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ZZY

ESSAY / 034

오늘 하루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더라도

Even If Nothing Was Achieved Today

세상이 요구하는 성취를 하나도 남기지 못한 날에도, 몸의 정직한 삼박자를 지켜냈다면 그 하루는 실패가 아니다.

글
사월
발행일
주제
장기하 · 에피쿠로스 · 행동
방 안의 고양이

소파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손바닥 크기의 화면을 내려다본다. 오늘 아침 분주하게 열어두었던 메모 앱 안에는 아직 체크 표시를 달지 못한 사각형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답장을 보내지 못한 업무 메일 석 통, 읽다 만 책의 서른 번째 페이지, 언젠가 해내겠다고 적어둔 장기 프로젝트의 첫 줄. 창밖 골목길에서는 밤바람에 실려 온 젖은 아스팔트 냄새가 희미하게 스치고, 건조대에 널어둔 빨래에서는 채 마르지 않은 섬유유연제 향이 나지막이 번져 나온다.

몸은 무겁게 가라앉아 당장이라도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싶지만, 머릿속은 엉뚱한 부채감으로 들끓는다. '오늘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해냈는가.' 남들은 일주일 만에 새로운 일을 벌여 번듯한 결과물을 내놓고, 눈부신 숫자가 적힌 계좌 잔고나 포트폴리오를 자랑하며 저만치 앞서 달려가는 것 같은데, 내 하루는 고작 몇 개의 자잘한 잡무를 쳐내다 끝나버렸다는 자책. 아무런 뚜렷한 진전을 남기지 못한 채 또 하루의 장부를 닫아야 한다는 사실이, 마치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가슴 한구석을 조여온다.

우리는 언제부터 하루의 가치를 오직 '눈에 보이는 생산물'로만 계량하게 되었을까. 왜 아무런 거창한 결과물을 남기지 못한 날의 침대는 이토록 서늘하고 죄스럽게 느껴지는 것일까.

스마트워치는 손목 위에서 쉴 새 없이 진동하며 하루 동안 걸은 걸음 수와 소모한 열량, 심장 박동의 평균치를 그래프로 요약해 보여준다. 세상은 우리에게 더 효율적인 인간이 되라고, 남는 시간을 분초 단위로 쪼개어 무언가 쓸모 있는 역량을 쌓아 올리라고 끊임없이 채근한다. 휴식조차 온전한 쉼이 되지 못하고, 주말의 빈 시간마저 미래를 위한 대비책으로 채워 넣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시대. 철학자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날카롭게 지적했듯, 현대인은 외부의 강요나 규율이 없어도 스스로 성과주체가 되어 자신을 자발적으로 착취한다. "할 수 있다"는 긍정성의 과잉 속에서, 무언가를 성취하지 못한 하루는 곧 자기관리의 실패이자 낙오로 둔갑한다.

심지어 잠을 자고, 끼니를 챙기고, 운동을 하는 원초적인 행위마저 생산성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으로 편입되었다. 밤에 잠을 청하는 것은 내일 더 또렷한 정신으로 일하기 위한 배터리 충전이 되고, 점심 식사는 오후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한 연료 주입이 되며, 퇴근 후 땀을 흘리는 것은 오래 버티기 위한 체력 관리라는 과제가 된다. 삶의 가장 밑바닥에 놓인 동물적 리듬마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밀려나 있을 때, 우리는 쉬면서도 마음을 졸이고 움직이면서도 스스로를 감시한다.

이 피로한 계산의 쳇바퀴 한가운데서, 장기하가 툭 던진 말 한마디는 묘한 파문을 일으킨다. 가장 화려하게 질주하던 밴드의 간판을 스스로 내리고 온전한 일인분의 생활인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의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와 여러 자리에서 전혀 다른 어법으로 삶을 읊조렸다. 거창한 예술적 영감이나 비장한 야망을 뽐내는 대신, 그가 책 속에 적어 내려간 것은 혼자 찌개를 끓여 따뜻한 밥을 챙겨 먹는 일, 정오 무렵 운동화를 신고 나가 숨이 턱에 닿도록 몸을 움직이는 일, 땀을 흠뻑 흘린 뒤 찬물로 씻고 나와 마시는 맥주 한 모금의 감각이었다. 그리고 그는 방송에 나와 담담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잘 자고 잘 먹고 운동하면 그 날은 행복을 이룬 것이다."

이 무심한 선언은 기원전 4세기 아테네 외곽, 성벽 바깥에 소박한 '정원'을 가꾸었던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사유와 곧장 맞닿는다. 세상 사람들은 쾌락이라는 단어 뒤에 숨은 방탕한 잔치나 끝없는 탐닉을 떠올리며 그를 오해하곤 하지만, 에피쿠로스가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밝힌 삶의 최고선은 전혀 다른 자리에 있었다. 그가 말한 행복이란 화려한 명예나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몸에 고통이 없는 상태인 '아포니아'와 마음에 불안과 동요가 없는 평정인 '아타락시아'였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욕망을 세 가지로 엄격하게 분별했다. 첫째는 갈증과 배고픔, 추위처럼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반드시 채워야 하는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욕망'이다. 둘째는 값비싼 미식이나 화려한 치장처럼 굳이 없어도 생명에 지장이 없는 '자연스럽지만 필수적이지 않은 욕망'이다. 그리고 셋째는 끝없는 부와 세상의 칭송, 영원히 기억되고자 하는 야심처럼 채우려 할수록 인간을 불안의 노예로 만드는 '공허한 욕망'이다. 에피쿠로스는 단언했다. 물 한 잔과 빵 한 덩이로 몸의 허기를 달래고,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지붕 아래서 정직한 쉼을 누릴 수 있다면, 인간은 신조차 부러워하지 않을 온전한 충족감, 즉 결핍이 비워진 자리에서 차오르는 정적인 쾌락에 도달할 수 있다고.

그렇다면 장기하의 일상적 실천과 에피쿠로스의 오랜 지혜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피로사회와 어디서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것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수단과 목적'의 자리가 뒤바뀌는 지점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성과주의의 시선에서 수면과 식사와 운동은 언제나 더 큰 성취를 위한 준비 작업, 즉 '내일 더 높은 생산성을 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하지만 장기하와 에피쿠로스의 태도에서 밥을 정성스레 챙겨 먹고, 땀을 흘려 근육을 쓰고, 탈 없이 잠자리에 눕는 일은 다른 어떤 과업을 달성하기 위한 징검다리가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이미 완결된, 오늘 하루라는 연주의 최종 목적이다. 오늘 하루 세상이 칭찬할 만한 기획서를 쓰지 못했더라도, 통장의 숫자를 불리지 못했더라도,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내 몸의 기본 삼박자를 탈 없이 돌려놓았다면 그 하루는 결코 낭비된 시간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에피쿠로스의 정원과 오늘의 방 안 사이에는 쉽게 메울 수 없는 시대의 간극 또한 놓여 있다. 에피쿠로스의 정원은 번잡하고 어지러운 폴리스의 정치를 피해 성벽 바깥으로 물러났던 탈속의 공간이었다. "숨어서 살라"는 그의 격언처럼, 고대의 지혜는 세속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는 은둔에 가까웠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도시를 버리고 산속으로 도망칠 수 없다. 매일 쏟아지는 업무 연락과 피할 수 없는 관계의 피로, 소음과 먼지로 가득한 일상 한복판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장기하의 태도가 현실적인 힘을 갖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말하는 몸의 완료는 세상을 등지는 나태나 포기가 아니다. 끊임없이 자극을 쏟아내는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스스로 운동화 끈을 묶는 일, 번잡한 배달 음식의 포장지를 치우고 내 손으로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차려내는 일, 복잡한 잡념이 머릿속을 갉아먹기 전에 몸을 먼저 움직여 정직한 피로를 만들어내는 일은 결코 게으른 도피가 아니다. 그것은 끝없이 자아를 착취하려는 성과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단단한 제약과 박자를 지켜내기 위해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가장 능동적이고 세속적인 생존의 규율이다.

16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드 몽테뉴는 《수상록》의 마지막 장에서 인간의 부질없는 영웅주의를 꾸짖으며 이렇게 적었다. "우리의 가장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걸작은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 밖의 모든 일들, 즉 군림하고 재물을 모으고 건물을 짓는 따위의 일은 기껏해야 보잘것없는 덧붙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인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왕좌에 앉아 있다 해도, 우리는 결국 자기 엉덩이로 앉아 있을 뿐이다." 아무리 대단한 사회적 가면을 쓰고 그럴듯한 직함을 얻었을지라도, 인간은 결국 하루 세 끼 밥을 먹고, 밤이 되면 누워 잠을 자야만 하는 동물적 몸의 조건을 벗어날 수 없다. 그 정직한 조건을 가볍게 여기는 순간, 영혼의 모든 성취는 모래 위에 쌓은 탑처럼 위태로워진다.

손가락을 움직여 화면을 끄고, 책상 위에 스마트폰을 엎어둔다. 여전히 체크 표시가 붙지 않은 네모 칸들이 메모장 속에 남아 있을 것이고,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처리해야 할 일들의 무게는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잣대로만 따진다면 오늘은 아무런 눈에 띄는 실적도, 자랑할 만한 기념비도 세우지 못한 평범하고 시시한 하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욕실 거울 앞에서 물기를 닦아내며 가만히 몸의 감각에 귀를 기울이고 그 피로에 정직하게 응답해본다. 오늘 낮 거르지 않고 내 몫의 따뜻한 밥을 챙겨 먹었고, 짧은 시간이라도 숨이 가빠지도록 몸을 움직여 이마에 맺힌 땀을 씻어냈으며, 이제 고단했던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고 이불 속으로 편안히 발을 밀어 넣고 있다면. 머릿속의 복잡한 불안 대신 근육의 나른한 당김과 베개의 서늘한 감촉이 피부에 온전히 와닿고 있다면.

그 하루는 결코 비어 있는 하루가 아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수많은 합격증과 숫자를 하나도 채워 넣지 못했을지라도, 우리는 오늘이라는 무대 위에서 가장 묵직하고 정직한 기본음을 흔들림 없이 짚어낸 것이다.

출처

  1. 상관없는 거 아닌가?문학동네 (장기하 산문집)원전
  2. Letter to Menoeceus & Principal Doctrines (Diogenes Laertius, Lives of Eminent Philosophers Book X)Oxford University Press / Harvard University Press (Loeb Classical Library)원전
  3. Müdigkeitsgesellschaft (The Burnout Society / 피로사회)Matthes & Seitz Berlin / 문학과지성사 (한병철)원전
  4. Essais, Livre III, Chapitre 13 "De l'expérience" (수상록)Éditions Gallimard / 민음사 (미셸 드 몽테뉴)원전
  5.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Epicurus"Stanford University (David Konstan)
  6. Groovy (Track: C-Jam Blues, Prestige 7113)Concord Music Group / Prestige Records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