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ZZY

ESSAY / 056

나다운 게 뭔데

The Tone That Remains

고정된 원래의 나라는 환상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울려 퍼지는 반응의 음색에 대하여.

글
사월
발행일
주제
빌 에반스 · 데이비드 흄 · 즉흥 · 시선
나다운 게 뭔데

금요일 늦은 저녁, 소란스러운 맥줏집 구석 탁자에서 맥주잔 표면에 맺힌 물방울을 엄지손가락으로 훔쳐내고 있을 때였다. 왁자지껄한 대화 틈새로 건너편 동료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야,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원래 이런 데서 그런 말 잘 안 하잖아."

탁자 아래로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발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손에 쥐고 있던 맥주잔을 내려놓자 축축한 종이 코스터 위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입안에서 맴돌던 다음 문장이 혀끝에서 굳어버렸다. 목구멍 바로 아래까지 "내가 어떤 사람인데?"라는 물음이 치밀어 올랐지만, 끝내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상대를 향해 쏘아붙이기 전에 내 안쪽에서도 마땅한 설명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멋쩍은 표정으로 잔을 채웠고, 나는 어색해진 공기를 메우려 헛기침을 몇 번 삼켰다.

상대방이 기억하는 나는 언제나 적당한 타이밍에 고개를 끄덕이고, 곤란한 부탁에도 말끝을 흐리며 웃어넘기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타인이 건네는 핀잔은 대개 우리가 그들의 기억 속에 정박해 둔 익숙한 모습에서 한 뼘이라도 비껴설 때 날아든다. 그들이 다루기 편한 과거의 배역에서 벗어나 낯선 어조를 내비칠 때, 세상은 기다렸다는 듯 원래의 칸막이 속으로 돌아오라고 손짓한다.

그런데 그들이 요구하는 원래의 모습이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서점의 매대마다 네 글자 알파벳으로 성격을 분류하는 책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고, 온갖 매체는 자신만의 고유한 브랜드를 찾아 확립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세상은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 손상되지 않은 순수한 알맹이가 숨겨져 있으며, 그것을 캐내어 단단히 움켜쥐어야만 흔들리지 않는 어른이 된다고 거듭 타이른다.

하지만 퇴근길 지하철 차창에 비친 멍한 얼굴을 들여다보거나, 늦은 밤 불 꺼진 방에서 내면을 아무리 뒤적거려도 손에 잡히는 고정된 중심 같은 것은 없다.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1739년 발표한 저서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에서 인간 내면의 이 기묘한 공백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흄은 내면으로 가장 깊숙이 걸어 들어가 볼 때조차, 마주치는 것은 언제나 더위나 추위, 빛이나 그림자, 지나가는 짜증이나 찰나의 슬픔 같은 특정한 지각들뿐이었다고 고백했다.

그 수많은 지각의 밑바닥을 아무리 살피더라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고정된 실체란 발견되지 않는다. 흄의 서술대로 인간이란 영구적인 무대 하나 갖추지 못한 채 쉼 없이 스쳐 지나가는 '지각들의 다발'에 불과하다. 아침의 피로, 점심의 허기, 상사의 말 한마디에 곤두서는 신경, 저녁의 노을에 잠시 누그러지는 마음들이 꼬리를 물고 교차할 뿐이다. 원래 그런 사람이란 어디에도 없으며, 중심에 있어야 할 불변의 핵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내면에 기댈 만한 뼈대가 아무것도 없다는 자각은, 처음에는 발밑이 푹 꺼지는 듯한 불안을 부른다.

발밑이 허물어지는 불안을 잠재우려 빌 에반스 트리오의 1959년 음반 《Portrait in Jazz》를 턴테이블에 올리면, 바늘이 소리골을 긁고 지나가는 순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두 번째 트랙은 바로 〈Autumn Leaves〉다. 프랑스의 샹송으로 출발해 수많은 음악가가 이미 수없이 변주했던,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고 여겨지던 익숙한 곡이다.

베이스 연주자 스콧 라파로의 묵직한 줄 튕김 위로 빌 에반스의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을 누른다. 에반스는 멜로디를 기발하게 뜯어고치거나 화려한 기교로 청중을 압도하려 들지 않는다. 그는 화음의 맨 밑바닥을 지탱하는 근음(루트)을 건반에서 덜어내고, 3도와 7도 음을 중심으로 코드를 가볍게 쌓아 올린다.

그의 연주에서 가장 먼저 귀를 사로잡는 것은 건반을 건드리는 손끝의 감각이다. 건반을 깊숙이 내리누르지 않고 살짝 얹었다가 떼어놓는 섬세한 터치, 해머가 강철 현을 때린 뒤 나무 향판을 거쳐 공기 중으로 번져나가는 투명한 배음이 공간을 가득 메운다. 에반스는 음표 사이사이에 긴 호흡의 쉼표를 배치하며, 자신이 방금 튕겨낸 소리의 잔향이 어디까지 뻗어 나가는지 귀로 확인한 뒤에야 다음 음을 짚는다. 누구나 다 아는 흔한 멜로디인데도, 단 한 마디의 타건이 방 안을 채우는 순간 우리는 그 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즉각 알아차린다.

에반스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반 《Kind of Blue》 라이너 노트에 쓴 글에서, 재즈의 즉흥 연주를 종이 위에 붓을 대면 지울 수도 덧칠할 수도 없는 일본 수묵화의 일필휘지에 비유했다. 생각이나 계산이 끼어들 틈 없이, 연주자의 감각이 건반이라는 세계에 닿는 찰나에 피어나는 즉각적인 응답이다. 에반스에게 고유한 소리란 머릿속에 완성해 둔 완벽한 악보가 아니었다. 그것은 건반이라는 단단한 물체와 마주쳤을 때 그의 손끝이 만들어내는 반응의 음색이었다.

연주자의 머릿속에 완성된 악보가 없듯,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 역시 《존재와 무》에서 인간에게 미리 주어진 고정된 설계도는 없다고 선언했다. 그는 카페 웨이터가 손님 앞에서 과장된 몸짓으로 접시를 나르며 자신이 완벽한 웨이터인 척 연기하는 태도를 '자기기만'이라 불렀다. 사물은 용도가 정해져서 만들어지지만, 인간은 아무런 각본 없이 세상에 내던져졌으므로 매 순간의 선택으로 자신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통찰이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정해진 각본의 부재를 '자유라는 무거운 형벌'로 규정했다. 원래 정해진 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실존적 불안을 낳고, 모든 선택의 결과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비장한 도덕적 결단을 요구한다. 그의 사유 안에서 자아는 끊임없이 긴장된 어깨로 짊어져야 하는 버거운 짐이었다.

빌 에반스의 타건 앞에서 그 무거움은 다른 길을 택한다. 우리 안에 고정된 알맹이가 없다는 사실은 결코 비장한 형벌이 아니다. 그것은 미리 인쇄된 어떤 악보에도 얽매이지 않고, 지금 눈앞의 무대 위에서 새로운 연주를 시작할 수 있다는 홀가분한 해방이다. 중심이 비어 있기에 우리는 어제 연주했던 익숙한 멜로디를 오늘 의무처럼 되풀이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남들과 구별되는 고유한 음색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그것은 아무런 저항 없는 무한한 자유에서 솟아나지 않는다. 피아노라는 목재의 한계, 연주자의 손가락 골격과 길이, 수천 시간 동안 건반을 누르며 손끝에 새겨진 신체적 제약과 마주할 때 비로소 고유한 톤이 형성된다. 바꿀 수 없는 타고난 조건과 일상의 피로라는 삶의 마찰을 건반의 저항처럼 온몸으로 받아낼 때, 그 반발력 위로 밀려 나오는 반응의 뉘앙스가 곧 자신만의 음색이 된다.

평생 단 하나의 악보에 갇히기를 거부했던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 그는 《불안의 서》에서 "내 영혼은 텅 빈 심연이다"라고 적으며, 70여 개의 서로 다른 이름을 지어내 저마다의 음색과 필치로 글을 썼다. 그에게 문학이란 붙잡을 수도 없는 단일한 알맹이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세상이 건네는 감각을 저마다의 어조로 받아치며 써 내려가는 실시간의 변주였다.

월요일 아침이 오면 누군가는 다시 다가와 무심한 얼굴로 묻거나 핀잔을 줄 것이다. 왜 평소처럼 굴지 않느냐고, 너답지 않게 왜 그런 선택을 하느냐고.

그 말 앞에서 더 이상 당황하며 내면의 서랍을 뒤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 안에 원래 그런 고정된 모습 같은 것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타인이 건네는 익숙한 배역에서 비껴서는 일은 더 이상 두려운 일탈이 되지 않는다.

오늘은 어제 쳐보지 않은 낯선 음을 시험 삼아 눌러보고, 그 소리가 잠시 삐걱거리더라도 다음 마디에서 그 파동을 귀담아들으며 새로운 호흡으로 이어붙이면 된다. 우리는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는 완성된 조각상이 아니라, 매일 아침 세상이라는 건반 앞에 다시 앉는 실시간의 연주자이기 때문이다.

출처

  1. A Treatise of Human NatureJohn Noon (David Hume, 1739)원전
  2. Portrait in Jazz (Album)Riverside Records (Bill Evans Trio, 1959)원전
  3. Improvisation in Jazz (Liner Notes essay)Columbia Records (Bill Evans / Kind of Blue, 1959)원전
  4. Bill Evans: How My Heart SingsYale University Press (Peter Pettinger, 1998)원전
  5. Livro do Desassossego (The Book of Disquiet)Assírio & Alvim (Fernando Pessoa, 1982)원전
  6. L'Être et le Néant (Being and Nothingness)Gallimard (Jean-Paul Sartre, 1943)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