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 011
모든 소음을 끄고 남은 방에서
In the Room Left After Turning Off All the Noise
끊임없이 채워 넣지 않아도, 군더더기를 깎아낸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삶의 소리가 있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 방 안의 형광등 스위치를 내리고 침대 위에 걸터앉는다.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의 측면 버튼을 누르자 푸르스름한 액정 화면이 순식간에 암전되며 방 안은 짙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 이내 소리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방 한구석에 놓인 작은 냉장고 컴프레서가 낮게 웅웅거리는 진동음, 벽 너머 낡은 배관을 타고 미세하게 흘러내리는 물소리, 얇은 창문 틈새를 스치고 지나가는 밤바람의 바스락거림. 낮 동안 온갖 알림음과 메신저의 경고음, 이어폰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빠른 음악에 짓눌려 있던 방의 본래 소리들이 어둠 속에서 하나둘 윤곽을 드러낸다.
소음이 사라지고 찾아온 방 안의 공기는 서늘하고 빽빽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고요를 가만히 누리지 못한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화면도 깜빡이지 않는 그 짧은 틈을 견디지 못해, 손가락은 무의식중에 다시 베개 옆의 스마트폰을 더듬거리거나 배경음으로 틀어둘 만한 팟캐스트 목록을 뒤적이곤 한다.
정적으로 둘러싸인 침묵의 틈
우리는 하루의 거의 모든 순간을 무언가로 채우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귀와 눈은 단 1초의 공백도 허락받지 못한다.
만원 지하철에 올라타면 습관처럼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고 가장 빠른 템포의 음악을 재생한다. 사무실 책상 앞에서는 일에 집중한다는 핑계로 백색 소음을 틀어두고, 퇴근 후 저녁을 먹거나 방을 정돈할 때조차 누군가의 목소리가 쉼 없이 흘러나오는 동영상 창을 켜둔다. 세상의 소식과 유행하는 대화에서 단 한 발짝이라도 멀어지면 곧바로 뒤처질 것 같은 초조함이, 끊임없이 우리의 주의를 자극과 정보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는다.
방 안의 서랍에 물건을 빈틈없이 채워 넣고 달력의 칸칸마다 약속과 할 일을 빽빽하게 적어 넣는 것만이 알찬 하루를 증명하는 길이라 믿는다. 그러나 모든 자극과 약속으로 하루를 가득 채우고 돌아온 늦은 밤, 문을 닫고 혼자 남겨진 자리에서 마주하는 것은 충만함이 아니라 도리어 탈진에 가까운 피로와 헛헛함이다.
우리는 왜 이토록 조용한 방 안의 침묵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소음이 멈추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자기 자신의 서늘한 맨얼굴을 대면하는 일이 두렵기 때문은 아닐까.
군더더기를 깎아낸 건반
1998년 겨울, 미국 뉴저지주 옥스퍼드의 숲속 자택에 자리한 케이브라이트 스튜디오. 재즈 피아노의 거장 키스 자렛은 홀로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었다. 1996년부터 그를 덮친 만성피로증후군은 연주자의 몸과 마음을 완전히 탈진시켰고, 모든 공개 투어와 무대 활동을 전면 중단하게 만들었다.
전 세계의 거대한 콘서트홀을 가득 메운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 온몸으로 땀을 쏟아내며 두 시간 동안 쉼 없이 몰아치던 《The Köln Concert》나 《Sun Bear Concerts》의 폭발적인 에너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초절기교를 자랑하던 빠른 아르페지오도, 관객을 압도하던 복잡한 화성의 파도도, 연주 중에 터져 나오던 특유의 격렬한 탄성과 신음도 쇠약해진 그의 몸 안에서는 더 이상 솟구쳐 오르지 않았다.
화려한 무대 조명과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모두 걷혀 나간 텅 빈 방 안에서, 키스 자렛은 오직 피아노라는 한 대의 악기와 단둘이 마주했다. 힘이 빠진 손가락으로 그가 건반 위에서 조심스럽게 짚어낸 것은, 어릴 적부터 마음에 품어왔던 조지 거슈윈의 〈I Loves You Porgy〉나 전통 민요 〈Shenandoah〉 같은 소박하고 익숙한 선율들이었다.
1999년 ECM 레코드에서 발매된 《The Melody at Night, with You》는 병마와 싸우던 그가 곁을 지켜준 아내 로즈 앤을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집에서 홀로 녹음한 기록이다.
이 앨범에는 청중의 귀를 사로잡기 위한 어떤 현란한 테크닉이나 과시적인 장식음도 들어있지 않다. 자렛은 건반 하나를 아주 천천히, 정성스럽게 누른 뒤 그 음이 공기 속으로 서서히 스러져 사라질 때까지의 여백을 온전히 기다린다. 멜로디의 뼈대만을 남긴 채 불필요한 음들을 모조리 덜어내자, 오히려 피아노라는 목재와 강철 현이 만들어내는 가장 순수한 울림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더 많이 쳐서 채우는 대신 덜어냄으로써, 음악은 가장 깊고 단단한 침묵의 공간을 열어젖힌다.
호숫가의 오두막과 삶의 본질
키스 자렛이 뉴저지의 숲속 방 안에서 피아노의 장식음을 깎아내기 150여 년 전인 1845년 7월 4일,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 숲으로 걸어 들어간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다.
소로우는 숲속에 직접 작은 나무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동안 자급적인 단순 생활을 실험했다. 그가 세상의 번잡한 도시를 떠나 호숫가로 들어간 것은 현실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월든》의 제2장 '나는 어디서 살았으며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에서 자신의 엄격한 의도를 이렇게 적었다. 삶의 가장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마주하고, 삶이 가르쳐주는 것을 온전히 배우기 위해서였다고.
소로우는 외쳤다. 단순하게, 단순하게, 단순하게 살아가라고. 하루의 일과 관계를 백 가지나 천 가지로 늘려놓지 말고, 오직 두세 가지의 중요한 본질로 줄여내라고 권고했다.
당시의 사람들은 더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유행하는 옷과 가구를 사고, 끊임없이 남들과 사교를 나누며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풍요로운 삶이라 믿었다. 하지만 소로우의 눈에 그것은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유지하기 위해 정작 자기 자신의 시간과 생명을 저당 잡히는 어리석은 노역에 불과했다. 복잡한 겉치레와 쓸데없는 번잡함을 과감하게 털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살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였다.
소로우가 호숫가에서 불필요한 물건과 번잡한 관계를 덜어내며 삶의 핵심만을 남겼던 태도는, 키스 자렛이 탈진의 끝에서 피아노의 현란한 주법을 걷어내고 멜로디의 정수만을 남긴 태도와 정확하게 닿아 있다.
덜어낸다는 것은 삶이 가난해지거나 궁핍해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허장성세와 소음을 걷어내고, 그 밑바닥에 오롯이 남아 있는 가장 견고한 생의 뼈대를 손으로 만져보는 일이다. 소로우가 《월든》의 4장 '소리들'에서 호숫가에 이는 바람 소리와 새소리, 멀리서 울리는 기차의 경적을 들으며 소음 너머의 깊은 질서를 응시했듯, 자렛은 장식음을 비워낸 여백 속에서 음 하나가 지닌 본래의 무게를 듣는다.
스위치를 끄고 난 뒤의 방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은 새벽, 우리는 다시 방 안의 정적 속으로 돌아온다.
불안한 마음으로 집어 들었던 스마트폰을 조용히 협탁 위에 내려놓는다. 화면의 불빛이 꺼지고 나면, 방 안에는 다시 냉장고의 미세한 모터 소리와 나의 고른 숨소리만이 남는다.
더 많은 말과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소유로 하루를 채우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의 생이 헛되이 비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키스 자렛이 건반 하나를 짚고 그 잔향이 잦아들 때까지 오래도록 귀를 기울였듯, 우리에게도 삶의 복잡한 군더더기를 잠시 멈추고 고요의 바닥을 마주할 시간이 필요하다.
방 안의 모든 소음을 끄고 남은 이 깊은 밤, 당신의 방과 마음속에서 조용히 울리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삶의 소리는 무엇인가.
출처
- Henry David Thoreau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Stanford University원전
-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 Keith Jarrett (ECM 1675)ECM Records원전
- Walden - Henry David Thoreau (Princeton University Press Edition)Princeton University Press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