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일 밤의 책상은 언제나 조금 비장하다. 새로 산 노트의 첫 장을 넘기거나 비어 있는 메모 앱을 켤 때, 방 안의 공기는 평소보다 한층 더 가라앉아 있다. 연필을 쥐거나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는 동작에는 일종의 의식 같은 엄숙함이 깃든다. 이번 주에는 절대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다짐, 누구에게도 감정적으로 굴지 않고 다정함을 잃지 않겠다는 선언,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움직이고 정돈된 문장으로 하루를 채우겠다는 몇 줄의 규칙들. 흰 종이 위에 검은 글씨로 반듯하게 새겨진 그 결심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내일부터의 삶이 완전히 새로운 궤도로 진입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현실의 월요일 저녁은 언제나 그 다짐보다 훨씬 무겁고 둔탁하게 찾아온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방 안은 불도 켜지지 않은 채 서늘하게 식어 있다. 신발은 삐딱하게 벗겨져 나뒹굴고, 외투의 단추를 채 풀지도 못한 채 침대 모서리에 털썩 걸터앉는다. 지하철의 탁한 공기, 일터에서 쏟아진 무수한 말들, 예상치 못한 사소한 마찰들이 하루의 에너지를 남김없이 갉아먹었다. 아침에 세웠던 계획 중 지켜진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다정하기는커녕 누군가의 사소한 질문에 굳은 얼굴로 짧게 대꾸했고, 퇴근길에 책 한 줄을 읽기는커녕 스마트폰의 무의미한 화면만 멍하니 스크롤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은 채 어둠 속에 앉아 있을 때, 문득 전날 밤 정성스럽게 적어둔 노트의 첫 문장이 떠오른다. 그 맑고 결백했던 문장은 이제 지키지 못한 자의 수치심이 되어 가슴 한구석을 찌른다.
우리는 왜 이토록 거창한 삶의 규칙을 세우고, 왜 매번 하루도 지나지 않아 무력하게 무너지는 것일까. 그리고 그 결심이 깨지는 순간, 왜 그토록 깊은 자책과 부끄러움에 짓눌리는 것일까.
결심이 하루 만에 무너질 때 찾아오는 감정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환멸에 가깝다. 우리는 머릿속으로 완벽하게 조율된 삶의 악보를 그린다. 그 악보 속에서 우리는 매 순간 정확한 박자로 움직이고, 언제나 우아한 화음을 연주하며, 단 한 번의 불협화음도 내지 않는 능숙한 연주자가 된다. 하지만 현실의 몸은 악보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몸은 피로에 취약하고, 감정은 사소한 온도 변화에도 흔들리며, 세상은 우리가 정해둔 템포를 사정없이 뒤흔들어 놓는다.
그 낙차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책망한다. '나는 왜 이 정도의 약속도 지키지 못할까', '왜 늘 시작만 거창하고 끝은 흐지부지될까'. 그러고는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일기장을 덮어버리거나, 실패의 흔적이 적힌 페이지를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 혹은 지키지 못한 규칙이 부끄러워 며칠 동안 기록 자체를 멈춰버린다. 마치 결심을 지키지 못한 하루는 삶의 연대기에서 깨끗이 지워버려야 할 오점인 것처럼.
그러나 이 기묘한 결심과 파기의 굴레에 빠졌던 것은 우리만이 아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 역시 평생 동안 이 지독한 순환 속에서 살았다.
1858년 9월 19일, 야스나야 폴랴나의 영지에 머물던 서른 살의 청년 톨스토이는 자신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결연한 한 줄을 적었다.
'사랑하고 일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으로 전부다.'
더 이상의 방황이나 나태는 없다는 듯, 인생의 모든 복잡한 문제를 단 두 개의 동사로 명쾌하게 정리해버린 웅장한 선언이었다. 세상을 향한 순수한 헌신과 성실한 노동만이 인간을 구원할 유일한 길이라는, 톨스토이 특유의 도덕적 이상주의가 응축된 문장이었다. 그 문장을 적어 내려가던 밤, 그는 분명 내일부터 펼쳐질 자신의 삶이 이전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 확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인 1858년 9월 20일, 톨스토이의 일기장에 적힌 문장은 전날의 비장함을 무색하게 만든다.
'피곤했다. 사랑하지도 않았고 일하지도 않았다.'
원문으로 보면 고작 아홉 개의 러시아어 단어로 이루어진 이 짧은 기록에는 어떤 변명도, 철학적인 수식도 붙어 있지 않다. 전날 밤 세상을 구원할 것처럼 세웠던 거대한 원칙은 정확히 스물네 시간 만에 육체의 둔중한 피로 앞에서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했고,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지도 못했다. 그저 지쳐 쓰러져 하루를 흘려보냈을 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톨스토이에게 이런 일이 결코 우연한 해프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열아홉 살이던 1847년 카잔 대학 시절부터 '삶의 규칙(Правила жизни)'이라는 노트를 만들어 스스로에게 엄격한 계율을 부과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날 것, 하루에 10시간 이상 독서와 사유에 집중할 것, 감정의 동요를 완벽히 통제할 것,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것. 그러나 그의 일기장을 조금만 넘겨보면 거의 매일같이 다음과 같은 자책과 고백이 이어진다. '게을렀다', '분노를 참지 못했다', '카드놀이로 시간을 낭비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톨스토이의 평생은 거대한 도덕적 결심을 세우는 일과, 그 결심이 인간적인 욕망과 피로 앞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의 연속이었다.
결심이 무너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로 도망친다. 하나는 자신이 세운 결심이 거짓이었다고 냉소하며 삶을 방치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실패한 자신의 초라함을 견디지 못해 그날의 기억을 지우고 왜곡하는 길이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택한 태도는 전혀 달랐다. 그는 9월 20일의 일기장을 찢어버리지 않았다. 전날의 거창한 결심을 지우개로 지우거나 먹칠을 하지도 않았고, 결심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그럴듯한 핑계로 포장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이 사랑하지 못했음을, 일하지 못했음을, 그리고 무엇보다 몹시 지쳐 있었음을 있는 그대로 적어두었다. 웅장한 선언 아래에 초라한 무기력을 나란히 내려놓는 것. 그것이 톨스토이가 평생 동안 일기를 멈추지 않고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재즈 연주자가 무대 위에서 즉흥 연주를 펼칠 때, 완벽한 악보란 존재하지 않는다. 손가락이 미끄러져 엉뚱한 건반을 누를 수도 있고, 약속된 박자보다 반 박자 늦게 음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이때 미숙한 연주자는 당황하여 연주를 멈추거나, 틀린 음을 숨기기 위해 허둥대다가 전체 곡의 흐름을 망쳐버린다. 그러나 노련한 연주자는 빗나간 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 어긋난 음(Wrong note)을 그대로 허공에 울리게 둔 채, 바로 다음 마디에서 그 불협화음을 자연스러운 경과음으로 받아들이거나 잠시 호흡을 고르는 쉼표(Rest)로 바꾸어 즉흥을 이어간다.
결심이 하루 만에 무너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삶의 실패나 패배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유기체이며, 피로와 한계를 지닌 인간이라는 정직한 증거다. '사랑하고 일하겠다'는 결심이 삶의 테마 멜로디라면,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하루는 연주 도중 찾아온 거칠고 둔탁한 쉼표다. 쉼표가 없는 음악이 소음이 되듯, 피로와 멈춤이 없는 삶은 결국 부러지고 만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결심의 무결함이 아니라, 실패한 자리를 마주하는 정직함이다. 전날 밤의 다짐이 얼마나 숭고했든, 오늘 저녁의 내가 지쳐 쓰러졌다면 그 피로를 인정해야 한다. 어제의 다짐이 진심이었듯, 오늘의 피로 역시 완벽하게 진짜이기 때문이다.
월요일 밤, 침대에 걸터앉아 어두운 방 안을 둘러본다. 지키지 못한 계획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책상 위의 다이어리는 여전히 펼쳐진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새 노트를 찢어버리거나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더 가혹한 결심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다. 그저 톨스토이처럼 연필을 들고, 어제 쓴 맑은 다짐 바로 아랫줄에 조용히 한 줄을 적어 내려가는 일이다.
'오늘은 피곤했다. 사랑하지도 못했고 일하지도 못했다.'
그 정직한 문장 하나를 남겨두고 불을 끄는 것. 완벽하지 않은 음을 쳤더라도 연주를 멈추지 않고 다음 마디로 넘어가는 것. 그것으로 오늘 하루는 충분하다.
출처
- Complete Collected Works, Volume 48 (Diaries and Notebooks 1858-1880)State Publishing House (Гослитиздат)원전
- TolstoyDoubleday / Fayard원전
- TolstoyW. W. Norton & Company원전
- The Melody at Night, with YouECM Records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