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COUNTERS / 01
설명하지 않는 자와 소리치는 자
The Space Left Unsaid
침묵으로 존엄의 테두리를 지키는 일과, 고함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찢어내는 일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목소리를 선택하는가.

사람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사소한 말 한마디가 어긋나 테이블 위에 서늘한 침묵이 감도는 순간이 있다. 상대의 미간이 살짝 좁혀지는 것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변명과 수습의 문장들이 다급하게 줄을 선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는 해명부터 전후 사정을 장황하게 덧붙이는 부연 설명들이 혀끝까지 차오른다. 굳이 말을 더 보태어 오해를 수습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입을 다문 채 어색한 공기를 견뎌내야 할까.
말을 더할수록 관계가 더 엉키는 날이 있다. 한 단어를 바로잡으려다 두 단어의 잉여가 생기고, 상대의 미심쩍은 눈빛을 지우려다 도리어 방어적인 변명처럼 들리는 순간들이다. 사람들은 침묵을 두려워한다. 설명하지 않으면 패배하는 것 같고, 내 억울함을 낱낱이 털어놓지 않으면 세상이 나를 오해의 늪에 가둘 것만 같은 조급함이 귓가를 메운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갈 무렵 내게 남는 것은, 과도하게 쏟아낸 말들이 남긴 미적지근한 피로뿐이다.
어떤 사람은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단단함을 지키려 하고, 어떤 사람은 소리쳐 폭로하지 않으면 숨이 막혀 견디지 못한다. 침묵과 발화, 이 두 가지 태도는 소란한 세계 앞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두 갈래의 길이다.
여백으로 남겨둔 단단한 품격
1958년 1월, 시카고의 퍼싱 호텔 라운지는 술잔 부딪히는 소리와 손님들의 두런거리는 잡담으로 어수선했다. 무대 위에는 피아니스트 아마드 자말과 베이시스트 이스라엘 크로스비, 드러머 버넬 포니어가 서 있었다. 당시 재즈 씬을 지배하던 비밥의 문법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빠른 음표와 현란한 화성의 과시였다. 건반을 빈틈없이 채우지 않으면 실력이 모자라다는 의심을 받던 시대였다.
하지만 자말의 손가락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앨범 'At the Pershing: But Not for Me'에 실린 대표곡 'Poinciana'를 들으면, 자말은 멜로디의 뼈대만을 가볍게 짚고는 몇 마디씩 건반에서 손을 뗀다. 그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크로스비의 유연한 워킹 베이스와 포니어가 뉴올리언스 스트리트 비트에서 착안한 섬세한 림샷뿐이다. 자말은 손가락으로 모든 것을 증명하려 들지 않았다. 화려한 아르페지오를 덜어내고 과감한 쉼표를 둠으로써, 오히려 소리와 소리 사이에 서늘한 긴장과 우아한 공기를 불어넣었다.
당대 평론가들은 그의 여백을 두고 '칵테일 피아노'라며 가볍게 폄하했다. 그러나 마일스 데이비스는 자말의 연주에서 현대 재즈가 나아갈 전혀 새로운 문을 보았다. 마일스는 훗날 자서전에서 자신이 추구한 모든 영감이 아마드 자말의 공간감, 가벼운 터치, 그리고 절제된 프레이징에서 비롯되었다고 고백했다. 자말은 비평가들의 오해 앞에서 구구절절 해명하지 않았다. 음표를 마구 쏟아붓지 않고 침묵의 공간을 굳건히 지켜내는 것, 그것이 자말이 소란한 세상을 통과하며 자신의 음악적 자존을 지켜낸 방식이었다.
무대 위를 찢어발긴 정직한 포효
그러나 자말이 쉼표로 세상을 감싸 안던 바로 그 무렵, 정반대의 불꽃으로 무대 위를 뒤흔든 인물이 있었다. 베이시스트이자 작곡가 찰스 밍거스였다.
밍거스에게 세상은 얌전하게 침묵을 지키기에는 너무나 추악하고 부조리한 곳이었다. 1959년 앨범 'Mingus Ah Um'을 녹음할 당시, 아칸소 주지사 오발 포버스는 인종차별을 고수하며 흑인 학생들의 등교를 막기 위해 주 방위군을 동원했다. 밍거스는 이 위선에 맞서 'Fables of Faubus'를 작곡했다. 컬럼비아 음반사가 직설적인 가사를 싣지 못하게 막아서자, 밍거스는 1960년 캔디드 레코드에서 발표한 'Original Faubus Fables'를 통해 드러머 대니 리치먼드와 함께 무대 위에서 날것의 육성으로 고함을 질렀다.
밍거스의 베이스는 조용히 박자를 짚는 악기가 아니라, 부조리한 시대를 향해 내리꽂는 둔기였다. 그는 연주 도중 소리를 질렀고, 밴드 멤버들을 향해 호통을 쳤으며, 복잡하게 뒤엉키는 집단 즉흥과 거친 불협화음으로 방 안의 공기를 찢어발겼다. 밍거스의 자서전 'Beneath the Underdog'이 증언하듯, 그에게 침묵은 타협이자 비겁한 동조였다. 상처를 입었을 때 세상이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 비명을 지르고, 불의를 목격했을 때 낱낱이 언어로 고발하는 것만이 살아있는 인간의 유일한 진실이었다.
절제와 절규 사이
세상의 소란 앞에서 말을 아끼며 여백을 지키는 태도와, 모든 감정을 날것 그대로 쏟아내며 정면으로 맞서는 태도는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자말의 절제와 밍거스의 절규 중, 과연 어느 쪽이 세상의 소란을 마주하는 더 정직한 태도인가.
자말의 침묵에는 깊은 존엄이 깃들어 있다. 세상이 던지는 온갖 잡음과 오해에 일일이 대꾸하지 않고 내 호흡의 템포를 지키는 일은,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독립성이다. 불필요한 단어를 삼키고 침묵의 여백을 둠으로써, 우리는 불필요한 마찰로부터 내면의 평화를 방어한다. 그러나 이 우아한 침묵이 지나치게 절대화될 때, 그것은 때로 현실의 모순과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서늘한 도피가 될 위험을 안는다.
반면 밍거스의 고함은 세상을 깨우는 정직한 칼날이다. 위선과 불합리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온몸으로 부딪쳐 소리치는 태도는, 안락한 침묵 뒤에 숨지 않는 치열한 실존의 용기다. 그 분노가 있었기에 역사의 두터운 침묵에는 균열이 생겼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모욕과 부딪힘마다 날을 세우고 고함을 지르는 삶은 막대한 대가를 요구한다. 그 타오르는 불길은 부조리를 태우기 전에 연주자 자신의 일상과 영혼을 먼저 탈진의 벼랑 끝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음표를 아껴 침묵의 영토를 지켜낸 자말의 쉼표도, 모든 것을 쏟아부어 부조리와 정면으로 맞선 밍거스의 불협화음도, 각자가 마주한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내며 도달한 고유하고 정직한 실존의 형식이다.
쉼표
하루의 소음이 가라앉은 밤, 노트북을 덮고 불 꺼진 방의 고요 속에 가만히 앉아본다.
우리의 하루는 끊임없이 침묵과 발화의 선택을 요구한다. 오늘 테이블 위로 스쳐 갔던 사소한 오해 앞에서, 우리는 자말처럼 조용히 단어를 거두고 여백을 남겨둘 수도 있었다. 반대로 누군가의 무례나 부당한 침묵 앞에서는 밍거스처럼 가슴속에 맺힌 말을 정직하게 쏟아내야 했을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말을 아끼는 것은 나약해서가 아니라 내 삶의 품격을 지키기 위한 결단일 수 있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거칠어서가 아니라 정직함을 포기할 수 없다는 필사적인 선언일 수 있다.
세상의 오해와 소란 앞에서, 오늘 밤 당신은 어떤 말을 삼키고 어떤 소리를 세상에 남겨둘 것인가.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그 선택의 쉼표는 매일 밤 우리 내면에서 새롭게 시작된다.
출처
- At the Pershing: But Not for MeArgo Records / Universal Music원전
- Miles (The Autobiography)Simon & Schuster원전
- Mingus Ah UmColumbia Records / Sony Music원전
- Charles Mingus Presents Charles MingusCandid Records원전
- Beneath the Underdog: His World as Composed by MingusKnopf / Vintage Books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