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 작은 노란 스탠드 불빛 아래 놓인 책상 위로 밤의 고요가 나지막이 내려앉는다. 서점 베스트셀러 매대를 점령한 부동산 투자 지침서나 부의 법칙, 혹은 성공의 비결을 일러주는 처세서 대신, 누렇게 바랜 낡은 소설책 한 권이 펼쳐져 있다. 책장을 천천히 넘기며 한 문장에 오래 머문다. 어떤 줄거리나 지식을 머릿속에 축적하겠다는 목적도 없이, 그저 문장의 결을 소리 없이 입안에 굴려보는 손끝에 이미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퇴근길의 풍경도 그 고요한 책장과 닮아 있다. 목적지까지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데려다주는 지하철 환승 통로를 마다하고, 일부러 한 정거장 먼저 개찰구를 빠져나와 이어폰을 귀에 꽂고 타박타박 걷던 밤길의 삼십 분. 가로등 불빛 아래로 좋아하는 음악의 마지막 마디가 끝날 때까지 일부러 먼 골목길로 돌아 걷던 걸음 역시 마찬가지다.
그 느긋한 손놀림과 발걸음 곁에서, 스마트폰 화면은 쉴 새 없이 푸른빛을 깜빡이며 오늘의 바깥세상을 중계한다. 이번 주 주식 시장의 마감 지수와 환율 변동, 퇴근 후 부업으로 월 몇백만 원을 버는 비결을 알려준다는 영상 썸네일, 그리고 알고리즘을 장악한 숏폼 트렌드 뉴스레터가 붉은 숫자와 함께 밀려든다. 세상은 온통 더 빠르게 달리고, 더 민첩하게 실속을 챙기며, 단 십 분의 빈틈도 없이 일상을 최적화하라고 재촉하는 소리들로 가득하다. 그 숨 가쁜 바깥의 속도 앞에서, 방 안의 시간만은 완전히 다른 궤도를 느리게 공전한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 일어설 때면, 귓가에 맴도는 질문 하나가 어김없이 따라붙는다. 세상이 등 뒤에서 툭 던지곤 하는 낯익은 핀잔이다. '그 소설책 밤새 읽어봐야 돈이 나와, 밥이 나와? 팔 수 있는 지식도 아니고, 이력서에 한 줄 보태지도 못하는데 왜 그런 데 귀한 시간을 써? 차라리 그 시간에 주식 차트나 자격증 강의라도 하나 더 보지 그래. 피곤한데 왜 굳이 한 정거장 먼저 내려서 걷는 거야?' 실속과 쓸모를 따지자면 죄다 헛돈이고 쓸데없는 시간 낭비다. 남들은 다 앞서가는데 나 혼자 돈도 안 되는 샛길에서 헛바퀴를 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슬그머니 자책과 부채감이 고개를 든다.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일상은 온통 쓸모와 효율의 팽팽한 밧줄에 묶여 있다. 시간을 들였으면 반드시 눈에 잡히는 결과를 내놓아야 하고, 돈과 에너지를 썼으면 손에 잡히는 실속이 남아야 한다. 독서나 산책조차 생산적인 자기 증명의 포트폴리오로 번역되지 않으면 나태한 도피이자 부끄러운 결함으로 취급된다. 18세기 벤저민 프랭클린이 청년 상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간은 돈이다'라는 문장을 적어 내려간 이래, 인류는 삶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복식부기 장부로 다루는 법을 성실히 학습해왔다. 프랭클린은 열세 가지 덕목을 표로 그려 넣고 매일 밤 잠들기 전 자신이 얼마나 근면했고 절약했는지를 꼼꼼히 점검했다. 그 엄격한 장부의 규율 속에서, 트렌드에 뒤처진 취향과 실속 없는 몰입이란 하루빨리 잘라내야 할 낭비에 불과했다.
하지만 손익계산서가 정밀해질수록 어째서 우리의 숨통은 이토록 메말라가는 것일까. 어떠한 경제적 이득도 남기지 않는 사소한 몰입에 온 마음을 빼앗겼다는 이유만으로, 왜 우리는 남몰래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가. 모든 분초를 성과와 숫자로 환산하는 차가운 잣대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더 높은 산출량을 뽑아내야 하는 기계 부품으로 밀어 넣는다. 손익의 장부 바깥에도 엄연히 삶의 자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말이다.
1950년대 중반 미국, 재즈가 거대 음반 산업의 매끄러운 상품으로 안착하던 시절의 시카고 밤거리에는 자본주의 쇼비즈니스의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음악가가 한 사람 있었다. 피아니스트 썬 라(Sun Ra)였다. 그는 본래 전설적인 플레처 헨더슨 오케스트라의 정교한 편곡을 도맡았을 정도로 뛰어난 음악적 이론과 테크닉을 겸비한 연주자였다. 메이저 레이블의 규격에 맞추어 유행하는 스윙과 밥을 연주했다면 남부럽지 않은 명성과 부를 거머쥘 수 있는 실력이었다.
그러나 그는 상업적 성공과 트렌드의 고속도로를 단호하게 걷어찼다. 스스로 지구인이 아니라 저 먼 '토성(Saturn)에서 온 사절'이라 선언하고, 반짝이는 금박 우주 예복과 태양의 관을 머리에 쓴 채 '아케스트라(Arkestra)'라는 대규모 앙상블을 이끌기 시작했다. 1957년, 썬 라는 매니저 앨턴 에이브러햄과 함께 독립 레이블 '엘 사투른 레코드(El Saturn Records)'를 세웠다. 거대 음반사의 규격화된 상품 제작을 거부하고, 온전히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음반 제작은 세속의 효율성과는 아득히 거리가 먼 수작업의 극치였다. 음반 공장의 번듯한 대량 인쇄를 마다하고, 단원들과 함께 합숙소 거실에 둘러앉아 하얀 무지 카드보드 재킷 위에 크레파스와 매직, 페인트와 고무도장으로 앨범 커버를 하나하나 직접 손으로 그렸다. 세상에 단 한 장뿐인 그 수제 음반들을 골판지 상자에 주섬주섬 담아, 공연이 끝난 뒤 무대 구석에서 관객들에게 직접 팔았다. 음반 뒷면에는 음반사의 홍보 문구 대신 썬 라가 직접 쓴 우주적 시와 사유를 빼곡히 적어 넣었다.
공연과 음반으로 손에 쥐는 돈은 모조리 단원들과 함께 생활하는 합숙소의 식비와 월세, 새 악기를 사고 다음 음반을 녹음하는 작업 속으로 남김없이 흘러들어갔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다. '나이 먹은 어른들이 우주복을 입고 무슨 해괴한 장난을 치는가', '돈도 안 되는 미친 짓에 인생을 낭비한다', '유행에도 뒤처진 괴상한 소음이다.'
하지만 1959년작 'Jazz in Silhouette'에 실린 'Enlightenment'를 들어보라. 썬 라가 연주하는 천상의 차임벨과 단정한 피아노 타건 위로 호바트 닷슨의 트럼펫과 존 길모어의 색소폰이 얹히는 순간, 그곳에는 조롱 섞인 세속의 잣대를 훌쩍 뛰어넘는 찬란하고 다정한 우주적 스윙이 펼쳐진다. 썬 라에게 음악은 남에게 팔아 치우기 위한 상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돈과 숫자의 중력에 짓눌린 인간의 영혼을 본래의 별자리로 되돌려놓기 위한 가장 순수하고 거대한 축제였다.
프랑스의 사상가 조르주 바타유는 1949년의 주저 '저주의 몫'에서 인간을 진정으로 인간답게 세우는 본질이 바로 이 무용한 낭비에 있다고 짚어냈다. 바타유의 눈에 비친 근대의 경제학과 도덕률은 모조리 결핍을 메우고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타산적 계산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우주의 본질이 부족함이 아니라 넘쳐나는 잉여에 있다고 보았다. 태양이 대가 없이 지구로 쏟아붓는 막대한 에너지는 생존의 용도를 훌쩍 뛰어넘으며, 인류의 진정한 과제는 이 넘쳐나는 에너지를 '어떻게 영광스럽게 탕진할 것인가'에 있다는 것이다.
바타유는 생존과 보존에만 묶인 삶을 가축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고 보았다. 가축은 오직 내일 또다시 밭을 갈기 위해 여물을 먹고 쉰다. 인간이 스스로의 가치를 오직 쓸모와 실속, 그리고 수익성으로만 재단한다면, 그는 제 손으로 자신을 공장의 부품이나 일하는 가축의 자리로 끌어내리는 셈이다. 바타유가 말하는 '비생산적 낭비'—축제와 예술, 사랑과 무목적한 유희처럼 어떠한 경제적 셈법도 거부한 채 에너지를 불태우는 순간—속에서만 인간은 도구의 사슬을 끊고 비로소 삶의 주권을 회복한다.
프랭클린의 세계와 썬 라의 세계는 바로 이 대목에서 결정적으로 갈라진다. 프랭클린에게 장부 바깥의 시간은 게으른 죄악이었지만, 썬 라와 바타유에게 계산서의 바깥이야말로 인간다운 존엄과 자유가 숨을 쉬는 유일한 궤도였다.
바타유가 말한 낭비가 죽음과 광기, 금기를 부수는 파멸의 심연으로 치달았다면, 썬 라의 우주적 낭만은 삶을 파괴하지 않는다. 썬 라의 크레파스 레코드와 아케스트라의 합숙은 세상을 등지는 자멸이 아니라, 가난과 인종차별이라는 냉혹한 현실 한복판에서 음악의 기쁨을 나누며 영혼의 품위를 지켜낸 다정한 연대였다. 우리의 일상 역시 마찬가지다. 방구석에서 돈 안 되는 소설책을 뒤적이거나, 음악 한 곡을 끝까지 듣기 위해 밤길을 돌아 걷는 행위는 현실 감각 없는 철부지의 도피가 아니다. 이것이 돈도 안 되고 이력서 한 줄 채워주지 않는 헛짓임을 훤히 알면서도, 온 세상이 나를 숫자로 환산하려 들 때 '내 영혼은 당신들의 계산서에 속해 있지 않다'고 선언하는 가장 은밀하고 우아한 주권 선언이다.
밤이 깊어지면 우리는 다시 내일의 계산서 앞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출근 카드의 시계는 어김없이 돌아갈 것이고, 만원 지하철은 흔들릴 것이며, 세상은 우리에게 더 기민하게 실속을 챙기고 트렌드를 좇는 부품이 되라고 끊임없이 재촉할 것이다. 완벽한 환경이나 넉넉한 여유 같은 것은 우리의 생애 내내 쉽게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온 세상이 수익성과 효율의 깃발을 흔들 때, 우리에게도 돈 안 되는 낭만 하나쯤은 품고 살아갈 권리가 있다. 잠들기 전 마음을 울리는 문장 몇 줄을 가만히 소리 내어 읽어보는 일, 이어폰 너머로 흐르는 노래를 온전히 듣기 위해 일부러 지름길을 놔두고 가장 먼 길로 돌아가는 밤의 느긋함 같은 것들 말이다.
어차피 모든 것은 지나간다. 오늘 작성한 업무 일지도, 통장에 찍힌 잔고의 숫자도 언젠가는 바래진 영수증 종이처럼 흐릿해질 것이다. 계산서의 무거운 압박을 잠시 내려놓고, 남들이 보기엔 한없이 무용해 보이는 그 작은 취향의 궤도 위로 나만의 발걸음을 얹을 때, 삶은 비로소 고단한 생존의 노동을 멈추고 저 먼 토성의 별빛처럼 은은한 스윙을 시작한다.
출처
- Jazz in Silhouette (Saturn Records, SR-200 / LP 224)Saturn Records / Evidence Music원전
- Space Is the Place: The Lives and Times of Sun RaPantheon Books / Da Capo Press (John Szwed)원전
- La Part maudite (The Accursed Share / 저주의 몫)Éditions de Minuit / 문학동네 (조르주 바타유)원전
- The Autobiography of Benjamin Franklin & Advice to a Young TradesmanYale University Press / Penguin Classics (Benjamin Franklin)원전
- Sun Ra: Art on Saturn: The Album Covers of Sun Ra's Saturn LabelFantagraphics Books (John Corbett, Irwin Chus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