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 007
무엇을 연주라 부를지부터 다시 정하는 법
Redefining What It Means to Play
익숙한 화음과 안전한 채점표 밖으로 걸어 나와, 내 안의 낯선 음정을 첫 박에 짚는 일에 대하여.

월요일 오후의 회의실, 형광등 불빛 아래로 투명한 유리 보드 위에 빼곡하게 적힌 지표들과 분기별 목표치들이 늘어서 있다. 스크린 위로는 지난달의 성공 사례를 분석한 그래프가 매끄러운 곡선을 그리며 지나가고, 참석자들은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며 정해진 순서에 따라 고개를 끄덕인다. 보고서는 흠잡을 데 없이 안전한 어휘들로 채워져 있고, 질의응답은 예상 질문 리스트의 범위를 단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발표가 끝나자 가벼운 박수와 함께 안도의 한숨이 번진다. 아무런 충돌도, 어색한 침묵도 발생하지 않은 완벽한 회의였다.
하지만 그 정돈된 회의실 문을 열고 복도로 걸어 나올 때, 가슴 한구석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서늘한 갈증이 고인다.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모든 기준을 충족했지만, 방금 지나간 시간 속에서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실수를 피하기 위해 검증된 문장만을 골라 담고, 남들이 기대하는 박자에 맞춰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도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 안전한 멜로디를 완벽하게 따라 불렀을 뿐인데, 마음속에는 왜 깊은 피로감과 헛헛함만이 남는 것일까.
안전한 악보라는 덫
우리는 어릴 때부터 세상이 건네준 시험지와 채점표에 익숙해져 있다. 사회는 어떤 시기에 어떤 화음을 내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속도로 달려야 박수를 받을 수 있는지를 촘촘한 가이드라인으로 일러준다. 적당한 시기에 안정된 직업을 얻고, 유행하는 재테크 공식을 따르며,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의 조건들을 하나씩 체크리스트에서 지워나가는 일. 그 정해진 악보를 성실하게 연주할 때 세상은 우리를 유능하고 성숙한 연주자라 부른다.
문제는 그 안전한 템플릿에 자신을 맞추는 일이 길어질수록, 내 안에서 울려 퍼지던 고유한 리듬과 음색이 서서히 지워진다는 점이다. 악보에 적히지 않은 음을 조금이라도 짚으려 하면 주변에서는 곧바로 불안한 눈빛을 보낸다. '왜 굳이 위험한 길을 가려 하느냐', '남들 하는 대로만 하면 중간은 간다'는 조언들이 사방에서 벽처럼 둘러쳐진다. 우리는 타인의 불안을 달래주기 위해 손가락 끝을 다시 안전한 으뜸음으로 되돌려 놓는다.
그렇게 모든 모서리를 깎아내고 남들의 기대에 완벽하게 조율된 소리만을 내어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고립을 면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아무런 불협화음도 내지 않는 매끄러운 연주란, 결국 아무런 고유한 생각도 담기지 않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남들의 채점표에서 만점을 받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동안, 삶은 점점 더 생기를 잃고 건조한 기능으로 전락해 버린다.
칠리 하우스의 주방 뒤편에서
1930년대 후반의 미국 재즈 씬 역시 거대한 표준화의 물결 속에 있었다. 스윙 빅밴드의 음악은 대중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그만큼 엄격하고 정형화된 편곡의 틀에 갇혀 있었다. 화려한 댄스홀을 가득 채운 브라스 섹션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약속된 화음을 연주했고, 솔로 연주자들에게 허락된 공간은 지극히 좁고 예측 가능한 음계의 테두리 안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멜로디는 경쾌하고 친숙했지만, 다음 순간 어떤 음이 나올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음악은 안전한 공식 속에서 맴돌았다.
1939년 12월, 뉴욕 할렘의 7번가에 자리한 댄 월의 칠리 하우스(Dan Wall's Chili House). 캔자스시티 출신의 스무 살 남짓한 알토 색소포니스트 찰리 파커는 기타리스트 비디 플리트와 함께 식당 주방 뒤편의 비좁은 공간에서 악기를 불고 있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인기 스탠더드 넘버였던 레이 노블의 'Cherokee' 코드 진행을 수없이 반복해 연주하면서도, 기존의 연주 방식에 깊은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왜 모든 연주자는 코드가 바뀔 때마다 1도 으뜸음이나 3도, 5도 같은 안전한 기둥 음으로만 착지해야 하는가. 왜 화음의 가장자리에서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소리들은 '잘못된 음'으로 취급받아야 하는가.
파커는 색소폰의 키를 누르며 화음의 상위 음정들, 즉 9도와 11도, 13도의 음들을 단순한 장식음이 아니라 멜로디의 중심 뼈대로 삼아 길게 늘어뜨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당시 스윙의 귀로 들었을 때는 명백히 조성의 중심을 벗어난 것처럼 들리는 낯설고 날카로운 소리였다. 하지만 그 상위 음정들을 적절한 대리 화음으로 매끄럽게 연결해 내자, 그동안 그의 머릿속에서만 웅웅거리며 맴돌던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선율이 비로소 현실의 공기를 가르고 터져 나왔다. 훗날 1949년의 인터뷰에서 그는 그 순간을 떠올리며 "비로소 내가 살아났음을 느꼈다(I came alive)"고 회고했다.
기존의 채점표를 충실히 따르는 대신, 무엇이 바른 음인지를 규정하던 음악적 규칙 자체를 뒤집어엎은 순간이었다. 1945년 11월 26일, 뉴욕 WOR 스튜디오에서 디지 길레스피와 맥스 로치 등과 함께 녹음한 'Ko-Ko'는 바로 그 칠리 하우스의 깨달음이 온전하게 폭발한 역사적 기록이었다. 'Cherokee'의 코드 뼈대 위에 숨 쉴 틈 없이 휘몰아치는 파커의 솔로는, 이전 시대의 안락한 댄스 음악을 단숨에 과거의 유물로 밀어내며 현대 재즈의 출발점인 비밥(Bebop)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망치로 우상을 두드릴 때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1888년에 발표한 저작 《우상의 황혼》에서 '망치로 철학하는 법'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여기서 니체가 말한 망치는 모든 것을 때려 부수기 위한 맹목적인 파괴의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의사가 환자의 가슴을 청진기로 짚거나 조율사가 소리굽쇠로 음을 맞추듯, 사람들이 영원불멸의 진리이자 미덕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관습적 가치와 우상들을 가볍게 톡톡 두드려 그 속이 텅 비어 있는지 확인하는 섬세한 도구였다.
니체는 당대 사회가 절대적으로 신봉하던 도덕과 질서가 사실은 생명력을 잃은 무기력한 관습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남들이 정해준 가치 기준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며 무리 속에 섞여 살아가는 삶은 편안할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주체적인 결단과 창조의 에너지가 결여되어 있다. 그리하여 그는 기존의 모든 가치 기준을 근본에서부터 다시 묻고 전복하는 '모든 가치의 전복(Umwertung aller Werte)'을 요구했다. 참된 삶이란 주어진 시험지에서 남들보다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이 아니라, 시험지의 채점 기준 자체가 과연 내 삶을 생생하게 긍정하고 있는지를 질문하며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세워나가는 '자기극복(Selbstüberwindung)'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파커가 칠리 하우스의 주방 뒤편에서 색소폰으로 짚어낸 9도와 11도의 낯선 음정은, 바로 니체가 손에 쥐었던 그 섬세한 망치의 타격과 정확하게 겹쳐진다. 당대 스윙 오케스트라의 지배인들이 요구하던 안전하고 매끄러운 멜로디의 기준을 그대로 따랐다면, 파커는 그저 연주 잘하는 또 한 명의 빅밴드 단원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익숙한 화음이 주는 안락함을 거부하고, 세상이 '불협화음'이라 규정했던 높은 음정들을 당당하게 첫 박에 올려놓음으로써 무엇을 진짜 음악이라 부를 것인가라는 전제 자체를 뒤흔들었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룰 안에서 1등을 다투는 일과, 그 룰 자체가 지닌 한계를 꿰뚫어 보고 나만의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내는 일은 질적으로 다르다. 가치를 전복한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맹목적으로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아름답고 가치 있다고 느끼는 소리를 위해 기존의 안전장치를 기꺼이 벗어던지는 용기를 뜻한다.
채점표가 사라진 자리에서
퇴근길 만원 지하철의 유리창에 비친 지친 얼굴을 바라보거나, 주말 늦은 밤 홀로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빈 화면을 마주할 때, 우리는 다시금 세상의 수많은 목소리에 둘러싸인다. 더 빠르게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 남들의 속도에 뒤처지면 영영 낙오될 것만 같은 불안, 그리고 안전한 매뉴얼을 벗어나는 순간 찾아올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을 짓누른다.
하지만 삶이라는 긴 여정에서 가장 위험한 실패는, 어쩌면 남들의 악보를 단 한 음도 틀리지 않고 훌륭하게 완주했으나 정작 그 속에 내 고유한 호흡은 단 한 번도 담아내지 못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채점표는 언제나 과거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통계의 요약본일 뿐,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측정해 주지 못한다.
익숙한 1도 화음의 안전지대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내 마음이 오래전부터 듣고 싶어 했던 낯선 9도와 11도의 음정을 첫 음으로 짚어보는 일. 그것은 처음에는 조금 불안하고 어색할지라도, 나를 가두고 있던 보이지 않는 규범의 벽을 깨뜨리고 진정한 나만의 연주를 시작하는 유일한 길이다.
세상이 쥐여준 성적표를 가만히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둘 때,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에게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건넬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지금 남이 건넨 악보를 흠잡을 데 없이 따라 부르고 있는가, 아니면 비록 거칠고 위태로울지라도 나만의 소리를 첫 박에 얹어놓고 있는가.
출처
- Friedrich Nietzsc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Stanford University원전
- Ko-Ko - Charlie Parker's Reboppers (1945) (National Recording Registry)Library of Congress원전
- Charlie Parker and the Birth of Bebop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 Nietzsche's Moral and Political Philosophy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Stanford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