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ZZY

ESSAY / 046

도피하지 않는 고독의 자리

가벼운 의자 하나 펴면 거기가 내 자리다.

글
사월
발행일
주제
헨리 데이비드 소로 · 빌 프리셀 · 침묵과 여백
호수공원에서

일요일 오후, 세탁기가 마지막 탈수를 마치며 슈베르트의 '송어' 멜로디를 울린다. 젖은 티셔츠와 양말을 털어 빨래건조대에 널고, 찬장에서 스테인리스 텀블러를 꺼낸다. 얼음을 반쯤 채운 뒤 진하게 내린 드립 커피를 붓고 뚜껑을 돌려 닫는다. 불과 일주일 전, 별다른 준비 없이 공원에 나갔다가 낭패를 겪은 참이었다. 공원에는 등받이가 있는 벤치가 거의 없었고, 결국 등받이 없는 벤치에 걸터앉아 구부정한 자세로 불편하게 책을 읽어야 했다. 게다가 목을 축일 텀블러도 챙겨가지 않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관문 옆에는 그날의 실패를 딛고 주문한 검은색 원통형 파우치가 놓여 있다. 무게 1.2킬로그램. 이번에는 등받이가 있는 알루미늄 접이식 의자다.

교보문고에 들러 민음사 판 '월든' 한 권을 산다. 책장에 꽂혀 있는 펭귄클래식 판 '월든'은 손때가 묻고 종이가 누렇게 바랠 만큼 여러 번 읽은 책이지만, 햇볕 좋은 일요일 공원으로 나설 때면 이상하게도 이 책을 다시 찾게 된다. 그 숲속의 기록 속에는 번잡한 일상을 살아가며 끝내 도달하고 싶어 하는 어떤 삶의 태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가방에 새 책을 챙겨 정발산역 광장을 지나 일산호수공원으로 들어선다. 호수를 둘러싼 너른 잔디밭에는 돗자리를 펴고 편안하게 드러누운 가족들이 눈에 띄고, 수변 산책로 위로는 나란히 페달을 밟는 자전거 탄 연인들과 규칙적인 호흡으로 발을 구르는 러너들이 스쳐 지나간다. 광장 쪽 큰 나무 그늘 아래에는 앰프까지 챙겨와 기타 코드를 짚으며 버스킹을 준비하는 연주자의 맑은 앰프 울림이 퍼져나간다. 저마다의 속도와 방식으로 주말을 누리는 다채로운 사람들의 활기가 공원을 가득 채우고 있다.

조금 물러선 잔디밭 한쪽에 멈추어 서서 파우치의 지퍼를 내린다. 탄성 끈으로 연결된 알루미늄 살대들이 딸깍거리며 제자리를 찾아 맞물리고, 모서리에 천을 걸어 당기자 금세 팽팽한 등받이가 모습을 갖춘다. 풀밭 위에 의자를 놓고 엉덩이를 깊숙이 묻는다. 천에 체중을 싣자 등받이가 알맞은 각도로 허리를 받친다. 텀블러 뚜껑을 열어 차가운 커피를 한 모금 삼키고 무릎 위에 '월든'을 올려놓는 순간, 입 밖으로 나지막한 탄식 하나가 흘러나온다.

월든 호수가 안 부럽다. 이게 행복이지 행복이 별거냐.

누렇게 바랜 책장을 수없이 넘겨보았으면서도, 정작 공원 잔디밭 위에서 입 밖으로 낸 독백의 끝에는 묘한 멋쩍음이 남는다. 우리는 왜 이런 순간마다 굳이 19세기의 숲속 호수를 소환하며, '행복이 별거냐'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하려 드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휴식의 문법은 온통 거창한 탈출의 서사로 채워져 있다. 번아웃을 마주한 직장인에게 세상은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도에서 한 달을 살거나, 멀리 발리나 알프스의 외딴 산골로 떠나 삶을 통째로 리셋하라고 권한다. 도시의 일상은 언제나 오염된 공간이고, 진정한 자유는 모든 사회적 의무와 연결을 끊어낸 먼 야생에만 존재한다는 이분법이다. 심지어 도심을 벗어난 캠핑마저 또 다른 소비와 노동의 경쟁으로 변질되었다. 수백만 원짜리 대형 텐트와 타프, 식기 세트와 감성 조명을 자동차 트렁크가 터져라 싣고 나가, 뙤약볕 아래서 땀을 흘리며 두 시간 동안 집을 짓고 다음 날 아침이면 온몸의 마디를 쑤셔가며 다시 짐을 싸는 풍경 속에서, 휴식은 도리어 도시에서의 피로를 자연으로 옮겨놓은 연장근무가 된다.

1845년 여름, 스물여덟 살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로 들어갔을 때 마주했던 세상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소로는 이웃 농부들과 상인들이 평생 농장과 저택의 저당권을 갚느라 뼛골이 빠지도록 일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조차 모른 채 깊은 절망 속에 갇혀 살아간다고 적었다. 더 넓은 평수, 더 화려한 마차, 더 많은 식기를 장만하느라 인생이라는 단 한 번뿐인 시간을 빚더미에 저당 잡힌 채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소로는 이 과잉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숲으로 향했다. 친구에게 빌린 도끼 한 자루로 소나무를 직접 베어 길이 15피트(약 4.5미터), 너비 10피트(약 3미터)짜리 소박한 통나무 오두막을 지었다. 널빤지와 창문, 벽돌과 못을 모두 합쳐 그가 집을 짓는 데 쓴 돈은 단 28달러 12.5센트였다. 그리고 그 좁은 방 안에 그는 침대 하나, 책상 하나, 그리고 오직 세 개의 의자만을 들여놓았다. '월든'의 '방문객들' 장에서 소로는 그 의자들의 쓰임새를 이렇게 적었다. "내 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 둘은 우정을 위한 것, 셋은 사교를 위한 것." 그는 물건을 늘리는 대신 불필요한 일들을 삶에서 덜어내고, 오직 삶의 본질적인 뼈대만을 마주하려 했다.

무대 위에서 공간을 다루는 태도 역시 이와 닮은 연주자가 있다. 미국의 재즈 기타리스트 빌 프리셀이다.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화려한 스케일과 빈틈없는 속주, 무대를 가득 메우는 거대한 앰프와 복잡한 이펙터 장비로 관객의 귀를 쉴 새 없이 몰아붙일 때, 빌 프리셀은 수수한 셔츠 차림으로 무대 한가운데 놓인 의자에 걸터앉는다. 그의 발밑에는 흔한 대형 페달보드 대신 작은 페달 몇 개가 놓여 있고, 무대 위에는 낡은 텔레캐스터 기타 한 대와 작은 앰프 하나가 전부다.

2018년 포틀랜드 플로라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그의 솔로 앨범 'Music IS'를 들어보면, 그가 소리를 다루는 방식은 음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일에 가깝다. 첫 트랙이나 수록곡 'The Pioneers'에서 프리셀은 멜로디를 빽빽하게 쏟아내지 않는다. 맑고 따뜻한 코드 하나를 허공에 툭 튕겨놓고, 그 소리가 만들어낸 파동이 방 안의 공기 속으로 퍼져나가다 침묵과 섞여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기다린다.

프리셀은 인터뷰에서 "연주할 때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모든 빈틈을 음으로 채우려 애쓰지 않고, 방금 울린 음의 여운이 빈 공간으로 번져나가도록 둘 때 비로소 음악이 공간 전체를 울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재즈에서 쉼표는 연주를 멈추는 공백이 아니다. 다음 음이 제 빛깔을 내며 숨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가장 능동적인 호흡이다. 프리셀이 의자 위에서 만들어내는 것은 빽빽한 음표의 요새가 아니라, 몇 개의 울림으로 방 전체의 공기를 광활한 들판으로 바꾸어 놓는 소리의 여백이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역시 생의 말년에 비슷한 공간의 정점에 도달했다. 거대한 마천루와 이상적인 대도시를 설계하며 20세기 현대 건축의 판을 짰던 그는, 1952년 프랑스 남부 카프 마르탱의 바위 절벽 위에 가로세로 3.66미터, 면적 13.4제곱미터의 작은 통나무집 '카바농'을 지었다. 평수로는 겨우 4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인체 비례에 기초한 모듈러 척도로 짠 그 단칸방 안에는 침대 두 개, 작은 작업대 하나, 세면대와 옷장뿐이었다. 코르뷔지에는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그 작은 오두막을 두고 "나에게는 지중해의 작은 성이 있다.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다"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곳에서 머물렀다.

하지만 소로의 오두막이나 코르뷔지에의 카바농은 모두 땅에 단단히 말뚝을 박아 고정한 영구적인 건축물이었다. 소로는 월든의 삶을 위해 문명 사회를 완전히 등지고 2년 2개월 동안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물리적 망명을 감행해야 했다. 그것은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결단이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월든은 '언젠가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을 때나 가능한' 아득한 이상의 영역으로 박제되었다.

우리는 소로처럼 숲으로 떠날 수 없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실어야 하고, 밀린 업무와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하는 평범한 생활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은 소로의 태도와 영영 무관한 것일까.

호수공원 잔디밭에 접이식 의자를 펴는 순간, 우리는 소로의 질문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어받는다. 우리는 문명을 증오하며 내던지지 않는다. 온라인 배송 시스템과 초경량 알루미늄 합금이라는 현대 문명의 산물을 지렛대 삼아, 도시의 인프라 한복판에 두세 시간 동안 머무는 이동식 영토를 세운다.

땅을 사거나 벽을 세울 필요는 없다. 가방 지퍼를 열고 뼈대를 맞추는 것만으로 풀밭 위로 30센티미터 떠오른 독립된 자리가 생겨나고, 등받이에 몸을 기대는 순간 그곳은 공공의 공원 안에 세워진 나만의 자율적인 오두막이 된다. 땅을 영구히 소유하지 않고 그저 잠시 펴고 다시 접는 유연한 점유다.

수십 킬로그램의 장비를 싣고 나가 노동을 거듭하는 캠핑이 자연을 또 다른 소비의 수단으로 전락시킨다면, 한 손으로 가볍게 쥘 수 있는 무게라는 제약은 우리에게 어디로든 즉흥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동성을 선물한다. 거창한 텐트도, 화려한 조명도 덜어낸 채 오직 의자 하나와 텀블러 한 개만을 남겼을 때, 우리는 빌 프리셀이 불필요한 음을 덜어내고 여백을 얻었듯 비로소 주변의 풍경을 감각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잔디밭을 가로지르며 웃는 소리, 산책로를 따라 곧게 늘어선 메타세쿼이아 잎사귀를 스치는 바람 소리, 호수 수면 위로 부서지는 오후의 햇살이 의자 주위로 천천히 밀려든다. 타인들을 적으로 돌리며 깊은 산속으로 숨어드는 폐쇄적인 도피가 아니라, 타인들의 활기와 소음이 흐르는 광장 한구석에서 무심하게 나만의 테두리를 지키는 고독이다.

어느덧 해가 기울며 잔디밭 위로 나무들의 긴 그림자가 눕는다. 마지막 남은 차가운 커피를 비우고 책장을 덮는다. 의자 다리를 접어 천을 말아 파우치에 넣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는다. 일어선 자리에는 짓눌린 풀잎 몇 가닥만이 남아 있을 뿐, 어떤 흔적이나 쓰레기도 남지 않는다.

가벼운 파우치 끈을 손가락에 걸치고 아파트 단지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숲으로 도망치지 않아도 괜찮다. 도시의 소란과 일상의 책임 한복판에서도, 스스로의 리듬을 위해 언제든 펴고 접을 수 있는 작은 자리가 손에 들려 있다면 우리는 이미 충분히 홀가분하다.

출처

  1. Walden; or, Life in the WoodsTicknor and Fields / Penguin Classics (ed. J. Lyndon Shanley)원전
  2. Music ISOKeh / Sony Masterworks (19075817292)원전
  3. ValentineBlue Note Records (00602508823770)원전
  4. The Fretboard Journal & Guitar Player Interviews with Bill FrisellThe Fretboard Journal / Guitar Player원전
  5. Le Cabanon 1952: Roquebrune-Cap-MartinFondation Le Corbusier / Editions Parenthèses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