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ZZY

ESSAY / 058

슬퍼하기엔 남은 날이 너무 길다

비극의 각본을 찢고 미래의 나를 스스로 돌보려는 가장 현실적인 자립의 손길.

글
사월
발행일
주제
C.S. 루이스 · 행동 · 상실
오늘하루도

현관문 앞에 놓인 택배 상자의 테이프를 뜯자, 완충재에 감싸인 크고 작은 플라스틱 약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종합비타민과 오메가3, 비타민 C와 비타민 D, 그리고 운동을 위해 함께 주문한 크레아틴과 아르기닌 용기들. 원래라면 주말 저녁에 마시다 남은 빈 맥주캔이나 배달 음식 용기가 놓여 있었을 부엌 식탁 한가운데에, 뚜껑을 갓 뜯은 영양제들이 줄 맞춰 섰다.

달력을 확인해 보니 관계가 끝난 지 정확히 4주째 되는 날이었다.

1년 회원권을 끊어둔 헬스장에는 주 2회 대신 4회씩 나가기로 했다. 정해진 예약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언제 몇 번을 갈지는 온전히 내 몫의 계획이자 자유였다. 퇴근길 편의점에서는 으레 집어 들던 맥주 네 캔 대신 무설탕 껌과 탄산수를 골랐고, 언젠가 끊겠다고 미뤄두었던 담배 역시 이번 주말을 기점으로 서랍 깊숙이 밀어 넣기로 했다.

돌아보면 관계가 끝난 직후에도 대단한 눈물이나 극적인 통곡 같은 것은 없었다.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소리 내어 울거나 오열하는 일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찾아온 것은 대단한 감정의 폭풍이 아니라, 그저 마음 한구석이 휑하니 뚫린 듯한 헛헛함과 멈추지 않는 과거의 반추였다. '그때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내가 도대체 어디서 잘못된 선택을 내렸던 것일까', '어느 갈림길에서 다른 결정을 내렸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퇴근 후 불 꺼진 방에 앉아 지난 대화의 조각들을 몇 번이고 되감아보며, 이미 엎질러진 선택지를 끝없이 곱씹는 생각의 헛바퀴가 이어졌다.

하지만 4주 동안 지난 일에 매달려 시간을 보낸 끝에 손에 쥔 것은, 후회 대신 눈앞에 닥친 명확한 현실이었다.

"나는 이제 독거노인이 될 확률이 99퍼센트다."

부엌 식탁 위에 줄지어 선 약병들을 내려다보며 머릿속으로 두드린 셈법에는 어떤 감상도 섞이지 않았다.

대중문화가 오랜 세월 길들여온 실연의 각본은 언제나 요란한 비극의 주인공 역할을 요구한다. 눈물을 쏟아내며 옛 번호로 전화를 걸거나, 비 내리는 골목길을 정처 없이 걷거나, 불 꺼진 방에서 슬픈 노래를 틀어놓고 식음을 전폐하는 것은 멜로드라마가 오래도록 우려먹은 익숙한 도식이다. 세상은 사랑을 잃은 사람에게 얼마간의 극적인 방황과 자기 파괴를 기대하며, 그 아픔을 비장한 예술의 영역으로 포장해 주곤 한다.

그러나 실제의 삶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전혀 다르다. 멜로드라마의 과장된 절망과 달리, 현실의 일상은 무섭도록 평범하게 굴러간다.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야 하고, 책상 앞에서는 밀린 업무를 처리해야 하며, 월말이면 카드 대금 청구서가 도착한다. 무엇보다 분명한 사실은, 혼자 남겨진 방 안에서 몸져누웠을 때 문을 열고 들어와 곁을 지켜줄 사람이 이제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깨진 관계의 잔해 위에서 영양제를 주문하고 운동 횟수를 늘리는 행위는, 얼핏 보면 옛 연인에게 보란 듯이 건강한 모습을 증명하겠다는 유치한 승부욕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바탕에 깔린 셈법은 단순한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장면들을 아무리 되짚어본들 이미 흘러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타인의 마음이나 인연의 행방은 인간이 결코 손댈 수 없는 통제 밖의 영역이다. 아무리 자책하고 대화를 되감아보아도, 이미 닫힌 상대의 문을 열 수는 없으며 지난 계절의 약속을 되돌릴 방법도 없다.

생각의 늪에 갇혀 제자리를 맴돌던 시간에서 물러나야 했을 때, 사람은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려 즉각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영토를 확인한다. 그것은 바로 내 위의 소화력이고, 내 다리의 근육량이며, 오늘 내 손으로 삼킬 수 있는 비타민 한 알의 물리적 실체다. 바깥을 향하던 무력한 시선을 거두어 온전히 내 권능 안에 남은 신체의 감각을 정돈하는 일은 도피가 아니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묶여 있던 일상을 지금 통제 가능한 최소 단위로 환원하는, 가장 현실적인 자립의 출발점이다.

20세기 영국의 영문학자이자 사유자였던 C.S. 루이스는 1961년에 펴낸 회고록 《헤아려 본 슬픔》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마주했을 때 인간에게 닥쳐오는 고통의 실체를 누구보다 정밀하게 기록했다. 4년 남짓의 짧은 결혼 생활 끝에 아내 조이 데이비드먼을 암으로 먼저 떠나보낸 루이스에게 찾아온 것은, 신학자로서 다루어왔던 거창한 종교적 비탄이나 형이상학적 회의가 아니었다.

루이스는 책의 첫 문장에 이렇게 썼다. "슬픔이 공포와 이토록 비슷하다고 내게 말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목격한 비탄의 본질은 속수무책일 만큼 원초적인 신체의 마비였다. 위장이 끊임없이 울렁거리고, 목구멍으로는 마른침이 넘어가며, 가슴은 답답하게 조여들고, 팔다리는 뇌진탕을 겪은 사람처럼 힘없이 풀려버렸다. 세상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두꺼운 유리벽이 쳐진 것처럼 모든 감각이 둔탁해졌고,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육체를 짓눌렀다.

오랜 세월 신의 섭리를 유려한 문장으로 변증해 왔던 그였지만, 무너져 내리는 육체 앞에서는 어떤 관념적인 위로도 힘을 쓰지 못했다. 무너져 내리는 일상 한가운데서 그를 지탱해 준 것은 신학적인 명제가 아니라, 매일 억지로 숟가락을 들어 식사를 넘기고, 마당으로 걸어 나가 다리를 움직이며 신체의 가장 기본적인 동작을 재가동하는 물리적인 행위였다. 비탄을 견뎌내는 일은 마음을 고쳐먹는 일이기 이전에, 고장 난 신체의 리듬을 하루하루 이어 붙이는 지극히 노동 집약적인 수고였던 셈이다.

상실을 대하는 태도에는 오래된 두 갈래의 길이 있다. 1774년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발표한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그 첫 번째 길의 끝에 서 있다. 베르테르는 사랑의 좌절을 낭만주의적 비극의 절대적인 클라이맥스로 끌어올렸다. 로테와의 단절 앞에서 그는 일상의 모든 균형을 내던졌고, 슬픔에 도취된 채 스스로 파멸을 선택함으로써 영원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남고자 했다. 낭만주의는 이처럼 고통에 숭고한 면류관을 씌워주지만, 그 환상에 취하는 대가로 인간의 내일을 완전히 태워버린다.

그 대척점에는 1759년 볼테르가 쓴 철학 소설 《캉디드》의 결말이 놓여 있다. 주인공 캉디드는 세상의 온갖 전쟁, 지진, 약탈, 배신을 겪으며 모든 순진한 낙관론이 산산조각 나는 과정을 통과한다. 세상이 정의롭지도 안전하지도 않다는 뼈아픈 진실을 확인한 캉디드는,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가를 놓고 끝없이 입씨름을 벌이던 학자들의 논쟁을 끊어내며 마지막 문장을 던진다.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합니다."

세상의 거대한 악이나 운명의 잔인함을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눈앞에 놓인 작은 밭에 채소를 심고 잡초를 뽑는 구체적인 수고는 인간을 세 가지 큰 악, 즉 권태와 방탕과 궁핍에서 건져준다는 통찰이다.

볼테르의 결론이 세상의 모순과 거리를 둔 채 한적한 시골 영지에서 흙을 만지는 은둔의 평화였다면, 현대인에게는 도망칠 정원이나 영지가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보증금과 월세가 걸려 있는 좁은 방, 아침마다 몸을 구겨 넣어야 하는 만원 지하철, 매달 납부해야 하는 공과금의 세계 한가운데서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매일 챙기는 영양제와 체육관에서 이어지는 규칙적인 운동은, 볼테르의 정원을 지금 우리의 일상으로 옮겨온 변주다. 루이스가 신앙의 깊은 밤을 통과하며 신체 감각을 회복하려 애썼다면, 오늘날의 1인 생활자는 비타민의 성분표와 스쿼트의 세트 수라는 계산 가능한 규칙을 통해 하루의 무력감을 돌파한다.

누군가를 향했던 기대가 흩어졌을 때, 주저앉아 지난 선택을 자책하기에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너무도 길다. "독거노인이 될 확률이 99퍼센트"라는 말은 언뜻 자조적인 농담처럼 들리지만, 실은 타인에게 내 삶의 돌봄을 의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인정하는 명확한 자립의 선언이다.

언젠가 닥쳐올 노쇠와 고립 앞에서 나를 지탱해 줄 자산은 오직 매일 단련해 둔 근육과 관절뿐이다. 미래의 나를 돌볼 사람이 오직 지금의 나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공허한 생각과 자책의 굴레는 오늘 당장 술을 줄이고 운동화 끈을 조여 매게 만드는 일상의 규율로 탈바꿈한다. 비극의 각본을 거부하고 생활인의 셈법을 택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낭만주의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삶을 지속하는 힘이다.

부엌 싱크대 옆 정수기에서 물이 찰랑거리며 컵에 차오른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노란색 오메가3 캡슐과 종합비타민, 흰색 아르기닌 알약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물과 함께 그것들을 목구멍 뒤로 넘기고 나면, 묘하게 목덜미가 꼿꼿해지는 기분이 든다.

신발장 앞에서 러닝화 매듭을 바짝 죄어 매고 현관문을 나선다. 밤공기는 적당히 차갑고, 아파트 단지의 가로등 불빛 아래로 퇴근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누군가와 함께 걷던 길이었지만, 혼자 걷는다고 해서 보폭이 줄어들 이유는 없다. 오히려 내 속도와 내 호흡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걸음걸이다.

관계가 남긴 여진도 달력의 몇 칸을 건너오고 나면 평범한 일상으로 수렴된다. 지난 일을 곱씹으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대신, 내일 아침 거울 앞에서 눈을 뜰 미래의 나를 위해 영양제 뚜껑을 열고 체육관의 무거운 문을 밀어젖힌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붙들고 삶을 소진하는 대신, 오늘 챙겨야 할 끼니를 챙기고 근육을 움직이며 1인분의 삶을 가꾸어 나가는 일. 지난 계절의 그림자를 털어내고, 스스로를 책임지는 성실한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

출처

  1. A Grief ObservedFaber and Faber (C.S. Lewis, 1961)원전
  2. C.S. Lewis: A Life - Eccentric Genius, Reluctant ProphetTyndale House Publishers (Alister McGrath, 2013)
  3. Candide, ou l'OptimismeOxford World's Classics (Voltaire, trans. Roger Pearson, 2006)원전
  4. Voltaire: A LifePegasus Books (Ian Davidson, 2010)
  5.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Oxford World's Classics (J.W. Goethe, trans. David Constantine, 2012)원전
  6. Cool Struttin' (Blue Note BLP 1588)Blue Note Records (Sonny Clark, recorded by Rudy Van Gelder)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