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은 오후 네 시, 창밖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햇살이 회의실 테이블 위의 투명한 유리컵을 길게 통과한다. 모니터에는 이번 분기의 프로젝트 일정표와 빽빽한 데이터 차트가 띄워져 있다. 회의가 두 시간을 넘어가며 사람들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가라앉을 무렵, 테이블 끝에 앉아 있던 동료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이런 방식으로 완전히 판을 바꾸어 접근해보면 어떨까요?"
그가 화이트보드에 쓱쓱 그려 넣은 다이어그램은,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이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는 지난 수년간 축적해 온 경험과 매뉴얼이 즉각적으로 경고음을 울린다. '저 방식은 재작년에 이미 시험해 봤고 실패했다', '업계의 기본 원칙을 조금도 모르는 소리다'. 입가에 익숙한 미소를 띠며 그의 말이 왜 비현실적인지 조목조목 짚어주려던 찰나, 문득 그의 눈빛에 서린 열기와 마주친다. 자동완성처럼 튀어나오려던 반박의 문장들이 목구멍 안쪽에서 잠시 헛돈다.
우리는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진리처럼 믿으며 산다. 공부를 거듭하고, 실패를 겪고, 연차가 쌓일수록 세상의 해상도는 확실히 또렷해진다. 안개 자욱하던 길에서 위험한 웅덩이가 먼저 보이고, 초보자들은 짚어내지 못하는 미세한 결함이나 인과관계가 한눈에 들어온다. 숙련된 이의 눈에는 세상이 질서정연한 공식의 집합처럼 읽히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는 것이 많아지는 일에는 기묘한 그늘이 따라붙는다. 스스로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의 틀이 견고해질수록, 그 렌즈 바깥에 존재하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것'을 넘어 '틀린 것', 혹은 '미숙한 오류'로 쉽게 격하된다. 오랜 세월 우리를 지켜주고 성공을 안겨주었던 방정식이, 어느덧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는 보이지 않는 벽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철학자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의 말처럼, 인간은 결코 진공 상태에서 사유할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자라온 시대, 겪어온 경험, 익혀온 언어라는 한정된 지평 속에 서서 세상을 내다본다. 그 지평은 세상을 분별하게 돕는 유용한 렌즈이지만, 동시에 그 렌즈의 도수와 색깔을 벗어난 풍경을 보지 못하게 막아서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문제는 지평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만이 우주의 유일한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순간 찾아온다. 그때 지식은 세계를 넓히는 문이 아니라, 자신을 가두는 안온한 요새로 굳어버린다.
1959년 5월, 뉴욕의 한 녹음실에서 색소포니스트 존 콜트레인은 앨범 《Giant Steps》의 테이프를 돌리고 있었다. 훗날 연주자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난제로 불리게 될 이 연주는, 서양 기능화성학이 수백 년간 쌓아 올린 기하학적 코드 진행의 절대적인 정점이었다. 장3도 간격으로 맹렬하게 전조되는 화성의 미로 속에서, 콜트레인은 단 하나의 음도 헛디디지 않고 초인적인 속도로 코드를 쪼개며 질주했다. 당시 재즈 씬에서 화성의 문법을 그보다 더 깊고 완벽하게 꿰뚫고 있던 연주자는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해 늦은 가을, 맨해튼 이스트빌리지의 작은 재즈 클럽 '파이브 스팟'에 텍사스 출신의 무명 연주자 오넷 콜먼이 나타났다. 콜먼의 콰르텟에는 화성을 짚어줄 피아노가 없었다. 그는 전통적인 화성 규칙을 완전히 내던진 채, 오직 선율의 자발적인 충동과 호흡에 기대어 거칠고 낯선 소리를 쏟아냈다.
당대 주류 재즈계는 격렬한 조소를 보냈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그는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하며, 연주를 제대로 할 줄도 모른다"고 일갈했고, 당대의 내로라하는 비평가들은 화성도 모르는 사기꾼이 나타났다며 비웃었다. 자신들이 평생을 바쳐 훈련한 복잡한 화성의 잣대로 볼 때, 콜먼의 연주는 그저 규칙을 깨뜨린 미숙한 소음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화성의 탑을 쌓아 올렸던 콜트레인은 그 조롱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다. 그는 파이브 스팟에 거의 매일 밤 나타났다. 구석 바 테이블에 조용히 맥주 한 잔을 올려둔 채, 콜먼의 연주가 끝날 때까지 밤새도록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낮이 되면 콜먼을 직접 찾아가 악기를 마주 대하고 가르침을 청했다. 1960년, 콜트레인은 콜먼 콰르텟의 동료였던 돈 체리와 함께 콜먼의 자작곡을 연주한 음반 《The Avant-Garde》를 녹음했다. 서양 화성의 가장 높은 성채에 도달했던 숙련자가, 자신이 알던 모든 규칙을 내려놓고 낯선 타자의 소리를 기꺼이 받아들인 것이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정점의 기량을 뒤로하고, 모두가 비웃던 낯선 문법 앞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배움을 청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용기일까. 그것은 자신의 테크닉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이해한 세계가 음악의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깊은 자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콜트레인은 훗날 "오넷은 모든 제한을 걷어내고 있었으며, 나는 그에게서 배울 것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콜트레인의 선택은 급진적이었다. 그는 타자의 낯선 시각을 온전히 수용하기 위해 자신이 쌓아 올린 화성의 규칙을 남김없이 부수고, 스스로를 불태우는 구도자적 파괴와 아방가르드의 심연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나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예술의 극단을 향해 삶의 토대를 송두리째 부숴버릴 필요는 없다. 우리가 식탁과 사무실에서 마주하는 타인은 음악사를 뒤엎는 혁명가가 아니라, 저마다의 시선과 기억을 지닌 채 곁에서 살아가는 동료이자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콜트레인이 남긴 태도의 파동은 오늘 우리의 삶에 묵직한 물음을 던진다. 시간이 흐르고 자리가 높아질수록 우리는 자신이 옳다는 확신의 벽을 점점 더 두껍게 쌓아 올린다. 젊은 동료의 서툰 제안이나 파트너의 낯선 시선 앞에서 "내가 다 겪어봤는데"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자신이 쥔 정답을 잣대 삼아 상대를 손쉽게 재단하는 일은 편안하지만, 그 안온함이 남기는 자리는 결국 고립이다. 새로운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밀실 속에서, 스스로 굳어버린 채 바깥 세계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철학자 칼 포퍼의 지적처럼, 인간의 지식이란 언제나 불완전하며 오류의 가능성을 품고 있을 때만 비로소 건강하게 숨 쉴 수 있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말을 늘 주머니 속에 넣어두는 태도는, 스스로의 무지를 자책하는 나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경험과 지식의 한계를 정확히 알기에, 낯선 타인의 소리를 적으로 돌리지 않고 자기 세계의 창문을 넓히는 계기로 삼을 줄 아는 성숙한 단단함이다. 상대가 던진 낯선 불협화음을 오답으로 쳐내는 대신, '저 사람의 눈에는 내가 보지 못하는 어떤 풍경이 맺혀 있는가'를 한 번 더 묻는 선택이다.
블라인드 틈새로 들어오던 오후의 볕이 잦아들고, 회의실 안쪽으로 서서히 어스름이 번져온다. 화이트보드 앞에는 여전히 낯설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다이어그램이 그려져 있다. 예전 같았으면 단숨에 지워버렸을 그 엉뚱한 선들 앞에서, 조용히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본다. 손끝에 만져지는 작은 물음표 하나를 가만히 굴려본다.
우리가 지난 세월 동안 보고 듣고 증명해 온 세상이, 과연 이 넓은 현실의 전부였을까. 목소리와 확신의 볼륨을 조금만 낮추면, 저 사람의 서툰 음계 속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화음이 들려오지 않을까.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그 작고 조용한 인정 하나가, 굳게 닫혀 있던 회의실의 묵직한 유리창을 열고 낯설고 신선한 밤공기를 우리 사이에 불어넣어 줄지도 모른다.
출처
- John Coltrane: His Life and MusicUniversity of Michigan Press (Lewis Porter)원전
- The Avant-Garde (Atlantic Records, Atlantic 1451 / SD 1451)Atlantic Recording Corp.원전
- Wahrheit und Methode: Grundzü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진리와 방법)J.C.B. Mohr (Paul Siebeck) (Hans-Georg Gadamer)원전
-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열린 사회와 그 적들)Routledge (Karl Popper)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