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ZZY

ESSAY / 027

어긋난 보폭이 스윙이 될 때

When Diverging Strides Become Swing

저 사람을 내 손안의 메트로놈에 맞추려 하지 않고 그냥 그 박자로 걷게 둘 때, 일상의 소란은 비로소 스윙이 된다.

글
사월
발행일
주제
롤랑 바르트 · 앙상블
횡단보도 걷는 두 사람

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아파트 단지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자마자 성큼성큼 앞서 걷는 사람과 두 걸음 뒤에서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벌어진다. 마트에서 사 들고 온 장바구니의 비닐 손잡이가 손가락 마디를 붉게 파고들고, 초록색 보행 신호등의 숫자가 깜빡이며 줄어들기 시작한다. 앞서가던 사람은 이미 반대편 보도블록 위에 발을 디딘 채 뒤를 돌아본다. 굳이 소리 내어 핀잔을 주지는 않지만, 발뒤꿈치를 바닥에 톡톡 두드리며 턱 끝을 치켜올리는 미세한 동작 속에 침묵의 재촉이 실려 있다. '왜 그렇게 굼떠?' 혹은 '좀 서두르면 안 돼?'라는 말이 목구멍 언저리까지 차올랐다가 삼켜진다.

뒤에서 걷는 사람 역시 앞사람의 팽팽하게 굳은 등짝을 보며 입술을 삐죽인다. '왜 혼자 앞서가고 난리야. 뭐가 그리 급하다고.' 함께 나선 저녁 산책이고 같은 장소로 돌아가는 길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는 서너 걸음의 간격만큼 서늘한 공백이 벌어진다. 손을 잡거나 어깨를 나란히 맞추고 걷는 다정한 풍경 대신, 앞선 사람의 조급함과 뒤선 사람의 피로가 보도블록 위에서 소리 없는 마찰을 일으킨다.

이 사소한 시차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집 안에서도 매일 모양을 바꾸어 나타난다. 라면을 끓일 때 물이 끓기도 전에 스프를 털어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과, 타이머를 맞춰두고 정확히 3분을 기다려 면을 넣는 사람. 메시지를 보내면 1분 안에 답장을 보내야 안심하는 사람과, 반나절이 지나서야 아무렇지 않게 단답형 문장을 띄우는 사람. 대화 도중 침묵이 몇 초만 이어져도 불안해서 아무 말이나 불쑥 던지는 사람과, 그 침묵 속에서 단어를 고르느라 입술을 다무는 사람.

우리는 이 작은 어긋남을 마주할 때마다 이상할 정도로 조급해진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가장 가까운 사이라는 핑계로 우리는 자꾸만 손에 보이지 않는 가위를 쥐어 든다. 상대의 불규칙한 템포를 싹둑 잘라내고, 내 걸음걸이에 꼭 맞는 균일한 모양으로 다듬고 싶어 한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조언'이라거나 '이게 훨씬 합리적'이라는 친절한 명분 뒤편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은, 사실 상대방을 내 손안의 메트로놈에 끼워 맞추려는 통제욕이다. 내 박자만이 옳고 효율적이라는 오만, 그리고 상대가 나와 다른 속도로 움직일 때 엄습하는 까닭 모를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이 은밀한 지배의 충동 앞에서 '이디오리듬(Idiorrhythmie)'이라는 오래된 화두를 던진 바 있다. 모든 이가 종소리에 맞춰 일괄적으로 기상하고 기도하는 엄격한 규율 대신, 각자가 자신만의 고유한(idios) 리듬(rhythmos)에 따라 살아가되 한 울타리에 머무는 삶의 양식. 타자의 리듬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그는 상대를 내 뜻대로 개조하고 다듬으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타자의 낯섦과 사소한 결함까지 온전히 그의 몫으로 긍정하는 '있는 그대로(Tel quel)'의 수용을 말했다.

그러나 바르트의 섬세한 사유는 매일 한 공간에서 부대끼는 생활인들에게는 종종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이상론으로 들린다. 내 속을 뒤집어놓는 상대의 느린 보폭이나 성급한 잔소리를, 그저 수도승처럼 고요히 바라보며 물러서 있으라는 말인가. 생활 속의 사랑은 그렇게 홀로 격리된 방으로 숨어들 수 없다.

여기서 재즈 리듬 섹션이 소리를 직조하는 방식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무대 위에서 연주자들이 빚어내는 생생한 그루브의 비밀은 놀랍게도 '참여적 불일치'에 있다. 컴퓨터 드럼 머신처럼 모든 마디가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기계적 동시성은, 역설적으로 귀를 지치게 만들고 음악의 숨통을 끊어놓는다. 진짜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은 연주자들 사이의 미세한 타이밍 시차, 즉 수십 밀리초(ms) 단위의 마이크로타이밍(Microtiming)에서 터져 나온다.

훌륭한 재즈 앙상블에서 더블베이스 주자와 드러머는 결코 정확히 같은 순간에 음을 내리치지 않는다. 베이시스트는 메트로놈 기준선보다 수십 밀리초 정도 박자 뒤에 비스듬히 누워 여유를 부리고(layback), 드러머의 라이드 심벌이나 하이햇은 박자의 앞머리를 날렵하게 밀어붙인다(on top).

그들은 상대방의 타이밍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자기 쪽으로 억지로 잡아끌지 않는다. 노련한 리듬 섹션의 연주자들은 상대의 어긋난 타이밍을 오류로 취급하지 않는다. 드러머는 뒤로 늘어지는 베이스의 묵직한 타격을 위해 앞쪽의 공간을 기꺼이 비워두고, 베이시스트는 앞으로 질주하는 드럼의 추진력을 믿으며 자신의 낮은 저음을 흔들림 없이 바닥에 깐다.

그들은 서로 다른 시간대를 걸어가면서도 서로의 소리를 놓치지 않는다. 그 미세한 시차 속에서 팽팽한 고무줄 같은 탄력적 장력(Elastic Tension)이 만들어진다. 스윙이란 메트로놈처럼 똑같은 박자로 발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박자가 서로의 귀를 끈질기게 붙들고 버텨낼 때 비로소 생겨나는 리듬이다.

이 지점에서 사랑은 쉽게 길을 잃는다. 상대의 어긋난 박자를 견디지 못할 때, 우리는 흔히 상대를 내 입맛대로 뜯어고치려 덤벼들거나 아니면 반대로 냉정하게 돌아서 버린다. 고전 《피그말리온》의 헨리 히긴스는 전자의 가장 지독한 표본이다. 그는 꽃 파는 처녀 일라이자의 거친 사투리와 태도를 귀부인의 기준에 맞춰 혹독하게 뜯어고쳤다. 히긴스는 그것이 사랑이자 구원이라 자부했지만, 완벽하게 다듬어진 일라이자가 자신의 독립된 인격을 선언하고 떠나갔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은 서늘한 환멸뿐이었다. 타자의 고유한 불협화음을 결함으로만 바라보고 가위를 들이대는 사랑은, 결국 사랑하는 대상의 숨통을 끊어놓고 만다.

그렇다면 바르트의 이디오리듬처럼 각자의 방으로 물러나 거리를 두는 것이 해답일까. 바르트의 고요는 아름답지만, 그것은 수도원의 서늘한 회랑이나 독방에서 책을 읽는 사람의 태도에 가깝다. 매일 설거지통을 마주하고, 빨래 건조대의 자리를 나누어 쓰며 부대껴야 하는 생활의 한가운데서 타자의 박자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렇게 우아하게 뒤로 물러서는 일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재즈의 리듬 섹션은 뒤로 도망치지 않는다. 그들은 무대 위에서, 한마디의 좁은 시간 안에서 서로의 살갗을 비비듯 호흡을 섞는다. 상대의 박자를 그냥 둔다는 것은 '너는 멋대로 해라, 나는 모르겠다'라는 차가운 체념이나 방임이 아니다. 끈을 놓아버리는 순간 베이스는 질질 끌려 무너지고 앙상블은 산산조각 난다.

진짜 성숙한 태도는 상대를 내 박자로 끌어당기려는 손아귀의 힘을 빼는 대신, 귀의 긴장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데 있다. 저 사람이 왜 저렇게 걸음이 느려졌는지, 오늘 하루 어떤 고단한 무게를 짊어졌기에 발걸음이 무거운지, 왜 저렇게 사소한 말 한마디에 말문이 막히는지를 고치려 들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일. 상대가 흔들려도 전체 템포가 무너지지 않도록 내 박자를 단단히 지키며, 그 어긋난 타이밍에 맞추어 내 다음 보폭을 반 뼘 늦추거나 톤을 부드럽게 낮추어주는 유연한 화답.

사랑이란 상대를 뜯어고쳐 나와 똑같은 박자로 걷게 만드는 복제가 아니라, 저 사람의 결함투성이 박자를 배경 삼아 내 목소리의 톤을 다듬는 법을 배우는 실시간의 연주다. 상대의 불협화음을 교정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오직 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고유한 음색으로 받아들일 때, 두 사람 사이의 삐걱거림은 비로소 탄력 있는 스윙이 된다.

다시 아파트 앞 횡단보도로 돌아온다. 신호등의 초록불이 깜빡이고, 자동차들이 내뿜는 붉은 미등이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번져나간다. 앞서가던 사람이 마침내 걸음을 멈춘다. 뒤를 돌아보며 혀를 차거나 한숨을 쉬는 대신, 보도블록 모퉁이에 멈춰 서서 가방 끈을 고쳐 매며 호흡을 고른다.

뒤따라오던 사람의 발소리가 바스락거리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이제 나란히 서서 걷기 시작할 때, 두 사람의 발은 여전히 완벽하게 같은 순간에 땅을 디디지 않는다. 한 사람은 여전히 반 걸음 빠르고, 다른 한 사람은 여전히 반 걸음 느리다.

하지만 이제 그 미세한 시차는 답답한 지체나 다툼의 불씨가 아니라, 둘 사이에 흐르는 기분 좋은 장력으로 남는다. 손을 억지로 얽어매지 않아도, 똑같은 보폭으로 걷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발소리를 들으며 같은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다.

오늘 밤 당신 곁에서 걷고 있는 그 사람의 걸음걸이는 어떠한가. 당신은 지금 그의 보폭을 내 손안의 메트로놈에 맞추려 다그치고 있는가, 아니면 그의 낯선 리듬을 가만히 들으며 다음 걸음을 내딛고 있는가.

출처

  1. Comment vivre ensemble: simulations romanesques de quelques espaces quotidiensSeuil/Imec (Roland Barthes)원전
  2. 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Éditions du Seuil (Roland Barthes)원전
  3. Participatory Discrepancies and the Power of MusicCultural Anthropology (Charles Keil)원전
  4. Why Does Jazz Swing? An Analysis of Jazz MicrotimingMusic Analysis (Matthew W. Butterfield)원전
  5. Thinking in Jazz: The Infinite Art of ImprovisationUniversity of Chicago Press (Paul F. Berliner)원전
  6. PygmalionConstable & Co. (George Bernard Shaw)
  7. The Atomic Mr. Basie (Track: Lil' Darlin')Roulette Records / Universal Music (Count Basie and His Orchestra, comp. Neal Hefti)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