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냄비 바닥에서 기포가 올라올 무렵, 조리대 구석의 휴대전화 화면이 하얗게 켜졌다. 퇴근 시간을 두 시간 넘겨 도착한 업무 메신저 알림이었다. 미리보기 창에 뜬 두 줄짜리 문장만으로 낮 동안 회의실 공기를 짓누르던 목소리가 부엌까지 따라 들어왔다. 전화기를 식탁 매트 위에 엎어 놓았지만, 도마 위에서 마늘을 썰던 칼끝의 박자가 이미 빨라져 있었다.
혼자 저녁을 해 먹는 부엌에서 올리브유를 두르고 면 삶을 물을 끓이다 보면, 낮에 겪은 일들이 수증기처럼 천장 아래에 고인다. 막판에 일정을 뒤집은 사람의 표정, 책임을 남의 부서로 넘기던 말투, 아무 말도 못 하고 삼킨 오후 네 시의 침묵 같은 것들이다. 정작 그 사람은 지금쯤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텐데, 내 부엌에서는 그 이름이 마늘 조각과 함께 기름 위에서 지글거린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습관처럼 더 큰 자유를 생각한다. 통장에 몇 달 치 생활비가 더 쌓여 있다면, 언제든 사표를 던질 기술이나 다른 계약서가 서랍 안에 있다면, 혹은 내 시간표를 직접 짜는 위치에 올라선다면 어떨까. 세상은 그런 갈망을 대개 야망이나 독립심이라 부른다. 하지만 달궈진 기름 냄새를 맡으며 생각해보면, 우리가 내 몫의 재량을 넓히려는 진짜 이유는 그렇게 거창한 곳에 있지 않은 듯하다. 대단한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 자체가 너무 번거롭고 귀찮아서 자유를 갈구하는 것은 아닐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는 이 질문의 정곡을 찌르는 부엌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쓰쿠루의 연하 친구 하이다는 쓰쿠루의 아파트에 머물며 냉장고 속 재료만으로 근사한 식사를 만들어 낸다. 쓰쿠루가 물리학과에 있는 게 아까울 정도라며 레스토랑을 열어도 되겠다고 말하자, 하이다는 영국 극작가 아널드 웨스커의 희곡 《부엌》을 인용한다.
"나는 늘 자유롭고 싶어요. 요리하는 건 좋아하지만 직업으로서 부엌에 틀어박히고 싶지는 않아요. 그랬다가는 곧 누군가를 증오하게 될 테니까요."
쓰쿠루가 누구를 증오하게 되느냐고 되묻자 하이다는 희곡의 구절을 이어 말한다.
"요리사는 웨이터를 증오하고, 그 둘은 손님을 증오한다. 아널드 웨스커의 《부엌》이라는 희곡에 나오는 말이에요. 자유를 빼앗긴 인간은 반드시 누군가를 증오하게 되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그런 삶은 살기 싫어요."
웨스커의 희곡 《부엌》은 런던의 대형 레스토랑 티볼리의 지하 주방을 무대로 삼는다. 화덕의 열기와 환풍기 소음 속에서 스무 명이 넘는 요리사와 제빵사, 접시닦이들이 좁은 통로를 오가며 하루 천오백 인분의 식사를 쏟아낸다. 점심시간이 절정에 달하면 웨이터들은 주문서를 흔들며 독촉하고, 요리사들은 달궈진 팬을 잡고 고함을 지른다.
그 주방 사람들이 처음부터 포악했던 것은 아니다. 요리를 좋아해서, 혹은 성실히 밥벌이를 하려고 앞치마를 두른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내가 속도를 정할 수 없고 원할 때 걸어 나갈 수도 없는 동선에 갇히자 상황은 달라진다. 구조를 상대할 수 없는 인간은 눈앞에서 주문서를 들이미는 웨이터를 미워하고, 웨이터는 접시를 늦게 내놓는 요리사와 벨을 누르는 손님을 미워한다. 출구가 닫힌 공간에서는 가장 가까이에 서 있는 사람의 팔꿈치가 곧 폭력이 되기 때문이다. 자유를 잃는다는 것은 내 하루의 일정 지분을 누군가를 원망하는 데 의무적으로 할당해야 하는 상태로의 전락을 뜻한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 감정의 비용을 집요하게 계산한 사람이었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학》에서 스스로 결정할 힘을 빼앗긴 약자가 외부의 적을 상정해 상상의 복수를 되풀이하는 심리를 르상티망, 즉 원한이라 불렀다. 흔히 원한을 도덕적 결함으로 여기며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충고하지만, 자전적 저작 《이 사람을 보라》에서 니체가 원한을 거부한 이유는 도덕 교과서의 설교와 전혀 달랐다.
니체는 "원한의 감정만큼 인간을 빠르게 태워버리는 것은 없다"고 단언했다. 편두통과 위장병, 시력 저하로 평생 피로에 시달렸던 그에게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남은 체력과 신경 에너지를 바닥내는 생리적 과소비였다. 억울한 일을 곱씹으며 상대의 몰락을 상상할 때마다 먼저 닳아 없어지는 것은 상대의 인생이 아니라 내 위장과 밤잠이다. 그가 지쳐 있을 때일수록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 기술을 최우선의 위생학으로 꼽으며, 행군 끝에 눈밭에 드러눕는 병사에 빗대어 '러시아식 숙명론'이라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움의 회로를 꺼버림으로써 내 신경계를 지키는 에너지 절약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 철학자 바루흐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내린 진단 역시 같은 계산서 위에 놓여 있다. 스피노자는 증오를 "외부 원인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라 정의했다. 그의 어휘에서 슬픔은 자기 존재를 유지하고 확장하려는 힘인 코나투스가 깎여 나가 활동력이 줄어든 상태 자체다. 누군가를 증오한다는 것은 내 삶의 기운이 줄어든 원인을 저 사람에게 연결해 두고, 그 얼굴과 목소리를 머릿속에 붙들어 매는 일이다. 스피노자가 "증오는 결코 선일 수 없다"고 증명한 까닭도 미움이 실은 내 활동 역량이 외부 대상에 저당 잡혀 쪼그라든 수동적 예속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중 서사는 정반대의 공식을 권하곤 한다. 웹소설과 드라마의 회귀·빙의·환생 복수극이나 통속적인 성공 신화에서 주인공을 움직이는 엔진은 언제나 증오다. 나를 부당하게 대우한 상사와 동료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 두고, 그들을 짓밟을 날을 상상하며 밤잠을 줄여 정점에 오른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그 매캐한 연료가 엔진 내부를 먼저 그을린다는 데 있다. 미워하는 힘으로 달리는 동안 우리 머릿속의 가장 좋은 방 한 칸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에게 무료로 임대된다. 주말에 커피를 마시다가도 그 말투가 떠올라 미간이 찌푸려지고, 샤워기를 틀어놓고도 낮에 못 한 반박을 중얼거리게 된다.
이 불편한 세입자를 내보내는 방식에서 소설 속 하이다와 두 철학자, 그리고 오늘 부엌에 서 있는 우리의 선택은 저마다 갈라진다. 하루키의 소설 속 하이다는 젊었을 때 대학을 휴학하고 산속 온천 여관으로 떠났던 아버지의 유목적 기질을 이어받아, 어느 날 쓰쿠루에게 레코드판 하나만 남긴 채 대학에도 돌아오지 않고 자취를 감춘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음으로써 자유를 지키는 스무 살 청춘의 결벽이다. 한편 스피노자는 만물의 필연성을 깨닫는 이성적 이해로 증오를 녹여내려 했고, 니체는 자극을 차단하는 위생학을 거쳐 운명 전체를 긍정하는 태도로 나아갔다.
그러나 매달 공과금을 내고 만원 지하철로 출근해야 하는 생활인은 하이다처럼 배낭 하나만 메고 세상에서 증발할 수 없다. 그렇다고 스피노자나 니체처럼 좁고 뜨거운 주방 한복판에서 철학적 이성이나 사유의 전환만으로 평정을 유지하기에는 우리의 신경계가 너무 평범하다. 내일 아침에도 저 부엌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사람에게 마음만 고쳐먹으면 동료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은 공허한 위로에 가깝다.
현실의 우리가 더 큰 자유를 갈구하는 데에는 지극히 생활인다운 셈법이 작동한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높은 성실성을 요구하는 중노동이다. 상대의 잘못을 잊지 말아야 하고, 억울함의 근거를 수시로 갱신해야 하며, 마주칠 때마다 속으로 날을 세워야 한다. 하루 여덟 시간 일하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빠듯한데 퇴근 후의 저녁까지 바쳐가며 미움이라는 무급 초과근무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저축을 늘리고 조직 바깥에서도 살아남을 기술을 익히며 언제든 이 부엌문을 열고 나갈 출구를 확보하려는 까닭은, 그 귀찮고 피곤한 감정 노동으로부터 나를 면제받기 위해서다.
삶아진 파스타 면을 건져 올리브유와 마늘이 익어가는 팬으로 옮긴다. 면수를 한 국자 부어 팬을 흔들자 고소한 마늘 향이 부엌을 채운다. 창문을 손가락 두 마디만큼 열어 두자 열기와 수증기가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빠져나간다. 식탁 매트 위에 엎어 둔 휴대전화는 그대로 둔 채 접시에 면을 덜어낸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사람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 주문서와 마감 시간을 마주해야 하겠지만, 지금 이 식탁에 앉아 있는 시간만큼은 누구의 얼굴도 미워하느라 불러내지 않을 참이다.
당신이 요즘 부쩍 더 큰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면, 그 마음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거창한 야망 때문인가, 아니면 오늘 밤 내 부엌과 방 한구석에 미워할 사람의 이름을 더 이상 들여놓기 싫어진 까닭인가.
출처
- Colorless Tsukuru Tazaki and His Years of PilgrimageVintage International / 민음사 (Haruki Murakami, 2013)원전
- The Kitchen: A Play in Two Parts with an InterludeOberon Books / Bloomsbury Publishing (Arnold Wesker, 1959)원전
- Ecce Homo: Wie man wird, was man istInsel-Verlag / Project Gutenberg (Friedrich Nietzsche, 1908)원전
- Zur Genealogie der Moral (도덕의 계보학)C. G. Naumann / Project Gutenberg (Friedrich Nietzsche, 1887)원전
- Ethica,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 (에티카)Wikisource / Hackett Publishing (Baruch Spinoza, 1677)원전
- Nietzsche's Moral and Political Philosophy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Stanford University (Brian Leiter, 2021)
- Idle Moments (Blue Note BLP 4154)Blue Note Records (Grant Green, recorded by Rudy Van Gelder, 1965)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