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ZZY

ESSAY / 029

가게 뒤편에 남겨둔 방

The Room Behind the Shop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를 멈출 때 비로소 시작되는 관계의 대위법

글
사월
발행일
주제
미셸 드 몽테뉴 · 앙상블
가게 뒤의 방

퇴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의 진동이 연달아 울린다. 개찰구를 빠져나와 길가에 멈춰 서서 화면을 켜면,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 붉은 숫자와 함께 수십 개의 메시지가 쌓여 있다. 다음 주 모임 일정을 잡자는 재촉, 굳이 내가 맡지 않아도 될 사소한 부탁, 그리고 무심한 말 뒤에 습관처럼 붙은 웃음 표시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화면을 쳐다보며 몇 번이나 글자를 썼다 지운다. 사실은 이번 주말만큼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밀린 잠을 자고 싶다는 마음, 그 부탁을 들어주려면 내 일정을 뒤로 미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가락은 결국 엉뚱한 문장을 완성한다. '네, 당연히 괜찮아요!', '제가 한번 해볼게요.'

화면을 끄고 다시 주머니에 밀어 넣는 순간, 손끝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잠시뿐, 마음 한구석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가 가라앉는다. 거절했을 때 돌아올 서먹한 침묵이 두려워서, 원만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 내 몫의 시간과 기운을 또 한 번 덜어내 준 셈이다. 상대의 박자에 맞추느라 내 목소리를 한없이 줄여버린 저녁이다.

집으로 돌아와 겉옷을 걸어두고 조용한 식탁 앞에 앉으면, 하루 동안 사람들에게 건넸던 수많은 끄덕임과 미소가 머릿속에서 차갑게 식어간다. 우리는 대체 언제부터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무거운 각본을 짊어지게 되었을까.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누구에게나 다정하며, 어떤 자리에서도 모나지 않게 섞여 드는 사람. 세상은 그런 사람을 성숙하고 배려심 깊은 어른이라 부르며 칭찬한다. 하지만 그 칭찬의 대가는 생각보다 비싸다. 모두의 기대를 만족시키려 애쓰는 동안, 우리는 정작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의 선을 스스로 지워버린다. 상대의 무리한 부탁 앞에서 난감한 표정을 짓는 대신 반사적으로 웃어 보이고, 의견이 엇갈릴 때조차 내 생각을 접은 채 상대의 박자에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억지로 맞춘 평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미움받지 않기 위해 나를 지워가며 베푼 친절은 마음속에 조용한 억울함을 남긴다. '나는 이렇게까지 맞춰주는데 왜 상대는 내 사정을 모를까' 하는 섭섭함이 소리 없이 자라난다. 배려라 믿었던 것은 어느새 빚을 독촉하는 마음으로 바뀌고,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관계도 속에서는 서서히 메말라간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는 희곡 《닫힌 문》에서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타인의 시선에 갇혀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매달릴 때, 삶은 스스로 지옥이 된다.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내 본래의 목소리를 지우는 순간, 우리는 삶의 주인이 아니라 남의 기대에 맞춰 움직이는 인형이 되고 만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는 욕망은 다정함이라기보다, 작은 마찰조차 견디지 못하는 불안에 가깝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종교전쟁과 페스트로 혼란스럽던 16세기 후반, 사상가 미셸 드 몽테뉴는 남서부 무역 도시 보르도의 시장으로 선출되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국왕 앙리 3세의 간곡한 명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증오와 광신이 들끓던 도시의 행정을 두 차례에 걸쳐 4년 동안 이끌었다.

양측의 극단주의자들은 시장인 몽테뉴에게 어느 한쪽의 깃발을 들고 결사적인 열정을 보일 것을 요구했다. 한목소리로 분노할 것을 요구하던 혼란 한가운데서, 몽테뉴는 놀라울 만큼 차분한 태도로 중심을 지켰다. 그는 훗날 《수상록》 제3권 제10장에서 공직 생활을 돌아보며 이렇게 썼다.

"사람은 타인에게 자신을 빌려줄 수는 있어도, 오직 자신에게만 온전히 내주어야 한다."

몽테뉴는 시장으로서 협상을 중재하고 시민을 돌보며 행정의 책무를 다했다. 하지만 세상의 요구가 자신의 내면까지 집어삼키게 두지는 않았다. 그는 담담하게 덧붙였다. '나는 시의 업무를 내 손으로 쥐었을 뿐, 내 간이나 폐에까지 집어넣지는 않았다.'

타인을 배려하고 사회적 역할을 다하되, 내면의 고요와 자유만큼은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남겨두는 지혜였다. 몽테뉴는 일찍이 《수상록》 제1권 제39장에서도 세상의 평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음속에 반드시 '가게 뒤편의 작은 방'을 마련해야 한다고 적었다. 손님을 맞이하고 물건을 거래하는 가게 앞마당이 사회적 책무와 역할의 자리라면, 뒤편의 작은 방은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온전한 쉼과 자유의 공간이다. 가게에서의 친절이 뒤편의 방까지 침범하도록 내버려 둘 때, 우리는 결국 남의 눈치를 보느라 정작 자신을 잃어버린다.

알프레드 아들러 역시 비슷한 질문에 닿아 있었다. 아들러는 인간이 겪는 거의 모든 고통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겨난다고 보았으며, 그 해결책으로 '과제의 분리'라는 명료한 원칙을 제시했다.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는 나의 과제이지만, 그 행동을 보고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일 것인가는 온전히 타인의 과제라는 통찰이다.

아들러는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삶을 비판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는 인정 욕구는, 결국 남의 눈치를 보느라 내 삶의 책임을 내려놓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인이 내 거절에 실망하거나 나를 차갑다고 수군거린다 해도, 그것은 그 사람의 몫일 뿐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다.

하지만 아들러의 명쾌한 이론이 일상으로 내려오는 순간, 생각지 못한 틈이 드러난다. 아들러는 과제를 분리한 뒤 곧장 드넓은 '공동체 감각'으로 나아가라고 말하지만, 메신저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리는 현실은 그렇게 산뜻하지 않다. 거절의 말을 건네고 난 뒤 찾아오는 어색한 침묵, 대화방에 남겨진 짧은 답장, 동료의 굳어진 표정을 마주할 때 우리는 서먹함과 미안함이라는 마찰을 고스란히 견뎌야 한다.

몽테뉴가 보여준 것은 심리학적 초연함이라기보다, 복잡한 생활 한복판에서 자신의 피로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조용히 문을 닫아거는 태도였다. 그는 세상을 등지지도 않았고, 관계를 단칼에 잘라내지도 않았다.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며 성실히 일하되, 내 악기의 소리를 남의 귀에 맞춰 함부로 깎아내리지 않았을 뿐이다.

1959년 오넷 콜먼이 콰르텟을 이끌고 녹음한 〈Lonely Woman〉을 들으면 이 태도가 어떤 소리로 서 있는지 알게 된다. 베이스와 드럼이 분주한 더블타임 리듬으로 내달릴 때, 콜먼의 알토 색소폰과 돈 체리의 코넷은 그 빠른 속도에 결코 휩쓸리지 않는다. 그들은 리듬 섹션의 보폭에 맞추어 뛰는 대신, 극도로 느리고 비탄에 찬 선율을 자신들만의 호흡으로 길게 늘어뜨린다. 서로 다른 템포가 한 공간에서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기묘한 긴장. 그것은 화합을 포기한 불화가 아니라, 각자의 톤을 끝까지 지켜냄으로써 도달하는 대위법이다.

음악에서 앙상블은 모든 악기가 하나의 똑같은 멜로디를 목청 높여 부르는 합창이 아니다. 그것은 화합이라는 이름의 획일성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선율이 각자의 고유한 음색을 유지한 채 겹쳐지는 대위법이다. 피아노는 피아노의 타건을 지키고, 베이스는 베이스의 묵직한 보폭을 걸어가며, 드럼은 그 사이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쪼갠다.

성숙한 앙상블에는 언제나 긴장과 불협화음이 흐른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생겨나는 의견의 마찰, 부탁의 거절, 그리고 약간의 서먹함은 관계가 잘못되었다는 신호가 아니다. 그것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종속되지 않은, 온전히 독립된 악기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건강한 불협화음이다. 상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내 소리를 지워버리는 사람은 앙상블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음악 고유의 결을 무너뜨리는 쪽에 가깝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를 멈추는 일은 결코 타인을 배척하는 이기주의나 냉소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상대방을 내 뜻대로 조종하거나 의존하지 않고, 하나의 독립된 타자로 온전히 인정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다. 내가 내 밀실의 문을 닫아걸 줄 알아야 비로소 상대의 밀실 역시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둘 잦아들고, 방 안에는 낮의 소란이 빠져나간 고요가 가만히 차오른다. 탁자 위에 놓인 휴대전화의 화면은 이제 더 이상 깜빡이지 않는다.

내일 아침 문을 열고 나가면 우리는 또다시 수많은 사람의 기대와 시선이 교차하는 복잡한 세상의 앙상블 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누군가는 무리한 부탁을 건넬 것이고, 누군가는 기대 섞인 눈빛으로 나의 양보를 바랄지도 모른다. 그 앞에서 이전처럼 반사적인 미소를 지으며 '네'라고 답하고 싶은 유혹이 고개를 들 때, 잠시 숨을 고르고 내 안의 작은 방을 떠올려본다.

모두와 매끄러운 화음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는 없다. 관계의 악보 위에는 때로 분명한 쉼표가 찍혀야 하고, 솔직한 불협화음이 울려야 다음 마디의 선율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출처

  1. Les Essais de Michel de Montaigne (Livre III, Chapitre 10 "De mesnager sa volonté")Editions Gallimard / Bibliotheque de la Pleiade원전
  2. Les Essais de Michel de Montaigne (Livre I, Chapitre 39 "De la solitude")Editions Gallimard / Bibliotheque de la Pleiade원전
  3. How to Live: Or A Life of Montaigne in One Question and Twenty Attempts at an AnswerOther Press / Chatto & Windus
  4. Menschenkenntnis (Understanding Human Nature) & What Life Could Mean to YouGreenberg, Publisher / Oneworld Publications원전
  5. Huis Clos (No Exit)Editions Gallimard원전
  6. The Shape of Jazz to ComeAtlantic Records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