 차가움이 된다. 칸트가 세운 원칙의 뼈대가 없다면 우리는 서로를 믿고 기댈 수 있는 단단한 바닥을 잃어버리고, 카뮈가 남겨둔 연민의 여백이 없다면 그 바닥은 너무나 딱딱해서 넘어지는 모든 사람의 무릎을 깨뜨려버린다. 삶은 정답을 하나 골라 잡는 일이 아니라, 이 두 가지 상반된 요구 사이에서 팽팽한 줄을 타며 불협화음을 견뎌내는 일에 가깝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에 섰을 때, 점원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영수증을 내민다. 영수증을 찢어 건네는 손마디가 물기에 붉게 튼 것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내 손에 쥐어진 정당성의 잣대를 가만히 내려놓게 된다. 굳이 굳은 표정을 탓하거나 시비를 가리지 않고, 잔돈과 영수증을 받아 챙기며 잘 먹었습니다라는 짧은 인사를 건네고 문을 나선다.

작은 일에 기꺼이 져주는 일은 결코 패배가 아니다. 그것은 무례함에 굴복한 비겁함도 아니다. 큰 뼈대를 가슴속에 단단히 세워둔 채, 오늘 하루 저마다 감당하기 힘든 짐을 지고 비틀거리는 타인의 거친 엇박자를 탓하지 않고 다음 마디로 호흡을 넘겨주는 일.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일상을 연주해 나가기 위해 남겨두어야 할, 가장 조용하고도 단단한 연민의 자리다.

출처

  1. Carnets II (janvier 1942 - mars 1951)Éditions Gallimard원전
  2. La Peste (페스트)Éditions Gallimard원전
  3.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도덕 형이상학 정초)Johann Friedrich Hartknoch / Felix Meiner Verlag원전
  4. Über ein vermeintes Recht aus Menschenliebe zu lügen (인간애 때문에 거짓말할 권리에 대하여)Berlinische Blätter / Felix Meiner Verlag원전
  5. RFC 791: Internet ProtocolIETF / Information Sciences Institute원전
  6. Albert Camus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Stanford University
  7. Kant's Moral Philosophy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Stanford University
  8. Undercurrent - Bill Evans & Jim Hall (United Artists / Blue Note)Blue Note Records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