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수 년 만에 연락이 닿은 고등학교 동창회 모임, 시끌벅적한 식당의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익숙했던 얼굴들과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와락 쏟아진다. 서로의 어깨를 치며 학창 시절의 별명을 부르고, 어제 만났던 것처럼 장난스레 반말을 던진다.
어린 시절 우리는 서로의 부모님이 무슨 일을 하는지, 집이 몇 평 아파트인지, 타고 다니는 차가 무엇인지 따위는 조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골목길 분식집에 모여 떡볶이를 나눠 먹고, 새로 나온 만화책의 줄거리나 게임 속 어려운 퀘스트를 깨는 법, 좋아하는 밴드의 기타 리프 이야기만으로도 몇 시간이고 밤을 지새우기에 충분했다. 조건도, 배경도, 계산도 끼어들 틈이 없던 무구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술잔이 몇 차례 돌고 고기가 익어갈 무렵, 테이블 위의 공기는 미세하게 결을 달리하기 시작한다. 다들 옛날처럼 허물없는 척 소리 내어 웃고 있지만, 슬그머니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외제차 키, 옷깃 사이로 언뜻 보이는 시계, 건네받은 명함 속 직함의 무게가 보이지 않는 얇은 막처럼 대화 사이에 내려앉는다. 화제는 어느덧 만화나 게임이 아니라 어느 지역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었는지, 어떤 주식 종목으로 수익을 냈는지, 회사에서 누구 줄을 잡아야 살아남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가 있다.
누구도 대놓고 거들먹거리거나 상대를 깎아내리지 않지만, 서로의 형편을 곁눈질하는 은밀한 계산과 침묵이 술잔 사이를 맴돈다. 우리는 분명 그때 그 순수했던 시절의 우리로 다시 모였다고 믿었는데,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그때의 그 아이들이 아니다.
강물은 이미 흘러갔고 나 역시 변했다
우리는 십수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옛 친구들을 만날 때, 은연중에 과거의 완전무결했던 상태로 곧장 되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십 대 시절의 조건 없던 우정,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웃을 수 있던 순수함이 그 자리에 고스란히 박제되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문을 열고 마주하는 현실은 언제나 그 기대와 쓸쓸하게 어긋난다. 십수 년 동안 각자가 사회라는 거친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 겪어낸 생존의 무게, 타협의 상처, 방어기제들이 몸에 굳은살처럼 단단하게 박여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눈빛과 말투는 달라져 있고, 무엇보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시선 또한 사회적 계산과 피로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는 바로 이 가혹한 시간의 어긋남을 집요하게 응시한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10년 동안 험난한 바다를 떠돌았던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흔히 잃어버린 낙원으로 귀환하는 영웅의 모험담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온갖 풍파를 뚫고 마침내 고향 해변에 닿았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과거의 따스하고 평화로운 안식이 아니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의 궁전은 아내 페넬로페를 차지하려는 거친 구혼자들의 난동과 세속적인 약탈로 점령당해 있었고, 갓난아기였던 아들 텔레마코스는 이미 낯선 청년이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오디세우스 자신도 찬란한 청동 갑옷을 입은 젊은 영웅이 아니라, 온몸에 흉터가 새겨지고 주름이 깊게 패인 늙은 거지의 행색으로 고향 땅을 밟아야 했다. 떠나온 자리는 그대로 멈추어 있지 않았고, 돌아온 사람 역시 떠날 때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단편을 통해 간결하게 선언했다.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강물은 끊임없이 새로운 물로 흘러가 버리고, 그 강물 속으로 다시 발을 담그는 사람 또한 이미 이전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은 어떤 관계도 원형 그대로 보존해주지 않는다. 십수 년의 세월을 통과했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 세월의 무게만큼 닳거나 변해버렸음을 뜻한다.
다리 위의 2년과 새로운 테마
재즈 역사에서 이 돌아옴의 낯섦을 가장 정직하게 자신의 몸과 악기로 증명해 낸 인물이 있다. 테너 색소폰의 거장 소니 롤린스다.
1950년대 후반, 소니 롤린스는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Saxophone Colossus』와 같은 걸작을 쏟아내며 비평가와 대중의 찬사를 한 몸에 받던 1959년 여름, 그는 돌연 모든 공연과 녹음을 중단하고 무대에서 사라졌다. 세상의 찬사가 요구하는 익숙한 기대에 갇혀 자신의 소리가 화석처럼 굳어가는 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향한 곳은 뉴욕의 이스트리버 위를 가로지르는 윌리엄스버그 다리의 보행로였다. 그는 이웃에게 소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소리를 극한까지 밀어붙이기 위해 매일 다리 위로 올라갔다. 겨울의 살을 에는 강바람과 머리 위로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지하철 소음 속에서, 롤린스는 하루에 15시간씩 홀로 색소폰을 불었다. 거친 바람을 뚫고 나오는 자신의 생생한 날숨을 확인하며, 그는 과거의 성공과 명성이 안겨준 껍데기를 하나씩 벗겨냈다.
2년이라는 긴 침묵을 깨고 1962년 마침내 그가 복귀 앨범 『The Bridge』를 발표했을 때, 음반의 문을 연 곡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스탠더드 넘버 〈Without a Song〉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과거 전성기 시절에 들려주었던 화려하고 압도적인 하드밥의 쾌감을 그대로 재현해주길 바랐다. 익숙한 테마 선율이 흐르고, 기타리스트 짐 홀의 유려한 화음 위로 롤린스의 색소폰이 긴 즉흥 솔로의 항해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즉흥 연주는 과거의 복제가 아니었다. 다리 위에서 바람과 싸우며 다듬어진 그의 음색은 이전보다 훨씬 거칠고, 동시에 깊은 여백과 사색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마디의 즉흥 변주를 거쳐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침내 처음에 제시했던 테마 선율(Head Out)로 되돌아왔을 때, 그 멜로디는 악보상으로는 첫 마디와 똑같았지만 결코 처음의 소리가 아니었다. 2년간의 고독과 바람, 그리고 즉흥의 모험을 온몸으로 통과해 낸 자만이 낼 수 있는, 묵직하고 새로운 톤이 그 익숙한 선율 속에 깃들어 있었다.

복원이 아니라 변주를 연주하는 일
재즈 연주의 기본 구조는 테마(Head)로 시작해 즉흥 솔로(Chorus)의 모험을 펼친 뒤, 다시 테마(Head Out)로 돌아오는 형식이다. 하지만 어떤 뛰어난 연주자도 솔로를 마친 뒤 돌아온 테마를 처음과 똑같은 뉘앙스로 연주하지 않는다. 수많은 불협화음과 조바꿈, 리듬의 긴장을 통과하며 연주자의 호흡과 체온이 이미 달라졌기 때문이다. 처음에 정갈하게 제시되었던 멜로디는, 한 바퀴의 험난한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는 순간 필연적으로 거친 숨결과 상처, 그리고 깊어진 울림을 품은 변주가 된다.
영화 《오디세이》가 보여주는 귀환의 진짜 의미 역시 여기에 닿아 있다. 오디세우스는 구혼자들을 응징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찬란했던 왕좌를 되찾고 옛 시절로 돌아가기 위함이 아니었다. 제우스의 신성한 환대와 법도가 더 이상 지켜지지 않는 고향에서, 그는 옛 문명의 시대가 이미 끝에 도달했음을 직시한다. 그렇기에 그는 과거의 영광에 매달리는 대신, 왕위를 장성한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물려주고 페넬로페와 함께 작은 배를 타고 서쪽의 미지의 바다를 향해 다시 항해를 떠난다. 돌아옴은 과거의 성채에 안주하기 위한 복귀가 아니라, 지나간 시대를 온전히 매듭짓고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기 위한 결단이었던 셈이다.
소니 롤린스 또한 귀환을 과거의 재현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는 대중이 요구하는 옛 하드밥 영웅의 자리에 머무는 대신, 2년의 공백 동안 자신의 몸과 영혼에 새겨진 변화와 거친 호흡을 숨김없이 소리에 담아냈다. 처음의 자리로 돌아오되, 결코 처음과 같지 않은 소리로 테마를 다시 부르고 다음 마디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재즈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성숙한 귀환의 방식이다.
동창회 테이블에서 마주하는 서글픔 역시 '우리가 속물이 되었다'거나 '친구가 변질되었다'는 자책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십수 년 동안 각자가 치열하게 세상의 풍파와 생존의 무게를 버텨내며 각자의 톤(Tone)을 얻은 것이다. 만화책과 게임 이야기를 하던 시절의 무구함으로 완전히 되돌아갈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필요한 것은 과거로의 복원이 아니라, 순수했던 시절이 끝났음을 담담히 인정하고, 세월의 흉터와 변화를 품은 채 오늘이라는 테이블 위에서 서로의 달라진 소리에 귀 기울이고 새로운 화음을 맞춰가는 일이다.
모임이 끝나고 식당 밖으로 나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는 밤거리, 손에 쥔 친구들의 명함과 주머니 속에서 가볍게 진동하는 대화방의 알림을 내려다본다. 예전의 그 순진무구했던 아이들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밤공기를 마시며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테마로 돌아온 멜로디가 처음과 같지 않듯, 각자의 거친 풍파를 통과해 조금 굵어지고 주름진 서로의 목소리가 오늘 밤 새로운 화음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는 것을.
출처
- The OdysseyPenguin Classics / Warner Bros. Pictures원전
- Fragments (DK 22B12)Cambridge University Press원전
- The BridgeRCA Victor / Discogs원전
- Sonny Rollins: The Cutting EdgeContinuum / Bloomsbury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