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 005
모두가 틀렸다고 할 때 자기 음을 연주하는 법
Playing Your Own Note When Everyone Says No
안전하게 합의된 화음 밖으로 걸어 나와, 내 안의 어색한 음을 짚는 용기에 대하여.

오랜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저녁 식사 자리. 둥근 식탁 가운데에는 식어가는 요리와 반쯤 비워진 유리잔들이 흩어져 있고, 실내의 공기는 막힘없이 매끄럽고 유쾌하게 흐른다. 대화는 요즘 유행하는 투자 이야기에서 시작해 누군가의 이직과 승진, 그리고 특정한 나이에 도달하면 응당 완수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삶의 시간표들로 자연스럽게 옮겨간다. 사람들은 정확한 타이밍에 웃음을 터뜨리고, 적절한 맞장구로 상대의 문장을 받아치며 대화의 속도를 기분 좋게 끌어올린다.
그 테이블의 한 귀퉁이에 앉아 물잔을 매만지다 보면, 문득 그 경쾌한 바퀴의 회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겉도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결론 앞에서, 마음 한구석에는 전혀 다른 각도의 질문이나 설명하기 어려운 망설임이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매끄럽게 이어지던 대화의 리듬이 뚝 끊기고 어색한 정적이 흐를 것만 같은 예감. 우리는 분위기를 깨뜨리고 싶지 않아 슬그머니 웃음을 지으며 침묵을 삼킨다. 모두가 일정한 박자로 손뼉을 칠 때, 혼자만 엉뚱한 박자로 발을 헛디딘 것 같은 묘한 고립감이 옷깃을 타고 서늘하게 스며든다.
매끄러운 화음이라는 안전지대
우리는 왜 남들과 다른 박자로 소리를 내는 것을 이토록 두려워하는 것일까. 세상은 언제나 흠잡을 데 없이 조율된 화음과 예측 가능한 속도를 원한다. 정해진 보폭에 맞춰 걷고, 다수가 공유하는 어휘와 태도로 반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집단의 일원이라는 안도감을 얻는다. 그 흐름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모나거나 낯선 소리를 내는 사람은 순식간에 불협화음 취급을 받는다. 사람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고, 암묵적인 압박을 통해 그 이질적인 음을 서둘러 원래의 조화 속으로 되돌려 놓으려 한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점차 자신의 고유한 호흡을 억누르는 법을 배운다. 다수가 안전하다고 확인해 준 궤적에 몸을 싣고, 남들이 기대하는 리액션을 제때 내어놓는 것이 현명한 처세술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매끄러운 합창 속에 자신을 숨긴 채 살아가는 날들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정작 내가 어떤 음색과 박자를 가진 사람이었는지를 잊어버리게 된다. 부딪힘과 갈등을 피하기 위해 모든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낸 자리에는, 무기력하고 건조한 순응만이 남는다.
음악에서도 오랫동안 협화음은 미덕이었고 불협화음은 피해야 할 결함이었다. 서양 고전 화성의 오랜 전통은 불안정한 긴장을 자아내는 음들을 언제나 익숙하고 편안한 으뜸음으로 매끄럽게 '해결'하도록 가르쳤다. 귀를 거스르는 파격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양념일 뿐, 종국에는 다수가 동의하는 단단하고 안정된 화음 체계 속으로 흡수되어야 했다. 안전한 질서 속에서 질서정연하게 울리는 소리만이 아름다운 음악으로 대접받았던 셈이다.
건반 위에 내리꽂은 반음의 충돌
하지만 1940년대와 50년대 뉴욕의 재즈 클럽에서 피아노 앞에 앉았던 셀로니어스 몽크는 그 안락한 법칙을 정면으로 비껴갔다.
1956년 12월, 리버사이드 레코드를 통해 녹음된 그의 기념비적인 앨범 『Brilliant Corners』를 턴테이블에 올리면, 타이틀곡의 첫 소절부터 청자의 상식을 흔들어 놓는 기이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몽크는 전통적인 피아니스트들처럼 손가락을 우아하게 둥글려 건반을 쓰다듬지 않는다. 그는 손가락을 꼿꼿하게 편 채, 마치 묵직한 망치로 쇠를 내리치듯 건반을 수직으로 강하게 때린다. 그리고 그 거친 타건의 순간, 서로 반음 차이로 바짝 붙어 있어 심한 마찰을 일으키는 두 건반을 동시에 내리누른다.
그 소리는 단2도 클러스터라고 불리는 극단적인 부딪힘이다. 언뜻 들으면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사람이 손가락을 헛디뎌 잘못 누른 둔탁한 소음처럼 들리기도 한다. 게다가 그가 던져놓는 음들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정박에서 늘 반 박자씩 빠르거나 느리게 허공에 얹힌다. 음과 음 사이에는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이 툭툭 떨어지고, 곡의 템포는 예고도 없이 두 배로 빨라졌다가 다시 둔중하게 늘어진다. 당대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던 동료 연주자들조차 이 난해하고 까다로운 악보를 단번에 소화해 내지 못해 수십 번의 테이크를 반복해야 했을 정도였다.
놀라운 점은 몽크가 그 날카로운 불협화음을 결코 수치스러워하거나 서둘러 매끄러운 화음 뒤로 숨기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이 내리친 그 거칠고 낯선 음이 공기 중에서 충분히 울려 퍼질 때까지 건반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1960년 몽크 퀸텟에서 함께 연주했던 색소포니스트 스티브 레이시가 기록으로 남겼듯, 몽크는 "모든 것을 연주하려 하지 마라. 그냥 지나가게 두라", "피아노에 틀린 음이란 없다"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몽크에게 중요한 것은 남들이 정해놓은 유려한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독창적인 리듬의 박동을 단 한 음의 타협도 없이 정직하게 짚어내는 일이었다.
군중의 합창 밖으로 걸어 나오는 사람
몽크가 건반 위에서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던 그 외로운 음색은, 19세기 덴마크의 사상가 쇠렌 키르케고르가 평생을 바쳐 옹호했던 한 사람의 실존과 겹쳐진다.
키르케고르는 1846년의 저작 『현대의 비판』과 사후 출간된 수필 『그 단독자』 등에서 익명성 뒤에 숨은 대중의 안이한 순응을 가차 없이 비판했다. 그는 "군중은 거짓이다(Mængden er Usandheden)"라는 단호한 명제를 남겼다. 군중 속에 섞여 있을 때 개인은 스스로 생각하고 결단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다수의 의견이라는 거대한 방패 뒤에 숨어 남들이 웃을 때 따라 웃고 남들이 옳다고 하는 길을 따라가면, 그 어떤 비난이나 고립의 위험도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키르케고르가 보기에, 그러한 군중적 삶은 안전할지는 몰라도 한 사람의 진실한 영혼과 내면성을 말살하는 거대한 기만에 불과했다.
키르케고르에게 참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안락하고 거대한 군중의 합창에서 빠져나와 신과 자기 자신의 진실 앞에 홀로 서는 '단독자(den Enkelte)'가 되는 일이었다. 단독자가 되는 길은 결코 편안하지 않다. 다수가 공유하는 보편적 규범과 상식의 울타리 밖으로 걸어 나오는 순간, 인간은 벼랑 끝에 선 듯한 근원적인 불안과 마주하게 된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 정말 맞는 것인지, 나 혼자 엉뚱한 길로 걸어 들어간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흔들리는 두려움. 하지만 키르케고르는 바로 그 불안을 정면으로 통과할 때에만, 타인의 복제품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의 고유한 존재가 탄생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몽크가 건반 위에 꽂아 넣은 그 외로운 불협화음이야말로 바로 키르케고르가 말한 단독자의 소리였다. 비밥의 모든 연주자들이 번개 같은 속도로 화려한 스탠더드 스케일을 질주하고 있을 때, 몽크는 홀로 피아노 앞에 멈춰 서서 아무도 짚지 않는 낯선 반음을 짚었다. 그것은 대중의 갈채를 구걸하지 않고, 다수의 취향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며, 오직 자신의 귀와 마음에 정직한 음을 끝까지 밀어붙인 자만이 낼 수 있는 단단한 고립의 선언이었다.
식탁의 어색한 침묵을 바라보며
다시 소란스러운 식당의 둥근 식탁으로 돌아와 본다.
사람들의 말소리는 여전히 막힘없이 이어지고, 잔들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허공을 맴돈다. 그 속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대화와의 어긋남, 혹은 내 안에서 피어오르는 낯선 이질감에 더 이상 당황하거나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매끄러운 대화의 리듬에 발을 맞추지 못하고 잠시 어색한 침묵 속에 머무는 순간은, 내가 어딘가 모자라거나 뒤처졌다는 증거가 아니다.
틀린 음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다음 화음의 길을 찾아가듯, 혹은 말할 수 없는 한계 앞에서 담담한 쉼표를 짚듯, 우리에게도 다수의 안전한 합창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내 안의 고유한 음색을 가만히 응시할 시간이 필요하다. 남들이 들려주는 정답 같은 멜로디에 무작정 얹혀가는 대신, 조금 삐걱거리고 어색할지라도 나만의 건반을 꼿꼿하게 내리누르는 그 단독자의 용기.
식탁 위의 대화가 다시금 정해진 방향으로 빠르게 흘러갈 때, 당신이 가슴속에서 조용히 쥐고 있는 그 낯설고 투박한 다음 음은 무엇일까.
출처
- Søren Kierkegaard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Stanford University원전
- Brilliant Corners - Thelonious Monk (1956) (National Recording Registry)Library of Congress원전
- Thelonious Monk Advice (Steve Lacy Notes, 1960)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 Existentialism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Stanford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