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ARDS / 개념
아우라
Aura
아우라(Aura)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 발터 벤야민이 정립한 미학 개념으로, 예술작품이나 자연물이 지닌 '지금 여기(Hier und Jetzt)'의 유일무이한 현존성과 역사적 고유성을 뜻한다. 벤야민은 이를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한없이 먼 것의 일회적 나타남'이라 정의하며, 사진과 영화 같은 기술복제 시대에 원본의 아우라가 붕괴한다고 진단했다.
어디서 나온 말인가
아우라(Aura)는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미풍', '숨결', '공기의 기운'을 뜻하던 낱말이다. 이 단어를 현대 미학과 철학의 핵심 개념으로 끌어올린 인물은 20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문학비평가 발터 벤야민이다. 그는 1931년 에세이 〈사진의 작은 역사〉에 이어 1936년에 발표한 논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에서 사진과 영화의 등장이 인간의 감각과 예술의 본질을 어떻게 뒤바꾸었는지 분석하며 아우라를 정의했다.
벤야민에 따르면 아무리 정교하고 완벽한 복제 기술이라 할지라도 원본 예술작품이 가진 단 한 가지 요소만큼은 결코 베껴낼 수 없다. 바로 그 작품이 탄생해 시간을 견뎌온 구체적인 장소와 순간, 즉 '지금 여기(Hier und Jetzt)'라는 일회적 현존성이다. 오랜 세월 동안 작품의 표면에 내려앉은 물리적 마모와 역사의 흔적이 곧 원본의 진품성(Echtheit)을 이루며, 이 고유한 현존성이 뿜어내는 권위를 벤야민은 아우라라고 불렀다.
그는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제3절에서 자연의 대상을 예로 들어 아우라를 다음과 같이 시적으로 규정했다.
'어느 여름날 오후 휴식을 취하면서 지평선에 뻗어 있는 산맥의 능선이나 바라보는 사람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는 나뭇가지를 눈으로 따라가노라면, 우리는 이 산이나 나뭇가지의 아우라를 호흡하고 있는 것이다. 아우라란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한없이 먼 것의 일회적 나타남이다.'
과거의 예술작품은 동굴 벽화나 성당 제단화처럼 종교적 의식과 맞물려 있었다. 그 작품을 보려면 직접 그 성당까지 걸어가야 했고, 함부로 손대거나 소유할 수 없는 그 거리감이 경외심을 만들었다. 그러나 사진과 음반, 영화는 대상을 원래 있던 장소에서 떼어내어 수만 개의 복제품으로 만들어냈고, 대중이 각자의 방 안에서 언제든 대상을 가까이 끌어당겨 소비할 수 있게 하면서 마침내 아우라의 해체를 불러왔다.
흔한 오해
오늘날 텔레비전 방송이나 패션 잡지, 소셜 미디어에서 아우라는 일상어처럼 널리 쓰인다. 하지만 미디어가 소비하는 방식과 벤야민의 본래 사유 사이에는 세 가지 뚜렷한 간극이 놓여 있다.
첫 번째 오해는 아우라를 유명인이나 고가의 명품이 풍기는 '카리스마'나 '고급스러운 후광'으로만 이해하는 시선이다. 연예 기사는 화면을 압도하는 배우의 매력을 두고 아우라가 넘친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벤야민은 오히려 영화배우의 인위적인 스타성이나 후광을 아우라의 정반대에 놓았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는 관객과 지금 여기에 함께 호흡하는 연극배우와 달리 아우라를 박탈당한 상태이며, 영화 산업이 이를 감추기 위해 스튜디오 바깥에서 '개성이라는 마술'과 상품화된 스타 숭배를 인위적으로 조작해 낸다고 비판했다.
두 번째 오해는 아우라를 신비주의적인 영적 에너지나 초능력의 기운으로 여기는 태도다.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는 초자연적인 빛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이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노화하고 흔적을 축적하며 만들어낸 철저히 역사적이고 물질적인 관계다. 누군가 수십 년 동안 손으로 쥐어 닳아버린 만년필이나 그날 저녁 단 한 번 흔들리는 나뭇잎의 그림자처럼,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시간의 두께가 아우라의 실체다.
세 번째 오해는 벤야민이 아우라의 소멸을 한탄하며 과거의 순수 예술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는 통념이다. 벤야민은 아우라가 사라지는 현상을 감상적인 향수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그는 기술복제가 예술을 소수 특권층의 밀실과 제의적 숭배에서 해방시켜 대중의 삶 한복판으로 끌어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다만 그 해방의 과정 속에서 인간이 사물의 고유한 시간과 타자의 거리감을 호흡하는 능력까지 함께 잃어버릴 때 어떤 감각적 빈곤이 찾아오는지를 입체적으로 성찰했을 뿐이다.
그가 삶에서 도달한 태도
벤야민이 '지금 여기'의 일회성과 사라져가는 것들의 흔적에 그토록 집착했던 이유는 그의 삶 자체가 영구적인 거처를 허락받지 못한 망명자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유대계 독일 지식인이었던 그는 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베를린을 떠나 파리로 망명했고, 1940년 나치의 프랑스 침공으로 다시 피란길에 올라 스페인 국경 마을 포르트보우에서 생을 마감했다. 안정된 대학교수 자리도, 평생 모은 장서를 보관할 서재도 지켜낼 수 없었던 그에게 세계는 거대하고 매끄러운 진보의 행진이 아니라 끊임없이 부서지고 흩어지는 폐허의 현장이었다.
그는 세상이 거대한 복제물과 획일화된 구호로 뒤덮일수록, 역사의 중심에서 밀려난 작은 파편과 낡은 사물들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파리의 낡은 아케이드 상가, 먼지 쌓인 고서, 아이들의 장난감, 텅 빈 새벽 거리를 찍은 외젠 앗제의 사진 속에서 그는 복제 불가능한 삶의 호흡을 길어 올렸다.
만년의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가 젊음의 화려한 기교와 치아를 모두 잃어버린 뒤, 1987년 도쿄 공연에서 부서진 입술과 마른 숨소리로 〈Almost Blue〉를 불어넣었을 때 청중의 가슴을 친 것도 바로 이 대체 불가능한 시간의 흔적이었다. 매끄럽게 보정된 스튜디오 음원이 지워버리는 연주자의 갈라진 호흡과 마모된 음색은, 어떤 복제 기술로도 흉내 낼 수 없는 한 인간의 고유한 생애를 증명한다. 벤야민에게 아우라를 감각한다는 것은 화려한 후광을 숭배하는 일이 아니었다. 내 눈앞의 존재가 나와는 다른 시간을 건너와 지금 여기에 단 한 번 마주 서 있다는 그 아득한 거리감을 존중하는 일이었다.
오늘 우리의 한 주에서
우리는 인류 역사상 복제 이미지가 가장 넘쳐나는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침대에 누워 엄지손가락을 움직이면 지구 반대편의 윤슬, 유명 미술관의 명화, 완벽하게 보정된 타인의 일상이 고화질 화면으로 끝없이 밀려 들어온다. 모든 대상을 내 손바닥 안으로 바짝 끌어당겨 1초 만에 소비하고 넘겨버리는 세계에서, 아득한 거리감이나 일회적 경외감이 끼어들 틈은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가까이 끌어당겨 소유하려는 그 편리함 속에서 우리의 감각은 자주 허기를 느낀다. 수천 장의 풍경 사진을 저장해 두고도 정작 오늘 저녁 내 방 창문으로 비스듬히 스며드는 햇빛의 기울기는 보지 못하고, 언제든 다시 재생할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에 눈앞에 앉은 사람의 목소리를 흘려듣기 때문이다.
벤야민이 여름날 오후의 산맥과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말했던 아우라의 호흡은 거창한 미술관에 있지 않다. 그것은 대상을 내 입맛대로 캡처하고 통제하려는 조급한 손을 잠시 내려놓을 때 회복된다.
오늘 퇴근길에 마주친 가로수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며 만드는 그림자는 내일 같은 시각에 가도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 식탁 건너편에 앉은 사람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짓는 지친 표정 역시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일회적 사건이다.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에 가두는 대신, 눈앞의 풍경과 사람 사이에 놓인 고유한 시간을 인정하며 한 걸음의 거리를 남겨두는 것. 저녁 공기를 들이마시며 눈앞의 나뭇가지가 드리우는 그림자를 눈으로 천천히 따라가 보는 그 몇 초의 멈춤에서, 복제할 수 없는 오늘 하루가 비로소 제 윤곽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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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일상에서 흔히 쓰는 '연예인의 아우라'와 벤야민의 아우라는 어떻게 다른가요?
대중 미디어에서는 특정 인물이 풍기는 독보적인 분위기나 후광, 카리스마를 뜻하는 수식어로 쓰입니다. 반면 발터 벤야민의 철학에서 아우라는 인물의 매력도가 아니라, 복제될 수 없는 사물이나 순간이 '지금 여기'에 단 한 번 존재함으로써 갖는 시공간적 유일무이함과 거리감을 가리킵니다.
발터 벤야민은 어느 책에서 아우라 개념을 설명했나요?
1931년 발표한 에세이 〈사진의 작은 역사〉에서 초기 사진 미학을 분석하며 처음 개념을 제시했고, 1936년 발표한 대표작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기술복제로 인한 아우라의 소멸과 예술의 사회적 기능 변화를 본격적으로 정식화했습니다.
기술복제 시대에 아우라가 소멸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과거의 예술작품은 특정 성당이나 궁전이라는 고유한 장소에 단 하나만 존재하며 경외감(제의적 가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사진과 영화, 인쇄 기술로 똑같은 이미지를 수만 장 복제해 어디서나 소비할 수 있게 되면서, 원본만이 지니던 '지금 여기'의 일회적 권위와 거리감이 해체되었다는 뜻입니다.
벤야민은 아우라가 사라지는 현상을 일방적인 퇴보로만 보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벤야민은 아우라의 붕괴에 따른 전통적 고유성의 상실을 예리하게 포착하면서도, 예술이 소수 특권층의 비밀스러운 숭배 대상(제의적 가치)에서 벗어나 대중 누구나 접근하고 비평할 수 있는 해방적 가능성(전시적 가치)을 얻게 되었다는 점을 양가적으로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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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Illuminations)Suhrkamp Verlag / Schocken Books원전
- Kleine Geschichte der Photographie (Selected Writings, Vol. 2)Harvard University Press원전
- Walter Benjamin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Stanford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