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 028
어떤 비극에는 교훈이 없다
Some Tragedies Carry No Lesson
비극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차가운 사실을 정직하게 마주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삶

늦은 저녁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직 데워지지 않은 집 안의 서늘한 공기가 발목에 먼저 감긴다. 불을 켜지 않은 부엌 식탁 위에는 아침에 마시다 만 머그잔이 그대로 놓여 있고, 냉장고의 나지막한 기계음만이 텅 빈 거실의 적막을 채운다. 가방을 내려놓고 신발을 벗는 손끝에 문득 힘이 풀린다.
불운이나 상실은 대개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찾아오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하고 무심한 순간의 등을 툭 치며 끼어든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찰나 휴대전화 화면 위로 불쑥 떠오른 세 줄짜리 검사 결과나 예상치 못한 비보, 혹은 식탁 맞은편에서 함께 밥을 먹던 사람의 갑작스러운 침묵 같은 것들. 바로 전 마디까지는 매끄럽게 흐르던 일상이, 단 몇 초 만에 돌이킬 수 없이 기울어져 버린다.
외투를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쳐두고 가만히 식탁 앞에 앉으면, 귓가에서 끝없이 되풀이되는 하나의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는 삶의 바닥이 꺼지는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이야기를 짓기 시작한다. '언젠가 더 좋은 일이 찾아오기 위한 과정일 거야', '이 일도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거야'라며, 닥쳐온 결손에 어떻게든 그럴듯한 의미와 교훈을 덧씌우려 안간힘을 쓴다. 고통을 하나의 이야기 안에 차곡차곡 배치해야만, 이 잔인한 우연이 나를 파괴하려는 악의가 아니라 감당할 만한 사건으로 둔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지어낸 위안의 각본은 머지않아 서늘한 덫이 되어 돌아온다. 아무리 애를 써도 도무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재난 앞에서, 서사를 향한 집착은 곧장 스스로를 향한 날카로운 칼날로 변한다. '내가 무언가 잘못해서 벌을 받는 걸까',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까'라며 자책과 후회의 밑바닥으로 침잠하거나, 이유 없이 무너진 타인의 비극 앞에서도 함부로 값싼 위로의 말을 던지게 만드는 것이다. 힘든 일에 반드시 숨은 교훈이나 뜻이 있어야만 한다는 믿음은, 사실 눈앞의 참담한 현실을 맨얼굴로 마주하기 두려워하는 인간의 가장 절박하고도 나약한 방어기제에 가깝다.
1979년, 미국의 작가 조안 디디온은 에세이집 《화이트 앨범》의 첫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간은 살인 사건 속에서 도덕적 훈계를 찾아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속에서 어떤 설교를 건져 올리려 애쓰며, 눈앞의 혼란스러운 세계를 견뎌내기 위해 가장 다루기 쉬운 서사를 골라낸다는 통찰이었다. 기자이자 소설가였던 디디온 자신 역시, 세상의 거친 파편들을 정교한 이야기로 엮어내며 살아온 인물이었다.
하지만 2003년 겨울, 그가 평생 의지해 온 견고한 이야기의 성벽은 단 며칠 만에 부서져 내렸다.
폐렴으로 쓰러진 외동딸이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맨 지 닷새째 되던 날 밤이었다. 병원에서 딸의 곁을 지키다 지친 몸으로 돌아와 늦은 저녁 식탁을 차리던 중, 40년 동안 책상을 마주 보고 함께 글을 써온 남편이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삶은 그렇게 순식간에 끝났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몇 달이 지난 뒤, 디디온은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그가 신던 신발 한 켤레 앞에서 손을 멈춘다. 남편의 옷과 물건들을 상자에 담아 기부하면서도, 신발만큼은 결코 버릴 수 없었다. '만약 그가 다시 돌아오면 신발이 필요할 텐데.'
디디온은 훗날 《상실》이라는 회고록에서 이 기묘한 심리적 마비를 '마술적 사고'라고 불렀다. 뇌가 현실의 잔혹한 결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자신이 신발을 지키고 있으면 남편이 살아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헛된 인과를 지어낸 것이다. 평생을 가장 차가운 시선으로 세계를 관찰해 온 저널리스트조차, 닥쳐온 파국 앞에서는 비합리적인 이야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고통 앞에서 이야기를 찾는 것은 디디온만의 나약함이 아니었다. 나치 강제수용소의 참극을 겪었던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일찍이 '의미에의 의지'를 말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인간은 어떤 시련도 견뎌낼 수 있으며, 사람은 자신의 고통 속에서 능동적으로 가치를 길어 올려야 한다는 사유였다. 수용소의 처절한 비극 속에서도 인간 존엄을 건져 올리려 했던 프랭클의 태도는 절망에 빠진 수많은 사람에게 구원의 닻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그 숭고한 의미 부여는, 이유 없이 닥쳐온 무차별적 파괴 앞에서도 함부로 고통의 정당성을 요구하는 잔인한 폭력으로 미끄러지기 쉽다. 또 다른 아우슈비츠 생존자였던 화학자 프리모 레비가 냉정하게 증언했듯, 비극 그 자체는 인간을 조금도 고결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짓밟고 파괴할 뿐이다. 억지로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살아남은 자들이 죄책감을 털어내기 위해 비극의 날것 그대로의 악을 은폐하는 기만일 수 있다.
디디온이 남편의 신발을 쥐고 있던 손을 조용히 내려놓은 자리는 바로 그 지점이었다.
남편은 디디온에게 어떤 숭고한 인생의 지혜를 가르쳐주기 위해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딸 역시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려고 병상에서 사경을 헤맨 것이 아니었다. 비극에는 어떤 초월적인 섭리도, 숨겨진 도덕적 교훈도 없다. 그것은 그저 이 무자비한 세계에서 어느 날 저녁에 무심하게 일어난 차가운 사건일 뿐이었다.
힘든 일에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은, 결코 절망이나 냉소에 빠져 삶을 팽개치는 무기력한 체념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거짓 위안의 마술을 거두고, 상실이라는 거대한 결손의 크기를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마주하는 일이다. 디디온이 마침내 응시해야 했던 '남편은 죽었고,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쓰라린 사실처럼, 닥쳐온 결손을 가감 없이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인간은 고통을 도구화하지 않고 온전히 애도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다.
1967년 8월 28일 늦은 오후, 뉴욕 RCA 스튜디오 A에서도 이와 닮은 침묵의 장면이 기록되었다. 30년 가까이 음악적 분신이자 동지로 함께했던 작곡가 빌리 스트레이혼을 암으로 떠나보낸 뒤, 듀크 엘링턴은 그를 기리는 앨범 '...And His Mother Called Him Bill'의 마지막 녹음 세션을 마친 참이었다. 정해진 연주가 모두 끝나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악기를 챙겨 하나둘 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케이스의 걸쇠가 덜컹거리며 닫히는 소리와 단원들의 나지막한 웅성거림이 스튜디오의 휑한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녹음실 부스의 테이프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엘링턴은 텅 빈 스튜디오의 피아노 앞에 홀로 남아 조용히 건반을 짚기 시작했다. 그가 연주한 곡은 스트레이혼이 생전에 아꼈던 소품 〈Lotus Blossom〉이었다. 거기에는 빅밴드의 화려한 금관 사운드도, 슬픔을 극적인 비장미로 꾸며내려는 웅장한 전개도 없었다. 엘링턴은 동지의 죽음에 어떤 숭고한 의미나 교훈을 덧칠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멀리서 들려오는 악기 정리 소리와 발소리를 배경 삼아, 떠나간 이의 빈자리를 건반 위에 뚝뚝 떨어지는 덤덤한 단선율로 응시할 뿐이었다. '그는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거짓된 위안의 각본을 모두 걷어낸 자리에 남은 결손의 무게를, 3분 남짓의 메마르고 솔직한 타건으로 받아낸 독주였다.
재즈의 즉흥 연주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태도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삶이란 미리 완벽하게 쓰인 악보대로 흘러가는 정해진 연극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동지가 갑작스럽게 무대에서 사라져버린 텅 빈 공간에서도 멈추지 않고 소리를 이어 나가야 하는 실시간의 즉흥에 가깝다. 연주 도중 손가락이 미끄러져 터져 나온 불협화음을 없던 일로 되돌릴 수는 없다. 연주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 깨진 화음의 긴장을 고스란히 끌어안은 채 바로 다음 마디에서 새로운 멜로디를 담담하게 직조해 나가는 것이다.
식탁 위의 빈 찻잔을 싱크대로 가져가 헹군다.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찬물이 손등을 적시고, 배수구로 빠져나가는 물소리가 주방의 고요를 조용히 깨운다.
견고하게 믿어왔던 삶의 서사가 하루아침에 깨져버렸을 때, 우리는 서둘러 그럴듯한 의미를 덧칠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아무런 이유도 교훈도 없는 상실 앞에서는, 그저 그 결핍을 하나의 사실로 묵묵히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모든 각본이 무너진 그 텅 빈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거짓된 환상을 내려놓고 오늘이라는 백지 위에 나만의 가장 솔직한 한 음을 다시 얹을 수 있다.
출처
- The Year of Magical ThinkingAlfred A. Knopf원전
- The White AlbumSimon & Schuster / Farrar, Straus and Giroux원전
- Blue NightsAlfred A. Knopf원전
- Man's Search for MeaningBeacon Press원전
- The Drowned and the Saved (I sommersi e i salvati)Summit Books / Einaudi원전
- The Last Love Song - A Biography of Joan DidionSt. Martin's Press
- ...And His Mother Called Him BillRCA Victor / Legacy Recordings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