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ZZY

ESSAY / 036

타인의 잔치를 보며 속이 쓰린 밤에

On Nights When Another's Feast Stings

찰리 파커의 비밥과 타인의 성취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대가에 대하여.

글
사월
발행일
주제
찰리 파커 · 르상티망
왕관의 빛과 어둠

늦은 밤, 침대 머리맡에서 무심코 화면을 넘기다 손가락이 멈칫 굳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슷한 고민을 나누며 허름한 식당에서 잔을 부딪치던 지인의 이름이 불쑥 떠오른다. 그가 새로 차린 회사가 막대한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식, 서점 매대 중앙에 큼직하게 걸린 그의 얼굴, 번듯한 아파트 베란다에서 화려한 도시 야경을 내려다보며 적어 올린 짤막한 글귀. 화면 아래로는 수백 개의 축하 댓글과 붉은 하트가 파도처럼 쉼 없이 밀려든다.

축하의 말을 건네려 자판 위에 손을 올리지만, 손가락은 쉬이 움직이지 않는다. 명치 언저리에서 묵직한 돌덩이 하나가 불쑥 치밀어 오르고 속이 쓰리게 조여든다. '저 사람과 나, 출발선은 분명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아득한 거리가 생겼을까.' 화면을 끄자 방 안은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검게 꺼진 액정 위로 낯설 만큼 차갑게 굳은 얼굴 하나가 비친다.

질투는 사람이 품는 온갖 감정 가운데 가장 은밀하게 숨겨지는 마음이다. 슬픔이나 비탄은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위로를 구할 수 있고, 분노는 정의의 가면을 쓰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질투만은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스스로를 한없이 옹졸하고 초라한 패배자로 고백하는 꼴이 되기에, 우리는 이 감정을 가슴 깊숙한 어둠 속에 밀어 넣고 단단히 자물쇠를 채운다.

그리고 그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기 위해 재빨리 냉소의 외투를 덧입는다. '저 사람은 운이 좋았을 뿐이야', '저 회사는 거품이고 실속은 없어',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속이 텅 비어 있을걸.' 상대를 깎아내리고 흠집을 냄으로써 초라해진 마음을 달래보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씁쓸한 공허뿐이다. 타인의 삶에서 가장 찬란한 찰나만 떼어내어 우리의 구겨진 일상과 맞견주는 사이, 마음 안쪽에서는 조급한 비교의 열기가 번져나간다.

19세기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1841년에 발표한 에세이 '보상'에서 인간의 이 기묘한 착시를 일찌감치 꿰뚫어 보았다. 에머슨은 우주에 거저 주어지는 축복이란 없으며, 삶의 모든 거래는 철저한 등가교환의 장부 위에서 결산된다고 역설했다. "모든 과잉은 결손을 낳고, 모든 결손은 과잉을 낳는다. 네가 얻은 모든 것에는 반드시 치러야 할 손실이 있고, 네가 잃어버린 모든 것에는 다른 보상이 따른다."

에머슨의 시선에서 타인의 성취를 부러워하는 태도는, 그 사람이 우주에 지불한 보이지 않는 청구서를 지나치는 일과 같다. 왕관을 쓴 왕의 영예를 탐내는 자는, 그 왕관을 지키기 위해 사방에 도사린 칼날을 경계하느라 평생 평온한 잠을 청하지 못하는 왕의 불면과 고독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타인이 받아 든 화려한 월계관만 손쉽게 떼어내 자신의 머리 위에 얹고 싶어 하지만, 세상의 장부는 결코 단면만을 팔지 않는다. 타인의 영광을 온전히 탐내려면, 그가 영광의 이면에서 감당해야 했던 무거운 침묵과 불안까지 한 묶음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재즈 역사에서 가장 폭발적인 천재성을 뿜어냈던 비밥의 창시자, 색소포니스트 찰리 파커(Charlie Parker)의 생애는 이 등가교환의 법칙이 얼마나 엄혹한지를 증명하는 가장 뼈아픈 현장이었다. 1940년대 뉴욕 52번가의 밤거리, 재즈 클럽 '스리 듀시스'나 '오닉스'의 무대에 찰리 파커가 올라서서 알토 색소폰을 입에 물면 객석의 모든 연주자들은 얼어붙었다.

1945년 11월 26일 뉴욕 WOR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불멸의 트랙 'Ko-Ko'를 들어보라. 번개처럼 내리꽂히는 초인적인 속도, 기존의 스윙 문법을 산산조각 내며 질주하는 복잡한 반음계와 전위적인 아르페지오. 그것은 동시대의 어떤 색소폰 연주자도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었다. 파커의 연주를 들은 젊은 연주자들은 경악과 황홀경에 빠졌고, 곧이어 걷잡을 수 없는 질투와 깊은 참담함에 휩싸였다.

당시 52번가의 젊은 연주자들 사이에는 기괴하고 위험한 미신이 번져나갔다. 파커의 손끝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적 같은 선율의 비밀이 그가 사용하는 마약에 있다는 착각이었다. '파커처럼 날아오르는 비밥을 연주하려면, 파커처럼 헤로인을 맞아야 한다.' 재키 맥린이나 프랭크 모건 같은 수많은 십 대와 이십 대의 유망한 재즈 음악가들이 파커의 연주력을 탐내며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질투에 눈이 먼 나머지 파커의 영광뿐 아니라 그의 파멸까지 맹목적으로 따라 하다가 결국 전과자가 되거나 젊은 나이에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파커의 비밥은 마약의 바늘 끝에서 피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 신들린 연주는 무대 아래의 연주자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혹독한 대가 위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살 무렵, 캔자스시티 리노 클럽의 잼 세션에 올랐던 파커는 화성을 놓쳤다는 이유로 드러머 조 존스가 던진 심벌즈가 발밑에 쨍그랑 처박히는 치욕을 겪었다. 객석의 조롱을 뒤로하고 클럽을 뛰쳐나온 그는 오자크 산자락의 오두막에 틀어박혔다. 하루 열다섯 시간씩 입술이 부르터 피를 흘릴 때까지 열두 개 조의 음계를 깎아내던 혹독한 수련이 그 시작이었다.

더욱 가혹한 것은 부서진 육체였다. 열여섯을 갓 넘긴 겨울,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 당한 참혹한 교통사고로 갈비뼈가 부러지고 척추 신경이 영구적으로 손상된 파커는, 평생을 따라다닌 극심한 만성 통증을 잊기 위해 병원에서 처방한 모르핀에 의존하다 헤로인의 늪에 빠졌다. 파커가 세상에 내놓은 그 경이로운 비밥은 안락한 방에서 피어난 마법이 아니었다. 그것은 찢어지는 척추의 고통, 지독한 가난과 불면, 그리고 마약의 굴레에 갇혀 서른네 살의 나이에 예순 살 노인의 육체로 망가져 요절해야 했던 처절한 대가였다. 파커는 자신을 흉내 내며 마약을 시작한 젊은이들을 향해 "약에 취해 연주를 더 잘한다는 놈은 거짓말쟁이다. 날 따라 하지 마라"고 절규했으나, 질투에 눈이 먼 이들에게는 그 비명이 들리지 않았다.

고대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담화록'에서 올림픽 우승자를 부러워하는 제자들에게 에둘러 말하지 않고 물었다. "너는 올림픽 챔피언이 되고 싶은가? 나 또한 그렇다. 그것은 실로 영광스러운 일이니까. 하지만 그 영광을 탐내기 전에 그 뒤에 따르는 일들을 먼저 따져보아라. 너는 엄격한 규율에 복종해야 하고, 단 음식을 끊어야 하며, 타는 듯한 더위와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도 정해진 시간에 훈련해야 한다. 시합장에서는 살이 찢기고, 손목이 삐고, 발목이 탈골되며, 흙먼지를 들이마셔야 한다. 이 모든 대가를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너는 장난삼아 검투사 흉내를 내다 싫증을 내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다."

52번가의 젊은 연주자들은 타인의 무대 위 모습만을 탐내다 그 사람이 짊어진 파멸의 무게까지 맹목적으로 끌어안고 말았다. 그러나 에머슨과 에픽테토스가 가리킨 길은 정반대편에 놓여 있다. 타인이 손에 쥔 결과에 현혹되지 않고, 그가 그 자리에 서기 위해 우주에 지불해야 했던 총비용을 헤아려보는 태도다.

타인의 성취를 바라보며 질투가 치밀어 오를 때, 우리는 가만히 숨을 고르고 그 사람의 무대 뒤편에 놓인 장부를 셈해보아야 한다. 저 사람이 저 높은 자리에 서기 위해 포기해야 했던 평온한 저녁, 가족과의 단란한 식사, 건강한 신체와 깊은 잠, 그리고 실패의 공포 속에서 견뎌내야 했던 수많은 밤의 불안을 하나씩 헤아려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장부를 마주한 채 가장 솔직한 얼굴로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과연 우리는 저 사람이 거머쥔 결실을 탐내는 만큼, 그가 대가로 치러야 했던 고독과 불면, 뼈아픈 상처가 적힌 청구서까지 내 몫으로 온전히 건네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 물음 앞에 정직하게 서는 순간, 가슴을 태우던 질투의 열기는 서서히 가라앉는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솔직한 대답은 '아니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영예만 원할 뿐, 머리를 옥죄는 만성 편두통과 불면까지 고스란히 짊어지고 싶지는 않다. 타인이 우주에 지불한 가혹한 대가의 총합을 직시할 때, 질투는 상대에 대한 조용한 경외와 연민으로 바뀌고, 마음은 비로소 자신의 고유한 자리로 평온하게 되돌아온다. 저 사람은 저토록 무거운 값을 치르고 저곳에 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보폭과 평온을 긍정하게 된다.

침대 머리맡의 화면이 완전히 꺼지고 방 안은 다시 깊은 고요로 채워진다. 타인의 화려한 잔치를 훔쳐보느라 곤두섰던 신경도 서서히 가라앉는다.

타인의 성취 앞에서 마음이 조급하게 흔들릴 때, 자신의 옹졸함을 자책하거나 상대를 애써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질투는 타인의 빛에 시야가 흐려질 때마다 깜빡이는 마음에 켜진 하나의 경고등일지 모른다. 그 불빛이 켜질 때, 상대의 결실 뒤에 남겨진 영수증을 가만히 넘겨보는 태도를 잃지 않으면 된다.

세상에 거저 주어지는 빛이란 없다. 타인이 치러낸 무게를 존중할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의 영광을 향한 헛된 시선을 거두고 내 몫의 하루로 조용히 돌아올 수 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대가를 치르며 나만의 보폭으로 살아가는 일, 그것이 밤의 어둠 속에서도 자신만의 리듬을 잃지 않는 가장 단단하고 솔직한 삶의 태도일 것이다.

출처

  1. The Charlie Parker Story: Ko-Ko (Savoy Records, MG 12079 / Savoy 597)Savoy Records / Arista Records원전
  2. Bird Lives! The High Life and Hard Times of Charlie (Yardbird) ParkerCharterhouse / Da Capo Press (Ross Russell)원전
  3. Essays: First Series (Essay III: Compensation / 보상)James Munroe and Company / Harvard University Press (Ralph Waldo Emerson)원전
  4. Discourses and Selected Writings (담화록, Book III, Chapter 15)Penguin Classics / Oxford World''s Classics (Epictetus)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