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 038
무대를 내어주는 사람
The One Who Yields the Stage
말이 앞서는 조언을 멈추고 그가 스스로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뒤에서 바닥을 받쳐줄 때 비로소 사람은 자라난다.

화요일 오후 세 시, 탕비실의 커피 머신에서 둔탁한 진동과 함께 검은 액체가 종이컵 바닥을 채운다. 얇은 플라스틱 뚜껑을 닫고 자리로 돌아오면, 파티션 너머로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는 신입 동료의 굳은 어깨가 보인다. 그가 열어둔 기획서 파일에는 깜빡이는 커서 주위로 몇 줄 쓰다 만 문장들이 흩어져 있다.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은 내일 오전 열 시. 이대로 두면 분명 프레젠테이션 중간에 말이 막히거나, 상대의 날카로운 질문에 진땀을 흘리며 당황할 것이 뻔히 보인다.
"이 부분은 내가 먼저 정리해 둘 테니까, 회의 때는 뒤에서 지켜보기만 해요." 목구멍까지 차오른 그 말을 건네기 위해 책상 곁으로 다가선다. 직접 키보드를 넘겨받아 익숙한 속도로 문서를 채워 넣으면 일은 한 시간 만에 매끄럽게 끝날 것이다. 실패할 위험도 없고, 내일 회의실에서 어색한 침묵이 흐를 일도 없다. 상대에게 실전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명분은 얼마나 다정하고 빈틈없는가.
하지만 모니터를 향해 뻗으려던 손길이 허공에서 멈칫한다. 잔뜩 긴장한 채 마우스를 쥔 채 문장의 실마리를 찾아보려 애쓰는 그의 눈빛이 시야에 들어온다. 키보드를 넘겨받으려던 그 친절한 손길 뒤편에서, 불쑥 낯익은 감정 하나가 고개를 든다. 그것은 정말로 저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내일의 회의가 내 통제를 벗어나 삐끗거리는 꼴을 차마 견디지 못하는 은밀한 조급함이었을까.
우리는 누군가를 가르치고 이끈다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입을 연다. "내가 먼저 겪어봐서 아는데", "그렇게 하면 반드시 막힌다"는 말들을 방패처럼 앞세우며, 상대가 걸어갈 길목마다 친절한 표정으로 사전 경고를 깔아둔다.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주고, 낭떠러지를 미리 가리켜주는 것이 선배이자 어른의 도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르치려는 이의 성급한 말들이 쏟아질수록, 배우는 사람의 세계는 이상하게도 점점 더 좁아진다. 귀로 쏟아져 들어오는 무수한 지침과 주의사항 속에서, 그는 실패를 피하는 요령은 배울지언정 자신이 내디딘 발걸음의 무게를 느껴볼 기회는 잃어버린다. 모든 위험이 사전에 차단되고 모든 답이 말로 건네진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순간 무엇을 디뎌야 할지 알지 못해 그대로 굳어버린다.
20세기 초, 철학자 존 듀이는 교실이라는 밀실에서 벌어지던 전통적인 교육의 허상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지식이란 교사의 입에서 학생의 귀로 고스란히 쏟아부어질 수 있는 완성된 물건이 아니라고 보았다. 듀이가 주목한 진짜 배움은 유기체가 세상과 직접 부딪치는 '행함(Doing)'과, 그 행동이 몰고 온 결과를 온몸으로 감당해 내는 '겪음(Undergoing)'의 팽팽한 상호작용 속에서만 일어난다. 자신이 직접 손을 뻗어 환경을 건드려보고, 그로 인해 밀려오는 파도와 저항을 몸으로 받아내며 스스로 균형을 고쳐 잡는 시간. 그 직접적인 부딪침의 순간을 빼앗긴 채 말로만 채워진 지식은, 결코 한 인간의 살과 피가 되지 못한다.
타인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지 못하는 조급한 마음은 실은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결과가 어그러지는 꼴을 보지 못하는 우리의 나약함이며, 상대가 비틀거리는 순간을 품어줄 여유가 없는 우리 안의 옹졸한 통제욕의 다른 이름이다.
1958년 10월 30일, 뉴욕 근교 뉴저지주 해컨색에 자리 잡은 루디 반 겔더의 스튜디오. 은색 마이크와 묵직한 방음 도어가 둘러싼 아늑한 공간에 다섯 명의 연주자가 둘러앉아 있었다. 드럼 세트 뒤에는 서른아홉 살의 베테랑 드러머 아트 블래키가 앉아 있었다. 당시 재즈 씬에서 가장 뜨거운 리듬을 뿜어내던 연주자였지만, 그날 그가 스튜디오로 불러 모은 이들은 스무 살의 트럼펫 연주자 리 모건, 스물두 살의 피아니스트 바비 티몬스, 스물아홉 살의 색소포니스트 베니 골슨이었다. 갓 세상에 발을 디딘 청년 연주자들이었다.
그날 녹음된 앨범이 바로 모던 재즈의 역사적인 명반으로 남게 될 《Moanin'》이었다. 이 앨범에서 블래키는 음악의 주도권을 자신이 틀어쥐지 않았다. 그는 단원들에게 음계를 가르치거나 솔로의 방향을 일일이 지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물두 살의 피아니스트 바비 티몬스가 연습 도중 장난처럼 흥얼거리던 단순한 블루스 모티프에 귀를 기울인 뒤, "바로 그거야, 그걸 곡으로 만들어"라며 앨범의 맨 앞자리에 타이틀곡으로 세워주었다. 색소폰의 베니 골슨에게는 밴드의 자작곡을 쓸 수 있는 전권을 내어주었다.
대신 블래키가 한 일은 밴드의 가장 깊은 바닥에 앉아 온몸으로 북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피아노가 묻고 호른이 답하는 가스펠 풍의 묵직한 블루스 호흡 위로, 스무 살 청년 리 모건의 트럼펫 솔로가 뻗어 나오기 시작할 때 블래키의 진가가 드러난다. 모건의 호흡이 흔들리거나 다음 멜로디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 블래키는 그를 질책하지 않는다. 대신 하이햇을 2박과 4박에 흔들림 없이 꽂아 넣으며, 스네어 드럼 위로 서서히 음량을 부풀려가는 특유의 '프레스 롤(press roll)'을 밀어 올린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드럼 롤의 물결이 연주자의 등 뒤를 떠받친다. 그것은 멈추라는 경고가 아니었다. '내가 여기서 이 박자를 부서지지 않게 받치고 있으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고 네가 낼 수 있는 가장 높은 음을 향해 소리를 질러라'라는 몸의 응답이었다. 단단한 리듬의 안전판이 뒤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 젊은 연주자는 비로소 음을 헛디딜까 두려워하는 공포를 잊고 자신의 한계를 뚫고 나아가는 놀라운 솔로를 터뜨린다.
블래키가 이끌던 '재즈 메신저스'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을 쉼 없이 길러낸 산실이었다. 웨인 쇼터, 프레디 허버드, 키스 자렛, 훗날의 윈튼 마살리스에 이르기까지 재즈의 역사를 새로 쓴 눈부신 이름들이 모두 블래키의 밴드스탠드를 거쳐 세상으로 뻗어나갔다. 사람들은 재즈 메신저스를 가리켜 최고의 배움터라 불렀지만, 블래키는 단 한 번도 선생의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재즈를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자리는 무대 위뿐이다"라는 말처럼, 그는 청년들을 관객의 시선이 쏟아지는 현장 한가운데에 그대로 세워두었다.
여기서 존 듀이의 교육관과 아트 블래키의 실천은 절묘하게 닮아 있으면서도 결정적인 지점에서 갈라진다. 듀이가 구상한 교육은 학교라는 안전하고 구조화된 민주적 실험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질서 있는 탐구였다.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강조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학생을 보호하는 교실의 울타리 안에서 조율되는 배움이었다. 반면 블래키의 무대는 보호벽이 없는 야생이었다. 관객의 환호와 냉혹한 야유가 실시간으로 교차하고, 박자를 놓치면 그 즉시 결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냉정한 현장이었다. 듀이가 안전한 연습장을 설계했다면, 블래키는 관객의 눈빛이 타오르는 실전의 불꽃 속으로 청년들의 등을 떠밀었다.
동시대의 또 다른 거대한 흐름이었던 마일스 데이비스의 방식과 비교해도 블래키의 태도는 뚜렷한 갈림길을 드러낸다. 마일스 역시 수많은 젊은 혁신가들을 무대에 세웠지만, 그의 방식은 엄격했다. 마일스는 최소한의 화성 스케치만 던져둔 채 무대 위에서 극도의 침묵과 비어 있는 여백 속에 연주자를 홀로 세워두었다. 아무런 안전망도 없는 벼랑 끝에 세워두고, 스스로의 힘으로 진공을 뚫고 살아남아 소리를 찾아내게 만드는 고독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블래키는 제자를 고독 속에 방치하지 않았다. 그는 무대를 내어주되, 그 무대가 무너지지 않도록 자신의 두 팔과 두 다리로 누구보다 우직하고 단단한 리듬의 바닥을 지탱했다. 솔로이스트가 비틀거리면 비난하는 대신 더 큰 볼륨의 드럼 롤로 그 실수를 품어 안아 다음 마디의 도약대로 바꾸어주었다. 넘어지는 순간 즉시 다시 박차고 오를 수 있는 탄력 있는 바닥을 등 뒤에 깔아준 셈이다.
그리고 블래키의 태도가 지닌 가장 째지한 정점은 마지막 순간에 찾아온다. 제자가 마침내 충분한 힘을 길러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 블래키는 그들을 결코 자기 곁에 오래 묶어두지 않았다. "이제 네 이름으로 된 밴드를 만들어 내 곁을 떠나라." 그는 청년들을 자신의 영구적인 보조자로 소유하려 들지 않고, 미련 없이 둥지 바깥으로 밀어내며 또 다른 독립적인 연주자로 세상에 돌려보냈다.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고 뒤로 물러서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가 생각한 앙상블의 완전한 완성(Coda)이었다.
자리로 돌아와 식어가는 커피 잔을 쥐고, 파티션 너머의 동료를 다시 바라본다. 그의 모니터에는 여전히 어설픈 문장들이 서툴게 엮이고 있다. 경험 있는 사람의 눈에는 고쳐야 할 빈틈이 수없이 보이고, 내일 회의실에서 그가 맞닥뜨릴 곤혹스러운 순간들이 눈앞에 선명하다.
하지만 책상 위로 뻗으려던 망설임을 거두어 주머니 깊숙이 넣어둔다. 먼저 안다는 이유로 끼어들어 대신 문장을 채워 넣고 자판을 빼앗아 완벽한 문서를 만들어 주는 것은, 그를 돕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성장을 가로채 내 안도감으로 바꾸는 일일 뿐이다.
필요한 것은 완벽한 사전 예방이 아니다. 그가 내일 프레젠테이션의 마이크를 쥐고 비틀거리며 첫 문장을 뗄 수 있도록 무대의 한가운데를 비워주는 일이다. 그리고 회의실 맨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그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부딪혀 휘청거릴 때 언제든 든든하게 받쳐줄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는 시선으로 그 호흡에 박자를 맞춰주는 일이다.
타인에게 가르치려 드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무대의 조명을 온전히 양보할 때, 그리고 그가 마음껏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흔들리지 않는 바닥이 되어줄 때. 비로소 우리는 누군가의 손을 억지로 잡아끌지 않고도, 그가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에 첫 멜로디를 울려 퍼뜨리는 눈부신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출처
- Art Blakey's Jazz Messengers: Straight No ChaserSchirmer Books (Leslie Gourse)원전
- Moanin (Blue Note Records, BLP 4003 / BST 84003)Blue Note Records (Recorded at Van Gelder Studio)원전
- Democracy and Education: An Introduction to the Philosophy of Education (민주주의와 교육)Macmillan Company (John Dewey)원전
- Experience and Education (경험과 교육)Kappa Delta Pi (John Dewey)원전
- The Art of Bop DrummingAlfred Music (John Ramsay)
- NEA Jazz Masters: Wayne Shorter Interview on Art Blakey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