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ZZY

ESSAY / 014

혼자서 온전히 서지 못하면 둘이 있어도 결국 외롭다

Why We Are Lonely Together

나를 지우고 상대에게 맞출수록 관계가 외로워지는 이유

글
사월
발행일
주제
에리히 프롬 · 니나 시몬 · 불안
니나시몬의 무대

퇴근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신발장 앞에서 묵직한 적막이 발목을 붙잡는다. 불을 켜지 않은 거실은 창밖 가로등 불빛에 희미하게 젖어 있고, 냉장고 컴프레서가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만이 방 안의 부피를 채운다.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아무렇게나 소파에 던져두고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는다. 주머니 속에서 꺼낸 스마트폰을 켜면 차가운 푸른빛이 어두운 방 안을 비춘다.

메신저 앱을 켜서 대화 목록을 무의식적으로 위아래로 스크롤한다. 친구들의 단체 대화방, 몇 시간 전 멈춘 연인과의 대화창, 소셜 미디어의 새로운 알림 피드를 끊임없이 새로고침한다. 아무런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짧은 몇 초 동안, 가슴 한구석에서 묘하게 서늘한 초조함이 고개를 든다. 우리는 방 안의 고요를 소리로 지우려 애쓰며 누군가의 텍스트와 목소리를 찾는다.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

우리는 왜 불 꺼진 방의 고요를 이토록 견디기 힘들어할까. 혼자 있는 시간의 적막은 단순한 심심함을 넘어, 세상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나만 뚝 떨어져 나와 버려진 것 같은 은밀한 공포를 건드린다. 사람이라는 존재에게 고립이란 언제나 추위와 굶주림만큼이나 생존을 위협하는 원초적인 불안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분리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우리가 가장 흔하게 선택하는 방법은 관계 속으로의 도피다. 외로움에 쫓길 때 우리는 상대를 온전한 한 사람으로 마주하기보다, 내 안의 텅 빈 구멍을 메워줄 안전장치로 대하기 쉽다. 상대방의 기분과 사소한 표정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내 취향과 의견을 지워버리고, 상대가 원하는 모습에 나를 끼워 맞춘다. 반대로 상대방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고 간섭하며 그를 내 소유물처럼 묶어두려 애쓰기도 한다.

1956년 사회심리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에리히 프롬은 그의 대표작 『사랑의 기술』에서 이러한 관계의 함정을 날카롭게 해부했다. 그는 인간이 겪는 가장 깊은 갈증이 '분리 상태를 극복하고 고독이라는 감옥을 벗어나려는 욕망'임을 인정하면서도, 대다수 사람들이 사랑이라 부르는 행위가 실은 자아를 지워버리는 미성숙한 '공생적 합일'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상대방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며 나를 내던지는 피학적 태도든, 상대를 완벽하게 지배하려는 가학적 태도든, 두 방식 모두 자신의 개별성과 온전함을 포기한 채 타인의 존재에 기생하려는 절망적인 시도라는 것이다. 나 자신의 중심을 잃어버린 채 타인에게 매달릴수록, 관계는 겉으로는 하나로 융합된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점점 더 숨이 막혀온다. 스스로 서지 못하는 두 사람이 만났을 때, 함께 있음은 안식이 아니라 서로의 숨통을 죄는 질식으로 변하고 만다.

무대 뒤의 감옥과 빼앗긴 목소리

타인에게 삶의 모든 주도권을 내맡겼을 때 찾아오는 이 끔찍한 질식을 삶 전체로 통과해 낸 예술가가 있다. 재즈와 블루스, 소울의 경계를 허물며 노래했던 피아니스트이자 보컬리스트 니나 시몬이다.

1960년대 초, 줄리아드 음대 출신의 클래식 피아니스트를 꿈꿨으나 흑인이라는 이유로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원 입학을 거절당하고 나이트클럽 연주자로 내몰렸던 니나 시몬에게 세상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이었다. 극심한 인종차별과 백인 중심 음악 산업의 착취, 그리고 깊은 고립감 속에서 극도의 불안에 시달리던 그녀는 1961년 전직 뉴욕 경찰관 출신의 앤드루 스트라우드와 결혼했다.

스트라우드는 곧바로 그의 매니저가 되었다. 거칠고 단호했던 남편의 손에 자신의 공연 일정과 계약, 재정 관리, 심지어 일상의 모든 결정권까지 넘겨주었을 때, 니나 시몬은 비로소 세상의 비바람을 막아줄 든든한 방패를 얻었다고 믿었다. 불안을 견디지 못해 타인의 품 안으로 자신을 통째로 내던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자아를 지워버린 대가는 참혹했다. 남편은 점차 매니저라는 이름의 독재자가 되어 그를 가혹한 공연 일정으로 몰아넣었고, 폭언과 신체적 폭력, 경제적 착취로 그의 삶을 짓밟았다. 무대 위에서는 세상을 뒤흔드는 강렬한 노래를 불렀지만, 자신의 수입이 얼마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남편의 승인 없이는 한 걸음도 뗄 수 없는 완전한 무기력에 갇혔다. 타인에게 구원을 기대하며 나를 바친 결과가 가장 끔찍한 감옥이 되어 돌아온 셈이었다.

결국 1970년, 니나 시몬은 자신의 영혼과 음악이 완전히 질식하기 직전 모든 것을 버리고 결단을 내렸다. 남편과의 관계를 끊고 미국을 떠나 바베이도스와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스위스와 프랑스로 이어지는 기나긴 방랑과 고독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단독자가 부르는 생명의 선언

그것은 결코 낭만적인 여행이 아니었다. 매니저도, 저택도, 그를 보살펴주던 익숙한 시스템도 없는 타국에서 지독한 빈곤과 우울, 홀로 남겨진 자의 처절한 공포와 마주해야 했다. 그러나 타인에게 기생하던 삶의 껍데기를 깨고 홀로 선 고독 속에서, 니나 시몬은 비로소 남의 시선이나 지배에 휘둘리지 않는 온전한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았다.

1968년 앨범 《'Nuff Said!》에 수록된 그녀의 대표곡 〈Ain't Got No, I Got Life〉는 그 치열한 홀로서기의 고통과 환희를 선명하게 증언한다. 곡의 전반부에서 그녀는 자신이 잃어버린 수많은 결핍을 담담하게 열거한다. 집도 없고, 신발도 없고, 돈도 없고, 기댈 남자도 없다고. 그러나 리듬이 전환되는 순간, 그녀의 목소리는 결핍의 한탄을 뚫고 폭발적인 긍정으로 솟구친다.

내게는 내 머리가 있고, 내 뇌가 있고, 내 두 눈이 있고, 내 영혼이 있고, 내 자유가 있고, 그리고 내 삶이 있다고. 기댈 대상이 모두 사라진 텅 빈자리에서, 그녀는 비로소 세상의 어떤 조건에도 종속되지 않는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긍정한다.

여기서 에리히 프롬과 니나 시몬의 삶이 마주치는 결정적인 지점이 드러난다.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이란 '자신의 개별성과 온전함을 지키는 조건 아래에서의 결합'이라고 차분하게 정의했다. 홀로 있을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첫 번째 전제조건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현실의 바닥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에게, 고립의 공포를 이겨내고 홀로 서는 일은 책장을 넘기듯 매끄럽게 이루어지는 지적 결단이 아니다.

니나 시몬은 타인에게 구원을 기대하며 의존했던 대가로 몸과 영혼이 부서지는 참혹한 대가를 치른 뒤에야, 차가운 타국의 고독 속에서 피와 눈물로 자립의 무게를 길어 올렸다. 온전한 자립이란 우아한 이론이 아니라,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안락한 껍질을 스스로 찢고 나오는 고통스러운 탈바꿈의 과정이다.

홀로 온전히 설 수 있다는 것은 타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차가운 단절이나 오만한 독선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내 안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도구로 휘두르지 않는 힘이며, 상대방을 내 불안을 잠재울 진통제로 착취하지 않는 성숙함이다.

내가 내 두 발로 단단하게 서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상대방의 목소리를 내 불안의 색안경 없이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다. 상대에게 나를 맞추려 억지로 목소리를 구부리지 않고, 상대의 선율을 내 틀에 가두려 하지 않으면서 나누는 정직한 응답. 그것이 바로 프롬이 말했던 참된 사랑의 연대이자, 니나 시몬이 고독을 뚫고 건반 위에서 뿜어낸 타협 없는 예술의 본질이다.

불 꺼진 방에서 나의 이름을 부른다

스마트폰 화면이 어두워지며 저절로 꺼진다. 푸른빛이 사라진 방 안에는 다시 묵직한 어둠과 가라앉은 적막이 내려앉는다.

소파에서 일어나 불을 켠다. 침대 위에 걸터앉아 가만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마룻바닥을 딛고 있는 두 발의 감각과 조용히 뛰고 있는 심장의 리듬에 집중해 본다. 방 안을 감돌던 고요가 더 이상 서늘한 공포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 침묵은 나를 밀어내는 벽이 아니라, 세상의 온갖 소음 속에서 흩어졌던 나 자신의 윤곽을 가만히 모아주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외로움은 누군가를 급하게 곁에 앉힌다고 해서 달랠 수 있는 허기가 아니다. 그것은 타인에게 기댈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나 자신과 마주 앉으라고 삶이 보내오는 정직한 초대장일지 모른다. 내가 나를 버려둔 채로는, 세상 그 누구를 데려와 곁에 둔다 한들 결코 외로움의 긴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밤, 당신의 고독을 지우기 위해 섣불리 타인의 손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좋다. 대신 그 고요한 방 한가운데서 먼저 당신 자신의 무게를 온전히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이 관계 속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상대의 목소리에 진정으로 귀 기울였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출처

  1. The Art of LovingHarper & Row원전
  2. Escape from FreedomFarrar & Rinehart / Routledge원전
  3. I Put a Spell on You: The Autobiography of Nina SimoneDa Capo Press / Hachette원전
  4. Ain't Got No, I Got Life (from album 'Nuff Said!')RCA Victor / Discogs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