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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 013

지드래곤의 위버멘쉬, 니체의 위버멘쉬

Why the Face Relaxes After the Storm

벼랑 끝의 시선을 통과한 지드래곤과 니체의 위버멘쉬가 일상의 비장함에 건네는 말.

글
사월
발행일
주제
지드래곤 · 프리드리히 니체 · 불안
위버멘쉬 니체

늦은 저녁, 작은 주방 한구석의 전기 주전자가 잦아드는 소리와 함께 스위치를 딸깍 내린다. 머그잔에 따뜻한 물을 붓자 바싹 마른 찻잎이 천천히 몸을 펴며 맑은 호박색 물을 우려낸다. 김이 엷게 피어오르는 잔을 쥐고 식탁 앞에 앉으면, 어깨와 목덜미 주변에 단단하게 뭉쳐 있던 근육이 서서히 풀리는 묵직한 감각이 느껴진다.

하루 종일 온갖 소음과 타인의 시선,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오해와 평가 속에서 바짝 날을 세우고 서 있던 참이다. 퇴근길 지하철 차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을 때, 미간에 깊게 패인 주름과 굳게 다문 입술 뒤로 서려 있던 피로감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어려운 국면에 맞닥뜨릴 때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어금니를 꽉 깨문다. 세상이 나를 부당하게 몰아세우고 있다고 느낄수록,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듯 온몸에 힘을 주고 비장한 표정으로 무장한다. 마치 상처받지 않는 단단한 갑옷을 두르고 싸우는 투사가 되어야만 이 모진 풍파를 통과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벼랑 끝의 시선과 단단한 무장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는다. 일터에서의 경쟁, 주변의 수군거림, 작은 실수 하나에도 쏟아지는 혹독한 잣대는 종종 우리를 사방이 막힌 방 한구석으로 몰아넣는다. 억울함과 분노가 가슴 밑바닥에서 치밀어 오를 때, 사람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어기제는 적의와 투지다.

'언젠가 두고 봐라', '내가 반드시 증명해 보이겠다'는 결의는 분명 위기의 순간 우리를 버티게 하는 연료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비장함은 우리 자신의 영혼을 가장 가혹하게 갉아먹는다. 모든 것을 이겨내야 할 적으로 규정하고 싸우는 동안, 마음의 근육은 한순간도 이완되지 못한 채 점점 더 뻣뻣하게 굳어버리기 때문이다.

억울한 상황에 처했을 때 왜 우리는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무장하려 들까. 그것은 약함을 들키는 순간 세상이 나를 더 잔인하게 짓밟을 것이라는 공포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사나운 눈빛을 하고, 더 강한 척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이 결코 흔들리지 않는 강철 같은 존재임을 증명하려 애쓴다.

하지만 벼랑 끝까지 밀려나 본 사람은 안다. 주먹을 꽉 쥔 채 온몸을 긴장시키는 투지만으로는 결코 마음의 심연에서 솟아나는 절망을 온전히 건너갈 수 없다는 사실을.

수족관의 트루먼과 찻잔의 온기

여섯 살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에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 열아홉에 대중 앞에 선 한 음악가가 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중음악계의 중심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았지만, 그에게 세상은 늘 영화 '트루먼 쇼' 속 거대한 세트장 같았다. 사생활도, 고통도, 숨기고 싶은 나약함마저 투명한 유리 수족관 속 물고기처럼 실시간으로 전시되는 삶이었다.

그가 견뎌내야 했던 무게는 화려함의 크기만큼이나 혹독했다. 수많은 억측과 풍파, 끝없이 이어지는 오해와 여론의 폭풍 속에서 그는 코너에 몰려 더는 숨 쉴 틈조차 없다고 느끼는 극심한 심리적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다. 대중이 아는 화려한 페르소나의 시간은 길었지만,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본 시간은 손에 꼽을 만큼 짧았다는 그의 고백은 거대한 시선의 감옥이 얼마나 서늘한 것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런 그가 오랜 침묵과 풍파를 건너 2025년 세상에 내놓은 정규 앨범의 이름은 뜻밖에도 '위버멘쉬(Übermensch)'였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했던 '스스로를 넘어서는 자'라는 거창한 개념을 전면에 내걸었을 때, 사람들은 그가 과거의 상처에 칼을 갈고 나와 세상에 보복하듯 서슬 퍼런 음악을 쏟아낼 것이라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면과 무대 위에 다시 나타난 그의 얼굴은 사람들의 예상을 완전히 비껴갔다.

그곳에는 과거의 억울함을 토해내며 세상을 향해 핏대를 세우는 투사가 없었다. 대신 어깨의 힘을 툭 빼고, 차를 우리며 숨을 고르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소란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한결 편안하고 유해진 표정의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을 '억지로 이기려' 애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대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지드래곤

사자의 분노에서 어린아이의 유희로

프리드리히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 정신이 성숙해가는 세 가지 변화의 단계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낙타'의 단계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사막을 묵묵히 걷는다. 사회가 부여한 관습과 타인의 기대,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는 의무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지만 결코 불평하지 않는다. 대중의 시선에 갇혀 끊임없이 완벽함을 요구받는 많은 현대인의 삶이 이 낙타의 모습과 닮아 있다.

두 번째는 '사자'의 단계다. 사자는 자신을 짓누르던 거대한 용과 맞서 싸우며 포효한다. '나는 원한다'고 외치며 기존의 가치와 억압을 거부하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발톱을 드러낸다. 세상의 부당함에 분노하고, 억울함을 풀기 위해 이를 악물며 저항하는 투사의 모습이다.

그러나 니체는 사자의 단계가 자기극복의 완성이 아니라고 보았다. 사자는 파괴하고 저항할 수는 있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거나 스스로 평화를 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자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싸워야 할 대상에 대한 원망과 긴장이 가득 차 있다.

니체가 제시한 궁극의 단계는 바로 세 번째, '어린아이'의 단계다.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시작이자 놀이이며,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자 신성한 긍정이다. 어린아이는 과거의 상처를 붙들고 원한을 곱씹지 않는다. 넘어지면 털고 일어나 눈앞의 모래성을 다시 쌓으며 온 마음으로 놀이에 몰입한다.

물론 니체의 위버멘쉬는 스위스 알프스의 고독한 산정에서 벼려낸 비타협적이고 귀족적인 이상이었다. 그는 안락과 평온에 안주하는 대중을 경멸하며, 인간 무리와 철저히 단절된 고고한 고독 속에서 홀로 춤출 것을 요구했다. 그의 초인은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한 채 스스로를 불태우는 고독한 영웅에 가까웠다.

반면, 20년 넘게 트루먼 쇼 같은 거대한 대중의 시선 한가운데서 살아온 대중예술가가 보여준 태도는 산속으로의 도피나 대중에 대한 경멸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소란스러운 광장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왔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것은, 세상을 꺾어 이기겠다는 사자의 사나운 발톱을 거두고 어린아이의 가벼움을 품었다는 점이다.

온갖 오해와 불협화음조차 삶의 한 풍경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옭아매던 완벽주의의 갑옷을 벗어던진 채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음악이라는 놀이를 즐기는 태도. 그것은 알프스의 차가운 얼음 위가 아니라, 온갖 진흙탕이 튀는 현실의 바닥 위에서 피워낸 가장 따뜻하고 현실적인 위버멘쉬의 얼굴이다.

힘을 뺀 자가 짓는 미소

재즈에서 가장 훌륭한 연주는 악보를 완벽하게 외워 빈틈없이 연주하려 할 때 나오지 않는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연주자는 돌발적인 불협화음이나 빗나간 음이 튀어나왔을 때 당황하여 연주 전체를 망쳐버린다. 반면 노련한 연주자는 손목의 힘을 풀고 악기에서 한 걸음 물러선다. 예상치 못한 소리가 나더라도 그 소리를 억지로 지우려 애쓰지 않고, 그다음 마디에서 덤덤하게 받아안으며 새로운 선율로 흘려보낸다.

자신을 이겨낸다는 것은 세상을 굴복시키는 무쇠 같은 투지를 갖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내 안에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자존심의 끈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일이다. '나는 반드시 완벽해야 한다', '절대로 흠집 하나 남겨서는 안 된다'는 강박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대한 수족관 밖으로 걸어 나올 수 있다.

차를 한 모금 넘긴다. 식어가는 찻잔의 바닥에는 천천히 가라앉은 찻잎의 고요한 흔적이 남아 있다.

우리는 살아가며 무수한 비바람을 만난다. 억울한 말에 밤잠을 설치고, 코너에 몰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순간을 피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때마다 사자처럼 포효하며 세상을 향해 날을 세우는 것은 우리를 쉬이 지치게 만든다.

진짜 강한 사람은 풍파를 겪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풍파를 지나온 뒤에 자신의 얼굴에서 비장함을 지워낼 줄 아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억지로 이기려 들지 않고, 다만 스스로에게 다정해지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

오늘 밤, 당신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그 긴장된 다짐들을 조금 내려놓아도 좋다. 당신이 최근에 무언가를 기필코 이겨내려 애쓰기보다, 한숨 돌리며 스스로에게 힘을 빼주었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출처

  1.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267회 지드래곤 편tvN원전
  2. G-DRAGON 정규 3집 《위버멘쉬(Übermensch)》 및 컴백 공식 인터뷰Galaxy Corporation / Warner Music원전
  3. Also sprach Zarathustra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Ernst Schmeitzner / Recl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