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ZZY

ESSAY / 055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은 오늘 한 번뿐이다

The Light Through the Leaves

매일 같은 자리에서 샌드위치를 먹어도, 머리 위에서 흔들리는 빛은 오늘 단 한 번뿐이다.

글
사월
발행일
주제
니나 시몬 · 시간 · 주의 집중과 감각 · 즉흥 · 단순함과 자족
공원 나무 사이로 비추는 햇빛

평일 정오, 도심 오피스 빌딩 숲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근린공원 벤치에 앉아 비닐 포장지를 벗긴 샌드위치를 베어 문다. 한 손에는 푸르스름한 액정이 켜진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화면 속에서는 어젯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화려한 사건들과 끝없이 이어지는 짧은 영상들이 매끄러운 손가락 움직임에 맞춰 위아래로 미끄러진다. 귓가로는 대로변을 질주하는 차량 엔진 소리와 점심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의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섞여 든다.

빌딩 사이를 빠져나온 바람 한 줄기에 머리 위 플라타너스 잎사귀들이 사각거리며 흔들린다. 회색 보도블록 위로 쏟아져 내리던 정오의 햇빛이 수천 개의 조각으로 잘게 부서지며 일렁인다. 고개를 들어 잎사귀 사이를 올려다보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의 시선은 무릎 위에 놓인 손바닥만 한 화면을 향해 꺾여 있다.

매일 정해진 시각에 알람을 끄고, 늘 타던 칸의 지하철에 몸을 싣고, 익숙한 서류를 넘기는 일상의 연속. 정오의 짧은 휴식마저 기계적인 일정의 한 칸으로 스쳐 지나가고 있다는 무력감이 발밑에서 차오른다. 어제 상영했던 오래된 필름을 오늘 아침 다시 틀어놓은 것처럼, 내 삶이 무의미한 영사본의 되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헛헛함이 마음을 찌른다.

우리는 종종 이 단조로움을 건너뛰기 위해 더 강렬하고 낯선 자극을 찾아 헤맨다. 프랑스의 비판이론가 기 드보르가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분석했듯, 상품과 화려한 이미지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우리의 구체적인 일상은 늘 보잘것없고 시시한 배경으로 밀려난다. 우리는 진짜 삶이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이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이국적인 휴양지나 값비싼 소비, 타인의 감탄을 끌어내는 특별한 사건 속에만 존재한다고 믿도록 길들여진다. 일상을 벗어나야 할 덫으로 규정할수록, 정작 매주 통과해야 하는 현실은 색채를 잃고 빛바랜 껍데기로 남는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의 하루는 어제의 무기력한 되풀이에 불과한 것일까. 우리가 지루함을 느끼는 까닭은 실제로 하루가 똑같이 반복되기 때문일까, 아니면 매 순간 새롭게 도착하는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감각의 둔화에 있는 것일까.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는 도쿄 시부야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노동자다. 그의 하루는 수도승의 일과처럼 일정한 호흡으로 반복된다. 동틀 무렵 이웃 노인이 골목길을 쓰는 사각거리는 빗자루 소리에 눈을 뜨고, 방 한구석 작은 묘목들에 분무기로 물을 뿜어 적신 뒤, 자판기에서 뽑은 차가운 캔커피를 손에 쥐고 승합차에 오른다. 손때 묻은 카세트테이프 데크에서 흘러나오는 1970년대 록 음악을 들으며 아직 잠이 덜 깬 도쿄의 도로를 달려 일터로 향한다.

남들이 기피하는 공중화장실 청소지만, 그의 손길에는 군더더기나 망설임이 없다. 작은 손거울을 바닥 틈새에 비추어가며 육안으로는 닿지 않는 변기 테두리 안쪽의 찌든 때까지 찾아내 꼼꼼하게 문지른다. 그렇게 오전의 청소를 마치고 정오가 찾아오면, 그는 신사 경내의 익숙한 나무 벤치에 앉아 편의점 샌드위치를 꺼낸다.

비닐 포장을 벗겨 한 입 베어 물기 전, 그는 가장 먼저 고개를 들어 머리 위의 울창한 나뭇가지들을 올려다본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무성한 잎사귀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빛이 은빛과 금빛으로 흩뿌려진다. 일본에서는 나뭇잎 사이로 비쳐 드는 햇빛과 그로 인해 바닥에 드리우는 그림자의 음영을 '코모레비(木漏れ日)'라고 부른다. 히라야마는 작업복 주머니에서 작은 콤팩트 필름 카메라를 꺼내 머리 위의 빛을 향해 렌즈를 겨눈다. 그럴듯한 구도를 계산하지 않고, 바람이 불어 빛이 잘게 쪼개지는 바로 그 찰나를 기다려 셔터를 누른다.

주말이 되면 그는 단골 현상소를 찾아 인화된 봉투를 받아 든다. 기대만큼 빛이 맺히지 않은 컷은 미련 없이 반으로 찢어 쓰레기통에 넣고, 빛과 어둠의 대비가 선명하게 살아난 몇 장만을 골라 연도와 월이 적힌 틴케이스에 차곡차곡 담는다. 그 결과물을 남에게 과시하거나 벽에 걸어두는 법도 없다. 영화의 마지막 자막이 짚어내듯, 코모레비는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사이로 태양과 나뭇가지가 마주칠 때만 생겨나며 '오직 그 순간에만 단 한 번 존재하는 빛'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필름을 모으는 일은 무언가를 소유하려는 욕심과 거리가 멀다. 매일 흘러가 사라지는 빛의 시간을 제 손으로 통과했다는 내밀한 확인에 가깝다.

18세기 일본의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저서 《겐지모노가타리 다마노오구시》에서 인간의 본원적 심성으로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를 제시했다. 세상의 사물과 정경을 깊이 마주했을 때 가슴속에서 자연스럽게 솟구치는 감응을 뜻하는 이 개념은, 만물의 무상함 앞에서 느끼는 애잔한 정조로 자주 읽혀왔다. 활짝 핀 꽃은 이내 시들고, 계절은 머무르지 않으며,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 스러진다는 피할 수 없는 소멸 앞에서 생겨나는 슬픔이다.

그러나 히라야마가 잎사귀 사이의 햇빛을 올려다보며 짓는 엷은 미소는 그 정조의 방향을 전환한다. 코모레비는 멈추어 서지 않는다. 바람이 잦아들면 빛의 무늬는 흩어지고, 태양의 각도가 조금만 기울어도 흔적 없이 사라진다. 히라야마에게 이러한 사라짐의 필연성은 오히려 지금 눈앞에서 반짝이는 순간을 유일무이한 사건으로 완성하는 바탕이 된다. 영원하지 않은 사물 속에서 오늘의 빛은 어제와 같을 수 없고, 내일 다시 오지 않을 정오의 짧은 반짝임은 그 자체로 충만한 기쁨이 된다. 소멸을 응시하며 지금 여기에 온전히 감응하는 태도, 그것이 히라야마가 코모레비를 바라보며 건네는 모노노아와레의 새로운 응답이다.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에서 매일 새벽 호수에 몸을 담그며 하루의 갱신을 맞이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예술이라고 적었다. 소로는 문명의 소란을 벗어나 숲이라는 격리된 공간으로 물러남으로써 그 갱신의 감각을 지키려 했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 역시 루앙 대성당이나 건초더미 앞에서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의 떨림을 붙잡기 위해 같은 대상을 계절과 시간대별로 수십 번씩 캔버스에 옮겨 담았다. 미술사의 혁신을 향한 치열한 집념이었다.

하지만 히라야마의 발걸음은 소로나 모네와 갈라진다. 그는 문명을 등지고 깊은 숲으로 떠나지 않았다. 도쿄라는 번잡한 대도시의 한복판, 공중화장실 앞이라는 가장 궂은 생활의 현장에서 그 찰나의 빛을 응시한다. 역사에 남을 위대한 걸작을 완성해 타인의 갈채를 받겠다는 포부도 없다. 그에게 잎사귀 사이의 빛을 필름에 담는 행위는 세상을 향한 예술적 선언이라기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무의미하게 마모되지 않도록 붙들어 매는 소박한 생활의 의례다.

재즈의 생명력 역시 매일 밤 같은 코드 진행을 연주하면서도 결코 같은 프레이즈를 되풀이하지 않는 즉흥 변주(Variation)에 있다. 정해진 악보와 마디는 바탕일 뿐, 연주자는 그날 무대의 공기와 동료의 숨소리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허공으로 흩어질 단 하나의 솔로를 빚어낸다. 히라야마에게 매일 똑같이 돌아가는 청소 노동과 출퇴근길은 영혼을 옭아매는 굴레가 되기는커녕, 매 순간 새로운 즉흥의 선율을 얹을 수 있도록 바닥을 받쳐주는 든든한 리듬 섹션 역할을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히라야마는 새벽 햇살을 정면으로 맞으며 승합차의 운전대를 잡는다. 카세트 플레이어에서는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 힘차게 울려 퍼진다.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 위로 미소와 눈물이 복잡하게 겹쳐 흐른다. 지나온 세월 동안 쌓였을 상처와 후회를 없던 일로 지우지 않으면서도, 차창을 가득 채우는 새로운 아침의 빛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표정이다. 기쁨과 슬픔이 한데 엉켜 피어나는 그 무언의 떨림은, 삶의 유한성을 통과한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수긍의 순간을 보여준다.

다시 도심 공원의 벤치. 손에 쥔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고개를 든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떼어 머리 위 플라타너스 잎사귀들을 바라본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회색 보도블록 위에 부서져 내리는 빛의 무늬는, 어제 이곳에 떨어졌던 빛과 결코 같지 않다. 바람의 속도가 다르고, 태양의 각도가 다르며, 잎사귀의 모양도 어제와는 미세하게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계절이 바뀌면 잎은 떨어질 것이고 오늘의 이 흔들림은 기억 속에서도 희미해질 것이다. 모든 것이 흘러가 사라진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정오의 도심 바람을 타고 내려앉는 이 찰나의 빛은 값지다. 나뭇잎 사이로 비쳐 드는 햇빛은 영원하지 않다. 지금 보도블록 위에서 춤추는 이 빛은, 내 생애에서 오직 오늘 단 한 번 도착한 빛이다.

출처

  1. Perfect Days (Film & Screenplay)Master Mind Ltd. / Spoon Inc. (Wim Wenders & Takuma Takasaki, 2023)원전
  2. 源氏物語玉の小櫛 (Genji Monogatari Tama no Ogushi)本居宣長 (Motoori Norinaga, 1796/1799)원전
  3. Walden; or, Life in the WoodsTicknor and Fields (Henry David Thoreau, 1854)원전
  4. Wim Wenders and Kōji Yakusho Interviews on Perfect DaysScreen Slate / Film Comment / Cannes Press Kit (2023-2024)원전
  5. La Société du spectacleBuchet-Chastel (Guy Debord, 1967)
  6. I Put a Spell on You (Album)Philips Records (Nina Simone, 1965)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