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ARDS / 개념
아타락시아
Ataraxia
아타락시아(Ataraxia)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제시한 이상적인 마음의 상태로, 직역하면 '동요가 없음' 또는 '마음의 평정'을 뜻한다. 감각적 쾌락을 끝없이 탐닉하는 것이 아니라, 헛된 두려움과 불필요한 욕망을 덜어내어 마음에 아무런 불안이나 혼란이 없는 고요하고 자족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어디서 나온 말인가
아타락시아라는 말의 가장 분명한 출처는 기원전 3세기경 에피쿠로스가 제자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낸 편지(Epistula ad Menoeceum)다. 이 편지는 3세기 전기 작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남긴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제10권에 온전히 실려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후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질서가 무너지고 거대한 제국의 격변 속에서 개인이 길을 잃던 시절, 에피쿠로스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인 행복(eudaimonia)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간결한 문장으로 설명했다. 그는 편지에서 이렇게 적는다.
"우리가 쾌락이 목적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방탕한 자들의 쾌락이나 육체적 향락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뜻하는 것은 몸에 고통이 없고 마음에 동요가 없는 상태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낸 편지》 131절)
그리스어로 '타라케(tarache)'는 거친 파도가 일렁이듯 마음을 뒤흔드는 혼란이나 전율, 공포를 뜻한다. 여기에 부정을 뜻하는 접두사 '아(a-)'가 붙어, 마음을 뒤흔드는 온갖 풍랑이 멎고 고요해진 상태를 가리키게 되었다. 에피쿠로스는 행복이란 무언가를 끊임없이 긁어모으는 데 있지 않고, 육체의 고통을 덜어내는 '아포니아(aponia)'와 영혼의 평정을 지키는 '아타락시아'라는 두 축이 온전히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흔한 오해
오늘날 포털 검색창이나 일상 대화에서 에피쿠로스라는 이름은 종종 '미식가(epicure)'나 화려한 파티를 즐기는 '방탕한 쾌락주의자'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쾌락주의(Hedonism)라는 단어가 주는 강렬한 감각적 인상 탓에, 많은 이들이 그를 본능적 욕망을 마음껏 발산하라고 부추긴 철학자로 기억한다.
이러한 오해는 철학사에서 가장 오래된 왜곡에 속한다. 고대 로마의 정적들과 스토아학파의 비판자들은 에피쿠로스 학파를 깎아내리기 위해 그들이 돼지처럼 관능적 탐닉에 빠져 산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후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도 육체적 쾌락을 긍정하는 헬레니즘 사상을 이단시하면서 이 같은 편견은 한층 더 깊어졌다.
그러나 에피쿠로스가 말한 쾌락의 본뜻은 정반대였다. 그는 쾌락을 두 갈래로 엄격하게 구분했다. 첫째는 갈증을 채우거나 감각을 자극할 때 느끼는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동적 쾌락(kinetike hedone)'이다. 둘째는 결핍과 고통이 완전히 해소된 뒤 찾아오는 안정된 충만함, 즉 '정적 쾌락(katastematike hedone)'이다.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것은 바로 정적 쾌락이었다. 그는 더 맛있는 음식, 더 강한 자극을 좇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더 큰 결핍과 상실의 불안을 낳아 고통으로 이어질 뿐이라고 경고했다. 결핍의 고통이 사라진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쾌락의 한계이자 가장 순수한 완성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가 삶에서 도달한 태도
에피쿠로스의 아타락시아는 추상적인 논리 놀음이 아니라, 그가 직접 살아낸 삶의 방식에서 길어 올린 태도였다. 기원전 306년경, 그는 아테네 성벽 외곽에 작은 집과 텃밭을 마련했다. 사람들은 이곳을 '정원(Kepos)'이라 불렀다.
그 시절 아테네는 정치적 야망과 권력 다툼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출세와 명예를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는 아고라 광장을 떠나 정원으로 물러났다. 그 정원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공간이었다. 노예와 여성, 가난한 이들까지 신분의 귀천 없이 평등하게 드나들며 사유를 나누었다.
정원의 식탁은 사치스러운 연회와 거리가 멀었다. 주식은 소박한 빵과 물이었고, 누군가 작은 치즈 한 덩이를 보내오면 그들은 축제를 벌이듯 기뻐했다. 이 소박한 식탁 뒤에는 인간의 욕망을 세 갈래로 정밀하게 분별한 그의 엄격한 기준이 있었다.
첫째는 갈증을 푸는 물이나 추위를 피하는 옷처럼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욕망'이다. 둘째는 값비싼 진미나 고급 의복처럼 '자연스럽지만 필수적이지 않은 욕망'이다. 셋째는 권력, 명성, 대중의 찬사를 좇는 '자연스럽지도 않고 필수적이지도 않은 헛된 욕망'을 꼽았다.
에피쿠로스는 첫 번째 필수적 욕망은 채우기 쉬워 결핍의 고통을 곧바로 덜어주지만, 명예나 권력 같은 헛된 갈망은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아 인간을 끝없는 비교와 경쟁, 불안의 수렁으로 밀어 넣는다고 지적했다. 자연스럽지만 필수적이지 않은 기호 또한 가끔 주어질 때 기쁘게 누릴 수는 있으나 결코 삶의 조건으로 매달릴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는 두 가지 큰 공포, 곧 신의 징벌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공포 역시 자연학을 통해 털어냈다. 세계는 원자와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신은 인간사에 개입하지 않으며, 죽음은 단지 육체와 감각의 해체일 뿐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없고, 죽음이 닥쳤을 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의 유명한 명제는 죽음이라는 그림자를 삶에서 지워내기 위한 사유였다.
아타락시아는 모든 감각을 차단하는 무감각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인정이나 세상의 소음에 휘둘리지 않고, 결핍 없는 몸과 평온한 마음으로 오늘 마주한 벗과 빵을 나누는 자족의 감각이다.
오늘 우리의 한 주에서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이 성취와 증명을 요구하는 세상에 산다. 손안의 화면은 타인의 화려한 일상과 성공담을 쉼 없이 비추고, 알고리즘은 더 자극적인 소비와 새로운 경험을 재촉한다. 잠시 걸음을 멈추면 뒤처질 것 같은 초조함이 일상을 짓누른다.
이러한 피로 속에서 에피쿠로스의 태도는 우리에게 단순한 물음을 돌려준다. 지금 내 가슴을 조이는 불안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결핍 때문인가, 아니면 세상이 주입한 헛된 욕망 때문인가.
아타락시아에 닿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그것은 삶에 덕지덕지 붙은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털어내는 일상의 손질이다. 모니터 구석에 끝없이 띄워둔 인터넷 쇼핑 창을 닫고, 이번 주말에 반드시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는다.
퇴근길, 무겁게 들고 있던 가방을 방 한편에 내려놓고 컵에 물을 채운다. 입술에 닿는 미지근한 물의 촉감을 느끼며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화려한 연회 없이도 내 몸과 마음에 더 보탤 것이 없음을 알아차릴 때, 어지럽던 한 주의 파도는 비로소 잦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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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아타락시아는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요?
그리스어로 '흔들림이나 동요(tarache)가 없다(a-)'는 뜻으로, 외부의 충격이나 내면의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는 고요한 마음의 평정을 의미합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이 평정심을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온전한 행복의 상태로 보았습니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방탕한 쾌락 추구와 어떻게 다른가요?
에피쿠로스가 말한 쾌락은 자극을 쫓는 순간적 탐닉이 아니라, 결핍과 고통이 사라진 뒤 찾아오는 안정된 충만입니다. 그는 채워지지 않는 무한한 욕망이 오히려 불안을 낳는다고 보았으며, 빵과 물 한 잔으로 자족하는 단순한 삶을 진정한 쾌락의 길로 여겼습니다.
아포니아(Aponia)와 아타락시아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아포니아는 육체에 고통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고, 아타락시아는 마음에 불안이나 동요가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에피쿠로스는 몸의 고통이 없고 마음에 불안이 없는 이 두 가지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인간이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스토아학파의 아파테이아와는 무엇이 다른가요?
스토아학파의 아파테이아(Apatheia)가 감정과 열정을 이성으로 엄격하게 통제하고 초월하는 부동심이라면, 에피쿠로스의 아타락시아는 고통과 불안의 원인을 지혜롭게 분별하여 자연스럽고 소박한 기쁨을 누리는 온화한 평정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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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Letter to Menoeceus & Principal Doctrines (Diogenes Laertius, Lives of Eminent Philosophers Book X)Oxford University Press / Loeb Classical Library원전
- Epicurus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Stanford University (David Konstan)
- The Hellenistic Philosophers: Volume 1 (Translations of the Principal Sources with Philosophical Commentary)Cambridge University Press (A. A. Long, D. N. Sedl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