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 053
인생이라는 무대의 투자자들
Investors on the Stage of Life
내 삶이 개연성 있는 소설이어야 한다는 기대와 모든 결과를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을 내려놓을 때 시작되는 진짜 선택.

일요일 늦은 밤,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 화면에는 다음 주를 위한 일정표가 분 단위로 채워져 있다. 오전 아홉 시 회의, 오후 두 시 보고서 마감, 저녁 일곱 시 운동까지 빈틈없이 정돈된 네모 칸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완벽하게 준비된 각본을 손에 쥔 연출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나 월요일 아침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그 정교한 도표는 어김없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출근길 지하철은 신호 장애로 멈춰 서고, 거래처에서는 예고도 없던 긴급 수정 요청 메일이 날아오며, 점심 무렵에는 믿었던 동료가 갑작스러운 결근 소식을 전한다.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공들여 짠 계획표는 붉은 취소선으로 뒤덮인다.
그럴 때마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다. 깊은 억울함이다. 내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왜 세상은 내 계획대로 한 번을 움직여주지 않는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창밖을 멍하니 내다볼 때, 우리는 어긋난 일정 자체보다 계획이 배신당했다는 사실에 더 깊이 상처받는다.
이 억울함의 밑바닥에는 우리가 오랫동안 학습해 온 세 가지 비유가 숨어 있다. 삶의 '주인공'이라는 믿음, 삶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는 착각, 그리고 무대 전체를 지휘하는 '감독'이라는 강박이다.
우리가 소비하는 무수한 서사 속에서 주인공은 특별한 존재다.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이 길을 잃거나 시련에 부딪히는 것은 오직 후반부의 각성과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한 필연적인 장치다. 우리는 은연중에 자신의 일상에도 그와 같은 법칙이 작동하리라 기대한다. 지금 겪는 이 번거로운 고난과 좌절 뒤에는 언젠가 나를 영웅으로 만들어줄 멋진 결말이 기다리고 있어야 마땅하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불운이 닥치면 그것을 중립적인 사건으로 보지 못하고, 세상이 나를 악의적으로 차별하거나 배신한 것처럼 여긴다.
스스로를 인생의 작가로 여기는 태도는 또 다른 덫을 놓는다. 작가는 백지 위에 인과관계를 설계하고 복선을 까는 사람이다. '노력에는 합당한 보상이 따라야 하고, 고통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문학적 개연성을 현실에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는 무자비할 만큼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불행은 복선도 없이 불쑥 들이닥치며, 열심히 쓴 원고를 되돌릴 퇴고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삶이 개연성 있는 소설이어야 한다는 고집은, 설명되지 않는 우연 앞에서 우리를 더 깊은 환멸로 몰아넣는다.
여기에 모든 것을 연출하려는 감독의 욕망이 겹쳐진다. 무대 위의 동선과 조명, 다른 인물들의 대사, 심지어 날씨까지 전부 내 손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정해진 대본도, 리허설도 없는 거대한 우발성의 장이다. 상대역은 내 큐 사인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예보에 없던 소나기는 무대 장치를 적신다. 모든 것을 지휘하려 할수록 통제할 수 없는 세상과의 불화는 커질 뿐이다.
그렇다면 대본을 찢어버리고 무대 뒤편으로 도망쳐야 할까. 아니면 모든 것은 운명이라며 객석 구석에 웅크린 채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해야 할까. 17세기의 사상가 블레즈 파스칼은 저작 《팡세》에서 인간의 이러한 난처한 처지를 냉정하게 짚었다. "당신은 이미 배에 올라탔다." 안전한 관람석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거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배 위에서, 우리는 좋든 싫든 자신의 한 번뿐인 생을 걸고 매 순간 선택을 내려야만 한다.
이 선택의 감각을 생생하게 들려주는 소리가 있다. 웨인 쇼터 콰르텟이 2001년 유럽 투어 실황을 담아 발표한 《Footprints Live!》의 첫 곡, 〈Footprints〉다.
1966년 그가 처음 녹음했던 원곡의 익숙한 마이너 블루스 멜로디는 이 무대에서 거의 흔적만 남은 채 해체된다. 피아니스트 다닐로 페레즈는 예측하기 힘든 불협화음을 툭툭 던지고, 드러머 브라이언 블레이드는 일정한 박자를 지키는 대신 파도처럼 솟구치는 변칙적인 타격을 쏟아낸다. 색소폰을 쥔 웨인 쇼터는 다른 연주자들을 자신의 지휘 아래 복종시키려 들지 않는다. 그는 정해진 템포를 지키라고 손짓하지도 않고, 불협화음이 튀어나왔다고 해서 연주를 멈추지도 않는다. 대신 동료들이 던져 올린 불확실한 소리의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빗나간 소리처럼 들리는 순간조차 다음 멜로디를 밀어 올리는 발판으로 삼아 길을 열어간다.
쇼터는 생전의 대화에서 재즈의 본질을 이렇게 요약했다. "재즈는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용기다." 무대 위의 연주자는 정해진 각본을 강요하는 작가도, 모든 음의 결과를 통제하는 감독도 아니다. 그는 다음에 무슨 화음이 밀려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이 가진 한 호흡과 음표를 어디에 실을지 선택하고 그 결과를 감당하는 사람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삶을 주인공이나 작가, 감독의 틀에서 벗어나 '투자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배우게 된다.
투자자는 시장을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시장이 내 뜻과 반대로 요동친다고 해서 허공에 대고 삿대질을 하거나 억울해하지도 않는다. 세상은 본래 수많은 타자의 욕망과 우연이 얽혀 돌아가는 불확실한 공간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지닌 주도성은 결과를 통제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한정된 자본을 어디에 배분할 것인가를 선택하고, 예상이 빗나갔을 때 미련 없이 손을 털고 일어나 다음 선택을 준비하는 결단에서 나온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저작들을 통해 세상이 인과적인 이야기로 설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그는 결과를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을 비판하며, 하방의 위험을 틀어막고 자신의 생을 직접 거는 사람만이 진짜 배움에 도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상을 통과하는 우리의 선택은 탈레브의 차가운 셈법이나 파스칼의 비장한 결단과 다른 길로 뻗어나간다. 파스칼의 내기는 영원한 구원이라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목적지를 향해 모든 것을 던지는 일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우리의 삶에는 단 하나의 최종 목적지란 없다. 우리는 작은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이 어그러지면 다시 길을 수정하며 나아가는 열린 과정을 통과한다.
탈레브의 사유 또한 확률적 방어와 철저한 손익 계산에 집중하지만, 보통의 인간은 냉정한 금융 기술자로만 머물 수 없다. 우리는 때로 손해가 빤히 보이는 일에도 소중한 친구를 위해 밤을 새우고, 상처받을 가능성을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으며, 성공이 불확실한 일에 시간과 체력을 던진다. 그것은 어리석은 계산 착오가 아니다. 유한한 존재가 우연의 거대한 파도 앞에서, 내가 가진 가장 귀한 밑천을 어디에 쓸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며 존재의 의미를 새기는 실존적인 선택이다.
결국 주인공이라는 환상을 내려놓는 일은 나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체념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이 나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꽃길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맑은 자각이다. 내 삶이 완벽한 기승전결을 갖춘 소설이어야 한다는 작가의 강박을 버리고, 모든 상황을 지휘할 수 있다는 감독의 오만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뜻밖의 소나기 속에서도 우산을 고쳐 쓰는 법을 배운다.
이번 주에도 우리의 일정표는 어김없이 흔들릴 것이다. 공들여 준비한 기획은 거절당할 수 있고, 다정했던 관계는 사소한 오해로 삐걱거릴 수 있으며, 퇴근길의 피로는 예상보다 무거울 것이다.
그 순간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며 허탈해할 필요는 없다. 각본이 틀어졌다기보다 애초에 각본 같은 것은 없었을 뿐이다. 세상이라는 거친 무대는 언제나 변동성으로 가득 차 있고, 우리는 그 한복판에서 오늘 내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과 마음이라는 밑천을 어디에 둘지 고민하는 한 사람의 투자자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결말에 도달하는 일이 아니라, 뜻밖의 실패 앞에서도 다음 선택을 내릴 수 있는 내 몫의 주도성을 잃지 않는 일이다.
출처
- Pensées (Édition Brunschvicg / Lafuma)Éditions Guillaume Desprez (Blaise Pascal, 1670) / Garnier-Flammarion원전
- Fooled by Randomness & Skin in the GameRandom House / Penguin Books (Nassim Nicholas Taleb, 2001, 2018)원전
- Footprints Live! (Verve 314 589 679-2)Verve Records (Wayne Shorter Quartet, 2002)원전
- Footprints: The Life and Work of Wayne ShorterJ.P. Tarcher/Penguin (Michelle Mercer, 2004)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