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ZZY

ESSAY / 045

대체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What Did We Expect?

오랜 시간 공들인 일과 인연이 흩어진 자리. 빈손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비로소 마주하는 고유한 존엄에 관하여.

글
사월
발행일
주제
존 윌리엄스 · 찰리 헤이든 · 르상티망 · 상실
스토너를 읽고

몇 달 동안 모든 저녁과 주말을 쏟아부었던 기획서가 회의실 테이블 위에서 단 몇 분 만에 백지화되는 순간이 있다. 몇 년을 가족처럼 부대끼며 미래를 약속했던 동업자가 굳은 표정으로 다른 길을 가겠다고 통보하는 오후도 있고, 계절이 바뀌도록 서로의 영혼을 전부 내어줄 것처럼 타오르던 연인이 작은 짐가방 하나를 챙겨 현관문을 나서는 새벽도 있다.

모든 소란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홀로 남겨졌을 때, 방 안의 공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무겁게 내려앉는다. 책상 모서리에는 미처 다 마시지 못한 커피가 미지근하게 식어 있고, 창밖으로는 건널목의 신호등이 홀로 깜빡이며 잿빛 보도블록을 물들인다.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손바닥을 펴보아도 쥐여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통장에 불어난 잔고가 찍힌 것도 아니고, 손에 쥔 근사한 계약서나 약속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럴 때 우리를 가장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뜻밖에도 내면에서 터져 나오지 않는 분노다. 소리를 지르거나 가슴을 치며 분통을 터뜨릴 줄 알았는데, 손끝에 닿는 현실은 그저 텅 빈 정적뿐이다. 멍하니 외투 깃을 여미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거리로 나설 때, 가슴 한구석에서 묘한 질문 하나가 고개를 든다. 다 끝나버렸는데, 내 손은 왜 이렇게 깨끗하게 비어 있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문법은 언제나 철저한 손익계산서를 요구한다. 투입한 자본과 시간 대비 산출된 보상이 얼마인지를 묻는 투자 수익률(ROI)의 공식은 직장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적인 감정선까지 점령했다. 연애조차 밑지는 장사를 피하기 위한 탐색전으로 전락하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는 일은 감정적 위험을 최소화해야 할 포트폴리오 관리가 되었다. 노력했으나 결실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가장 부끄러운 실격이며, 대가를 돌려받지 못하는 헌신은 손해를 자처한 미련함이라 손가락질받는다.

거래가 불발되었을 때 현대인이 취하는 가장 흔한 방어기제는 스스로를 피해자의 자리에 앉히는 일이다. 내가 이만큼 주었으니 세상이든 상대든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몫을 내놓아야 했다는 채권자의 셈법이다. 거래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사람들은 세상을 향해 삿대질을 시작한다. 회사가 나를 착취했다며 저주를 퍼붓거나, 지난 연인의 잔인함을 소셜 미디어에 폭로하며 공감의 숫자를 모은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도덕의 계보학'에서 집요하게 파헤쳤듯,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긍정하지 못하는 이들은 결핍과 상처의 핑계를 바깥으로 돌려 타인을 악으로 규정한다. 자신이 겪은 상실을 돌려받아야 마땅할 빚으로 둔갑시키고, 그 원한의 독기를 밑천 삼아 스스로에게 도덕적 우월감을 부여하는 심리, 즉 르상티망의 덫이다. 빈손이 된 과거를 핑계 삼아 평생 남을 증오하고 곱씹느라, 정작 오늘 내 손으로 살아내야 할 현재의 시간마저 시커먼 재로 태워버리는 길이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해서, 그 길을 걸어왔던 시간 전체가 정말 오답이 되어버리는 것일까.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의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의 생애는 이 물음 앞에 가장 묵직한 거울 하나를 들이민다. 1910년 미주리주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흙먼지를 털며 농과대학에 들어갔지만, 아처 슬론 교수의 영문학 교양 수업에서 들은 셰익스피어 소네트 73번에 벼락같은 전율을 느끼고 문학 연구자의 길로 방향을 튼다. 흙을 파던 투박한 손으로 고대 영어를 베껴 쓰며 그는 낡은 텍스트의 아름다움에 온 존재를 내맡긴다.

그러나 소설이 그려내는 스토너의 일생은 세속의 척도로 볼 때 참담할 만큼 실패의 연속이었다. 충동적으로 선택했던 아내 이디스와의 결혼은 첫날밤부터 어긋나 평생 동안 얼음장 같은 냉대와 적개심으로 그를 옥죄었다. 외동딸 그레이스는 스토너를 고립시키려는 이디스의 집요한 방해 속에서 아버지와 멀어졌고, 훗날 알코올에 의존하며 위태롭게 삶을 버텨냈다. 마흔이 넘어 찾아왔던 젊은 연구자 캐서린 드리스콜과의 사랑은 대학 사회의 위선적인 추문 몰이에 밀려 가슴에 묻은 채 떠나보내야 했다.

대학에서의 경력 역시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이비 지식과 권모술수로 무장한 학생 찰스 워커의 무자격 박사 통과를 원칙대로 거부했다는 이유로, 그는 학과장 홀리스 로맥스의 평생에 걸친 보복을 당했다. 수십 년 동안 매일 아침 8시 신입생 교양 강의로 좌천되었고, 연구실마저 빼앗겨 빛 한 줌 들지 않는 지하실 구석방으로 밀려났다. 정교수로의 승진도, 학계의 화려한 조명도 그에게는 한 번도 닿지 않았다.

1956년 가을, 암 수술 후 집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운 그의 곁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딸은 멀리 떠났고, 아내는 병실 소파가 아닌 방 한구석 의자에 앉아 낯선 타인처럼 창밖을 볼 뿐이었다. 그가 40년 가까운 학문 인생을 바쳐 남긴 결실이라고는 서가 구석에서 누구도 찾지 않는 얇은 연구서 한 권뿐이었다. 차가워진 손가락으로 그 책을 집어 든 스토너는 생의 마지막 순간 자신을 향해 묻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놀라운 것은 그 순간 그의 내면에 스며드는 기이한 평온이다. 그는 자신을 핍박했던 로맥스를 향해 이를 갈지 않는다. 평생 냉담하게 자신을 밀어냈던 아내 이디스를 원망하지도 않고, 자신을 버리고 떠나간 세상을 향해 빈손의 보상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책의 마른 표지를 쓰다듬으며, 자신이 가르쳤던 교실의 먼지 낀 공기와 한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여인의 체온, 그리고 연구실 책상 위에서 홀로 지켜냈던 학문의 온전함을 떠올린다. 그리고 손가락의 힘을 풀며 그대로 책장을 놓는다.

스토아 철학의 선구자인 에픽테토스는 '도덕 편람'에서 세상의 모든 일을 두 가지로 엄격하게 가르라고 말했다.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것과,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 타인의 변덕스러운 마음, 조직의 부당한 처사, 질병과 죽음은 인간의 권한 밖에 속한 일이다. 스토아의 현자들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통제할 수 없는 외적인 일에 마음을 주지 말라고 권유했다. 감정의 동요를 차단하고 아파테이아라는 견고한 내면의 요새 뒤로 물러서서 세상을 관조하라는 가르침이었다.

스토너의 태도는 언뜻 이 차가운 금욕주의와 닮아 보이지만, 그가 걸어간 길의 온도는 전혀 달랐다. 스토너는 상처받지 않으려고 방어벽을 세운 적이 없다. 그는 문학을 대할 때 영리하게 거리를 두지 않았고, 연구실을 꾸밀 때 나무판의 거친 질감을 손으로 매만지며 몰입했으며, 캐서린의 손을 잡을 때 다음 날의 파국을 계산하지 않았다. 그는 상처를 피하기 위해 무감각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상처받을 위험을 온몸으로 껴안으면서도 대상을 향해 자기 몫의 사랑을 끝까지 쏟아부었다.

스토너가 누구도 탓하지 않았던 진짜 이유는 상처를 받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줄 수 있는 마음을 남김없이 전부 주어버렸기 때문이다.

원망이나 앙금이라는 감정은 언제나 결핍의 찌꺼기에서 자라난다. 온 마음을 다 쏟지 못한 채 뒤로 감춰둔 미련이 있거나, 내가 준 만큼 돌려받아야 마땅하다는 거래적 보상 심리가 남아 있을 때 인간은 원망의 포로가 된다. 장작을 완전히 태워버린 아궁이에는 연기조차 남지 않는 법이다. 불완전하게 타다 만 젖은 나뭇가지에서만 매캐한 눈물과 그을음이 솟아오른다.

재즈의 연주에서 쉼표는 음표가 떨어져 나간 결함이 아니다. 앞선 프레이즈의 뜨거운 호흡을 그대로 대기 속에 풀어놓아 잔향으로 머물게 하는 가장 충만한 마디다. 보상이 전무한 현실이라는 제약 속에서도 스토너가 보여준 태도는 패배의 수용이 아니라, 거래의 계산법을 완전히 초월해버린 자의 주도적인 완성이다. 그는 세상과 흥정하지 않았기에 세상에 청구할 계산서도 갖고 있지 않았다.

돌아보면 우리의 시간도 다르지 않다. 야근을 밥 먹듯 하며 매달렸던 일이 한 줄의 실적으로도 남지 않았을 때, 혹은 몇 년을 함께 울고 웃었던 인연이 서먹한 안부조차 묻지 못하는 사이로 끝났을 때 세상 사람들은 혀를 찰지 모른다. 왜 그렇게 어리석게 다 퍼주고 빈손으로 쫓겨났느냐고, 대체 네 손에 쥐여진 게 무엇이냐고 다그칠 것이다.

하지만 빈손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우리는 말없이 스스로의 손바닥을 내려다볼 수 있다. 화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인정은 비껴갔을지언정, 그 방에서 그 시절을 통과하던 내 마음만큼은 단 한 톨의 거짓도 없이 온전했다. 사랑했던 대상에게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다면, 그것으로 그 시간은 이미 자체적인 완결에 도달한 것이다.

세상의 채점표가 매겨놓은 영점짜리 성적표를 가슴에 품고 분을 삭이지 못할 이유는 없다.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쏟아부었던 진심의 무게까지 허공으로 증발해버리는 것은 아니다. 주머니에 손을 깊이 찔러 넣고 걷는 저녁의 길목에서, 문득 스토너가 던졌던 그 질문이 낮게 맴돈다. 대체 우리는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보상이 없었다고 해서, 온 마음을 다했던 그 계절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을까. 거래의 장부가 찢겨 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상처가 아니라 홀가분함이다. 모든 것을 다 주어버린 사람의 가벼운 발걸음에는 타인을 향한 칼날도, 세상을 향한 원망도 묻어나지 않는다.

출처

  1. StonerViking Press / New York Review Books (NYRB Classics edition, 2006)원전
  2. The Paris Review / BBC / Denver Interview with John WilliamsThe Paris Review / University of Arkansas Press원전
  3. The Enchiridion (도덕 편람)Oxford World's Classics원전
  4. Zur Genealogie der Moral (도덕의 계보학)C.W. Leske / Penguin Classics원전
  5. Beyond the Missouri Sky (Short Stories)Verve Records (537 130-2)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