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여덟 시, 옷장 문을 열면 빽빽하게 맞닿은 옷걸이들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딪친다. 셔츠와 재킷, 두툼한 코트들이 틈 하나 없이 끼어 있어 옷 한 벌을 꺼내려면 양손으로 옆의 옷들을 힘겹게 밀어내야 한다. 옷걸이가 휘어질 정도로 옷이 넘쳐나는데도, 우리는 거울 앞에서 한숨을 내쉬며 익숙한 혼잣말을 되뇐다. '입을 옷이 정말 하나도 없네.'
침대 머리맡의 스마트폰에는 어젯밤 무심코 결제한 쇼핑 앱의 배송 완료 알림이 떠 있고, 현관문 앞에는 아직 뜯지도 않은 택배 상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지난 계절에 사두고 서너 번밖에 걸치지 않은 옷들이 옷장 구석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동안, 우리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쓸어내리며 또 다른 옷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옷장은 이미 미어질 듯 빽빽한데, 마음속의 허기는 조금도 채워지지 않는다.
돌아보면 우리의 방과 일상은 온통 무언가를 사들이고 채워 넣는 일로 뻑뻑하다. 서랍을 열면 쓰지 않는 물건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뒤엉켜 있고, 책장에는 언제 샀는지 제목조차 가물가물한 책들이 틈새를 메우고 있다. 채우지 않고 비워두면 유행에 뒤처지거나 무언가 결핍된 사람처럼 느껴지는 불안이 우리를 쇼핑 앱의 결제 버튼 앞으로 끊임없이 밀어붙인다.
왜 우리는 옷장에 빈 옷걸이를 가만히 두지 못하고 안달하는 것일까. 왜 방의 모든 빈자리를 물건으로 빽빽하게 채워야만 안도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마주하는 근원적인 불안 때문일지 모른다. 있는 그대로의 단출한 내 모습으로는 세상에 당당히 설 자신이 없기에, 사람은 화려한 옷과 물건들을 겹겹이 걸치며 자아의 갑옷을 만든다. 무언가를 사들이고 소유를 덧붙이는 일은 너무나 쉽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방 안으로 물건이 쏟아져 들어오는, 익숙하고 손쉬운 관성의 힘이다.
그러나 여러 가닥의 실이 한데 뒤엉켜 풀 수 없게 되듯, 물건이 방을 점령할수록 공간의 숨통은 조여오고 일상의 호흡은 가빠진다. 옷장이 빽빽해질수록 아침마다 무엇을 입어야 할지 더 깊은 혼란에 빠지고, 소유가 늘어날수록 정작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고유한 스타일과 몸의 리듬은 물건들의 소음 속에 파묻혀 길을 잃는다. 건반의 모든 틈을 음표로 메우려다 정작 음악을 질식시켜 버리는 연주자처럼 말이다.
1930년대 미국의 재즈 무대 역시 그러한 과밀함의 열기로 뜨거웠다. 당시 피아노 건반을 지배하던 것은 스트라이드 피아노의 현란한 양손 기교였다. 왼손은 쉴 새 없이 저음의 베이스와 화음을 오가며 도약하고, 오른손은 눈부신 속도의 16분음표 아르페지오로 건반의 모든 틈을 메웠다. 마치 온갖 화려한 레이스와 장식으로 건반을 겹겹이 치장하듯, 피아니스트들은 한 마디의 여백도 허락하지 않고 음표를 쏟아부었다. 많이 치고 빈틈없이 채우는 것만이 최고의 실력으로 인정받던 시대였다.
하지만 캔자스시티에서 자신의 밴드를 이끌기 시작한 카운트 베이시는 정반대의 길로 걸어 들어갔다. 청년 시절 할렘에서 정통 스트라이드 피아노의 화려한 주법을 완벽하게 익혔던 그였지만, 빅밴드의 건반 앞에 앉았을 때 그는 그 무거운 장식의 겉옷을 모조리 벗어던졌다. 왼손의 묵직한 반주를 완전히 지워버렸고, 심지어 곡의 절반 가까이를 아무것도 치지 않은 채 가만히 건반에서 손을 떼고 있었다.
그 침묵은 옷이 없어서 헐벗은 결핍이 아니었다. 베이시의 곁에는 베이스의 월터 페이지, 어쿠스틱 기타의 프레디 그린, 드럼의 조 존스로 이루어진 단단한 리듬 섹션이 있었다. 조 존스는 쿵쾅거리던 무거운 베이스 드럼 대신 가벼운 하이햇 심벌로 박자를 쪼개며 비트 사이에 맑은 공기가 통하게 만들었고, 프레디 그린은 앰프도 없는 기타로 매 마디 네 번의 박자를 흔들림 없이 짚으며 리듬의 맥박을 뛰게 했다.
동료들이 받쳐주는 리듬의 바닥이 완벽했기에, 베이시는 굳이 자신이 온갖 음표를 걸치고 무대를 메울 필요가 없었다. 그는 밴드의 호흡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혼 섹션이 치고 들어올 가장 절묘한 순간에 고음역에서 단 두세 개의 음만 톡 떨어뜨렸다. 군더더기를 모조리 털어낸 그 몇 개의 단음과 쉼표는, 16인조 빅밴드 전체에 폭발적인 스윙의 탄력을 불어넣었다.
1957년 녹음된 명반 《The Atomic Mr. Basie》의 대표곡 〈Li'l Darlin'〉을 들으면 그 절제의 무게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원래 빠른 템포로 쓰였던 이 곡을 베이시는 걸음마를 떼듯 극단적으로 느린 템포로 늦추어 연주하도록 했다. 박자와 박자 사이의 공간이 광활하게 벌어졌고, 그 벌어진 여백 속에서 베이시의 피아노는 오직 꼭 필요한 자리에만 작은 점을 찍듯 단음을 떨어뜨린다. 피아노가 소리를 아끼고 숨을 고르는 동안, 브라스 섹션은 억지스러운 힘을 뺀 채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으로 공기 중에 화음을 펼쳐놓는다. 베이시는 훗날 자서전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모든 음을 다 칠 필요는 없다. 오직 좋은 음만 치면 된다고.
채우지 않고 비워둠으로써 오히려 쓰임을 완성하는 이 역설은, 매일 만지는 사물들의 구조를 담담하게 짚어낸 노자의 오래된 통찰과 맞닿아 있다. 기원전 6세기, 그는 《도덕경》 11장에서 눈앞에 놓인 일상 사물들의 이면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는 수레바퀴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퀴에는 서른 개의 나무 살이 빽빽하게 모여들지만, 정작 수레를 굴러가게 만드는 것은 한가운데 뚫려 있는 빈 축통이다. 진흙을 정성껏 빚어 단단한 그릇을 만들지만, 음식을 담을 수 있는 것은 흙이 아니라 그 안의 텅 빈 공간 덕분이다. 벽을 쌓고 지붕을 얹어 방을 짓지만, 사람이 드나들고 빛이 통할 수 있는 것은 벽이 아니라 뚫려 있는 문과 창문이라는 빈 틈 덕분이다. 그리고 노자는 간결한 문장으로 결론을 맺는다. 형태가 있는 것(有)이 우리에게 편의를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진짜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은 비어 있는 것(無)의 작용이다.
옷장 역시 마찬가지다. 옷장은 옷걸이에 걸린 옷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을 때 쓸모를 얻는 것이 아니다. 옷과 옷 사이에 바람이 통하고, 손을 뻗어 옷을 고를 수 있는 빈 여백이 남아 있을 때 비로소 옷장은 제구실을 한다. 빈틈없이 꽉 채워진 옷장은 옷장이 아니라 그저 옷들의 무덤일 뿐이다. 물건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메워진 방이 더 이상 방이 아니라 창고로 전락해 버리듯 말이다.
비어 있음이 사물의 진짜 쓸모를 빚어낸다는 노자의 생각은 베이시의 절제된 건반과 고스란히 겹쳐 보인다. 그러나 두 사람이 비움을 통해 도달하고자 했던 자리는 사뭇 달랐다.
노자가 바라본 비움은 세속의 번잡한 소유욕과 지식을 내려놓고, 말없이 운행하는 자연의 도에 닿으려는 형이상학적이고 탈속적인 무위의 세계였다. 그것은 소란스러운 인간 세상을 한 걸음 물러나 관조하는 은둔의 깊이에 가까웠다.
그러나 카운트 베이시가 무대 위에서 보여준 비움은 탈속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대라는 가장 치열하고 떠들썩한 현장 한가운데서, 동료 연주자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선택한 지극히 구체적인 앙상블의 태도였다. 자신이 건반을 덜 쳐야 베이스의 선율이 또렷해지고, 자신이 소리를 멈춰야 관악기의 숨소리가 살아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는 기꺼이 무거운 기교의 겉옷을 벗어던지고 여백을 지켰다.
베이시의 덜어냄은 칠 줄 몰라서 남겨둔 무능의 공백이 아니다. 현란한 스트라이드 주법을 완벽하게 장악했던 사람만이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절제이자 경청이었다. 손에 닿는 대로 물건을 사들이고 복잡함을 덧붙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손쉬운 관성이지만, 불필요하게 얽힌 것들을 털어내고 오직 꼭 필요한 좋은 음만 남기는 단순함은 단단한 내면의 훈련과 용기를 요구한다. 동료의 소리를 믿지 못하는 연주자가 결코 건반에서 손을 떼지 못하듯, 빈 옷걸이 하나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 역시 겹겹의 겉치레를 걷어낸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기 어렵다.
다시 아침의 옷장 앞으로 돌아온다. 여전히 옷걸이들은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빽빽하게 서 있고, 스마트폰 화면에는 새로운 계절의 상품들이 화려하게 반짝인다.
하지만 결제 버튼을 누르기 전에, 옷장 문을 열고 한숨을 내쉬며 새 옷을 찾아 헤매기 전에, 우리는 잠시 손가락을 멈추고 빈 옷걸이 서너 개분의 여백을 허락해 볼 수 있다. 지난 계절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옷들을 덜어내고, 옷과 옷 사이에 아침 바람이 지나갈 길을 터줄 수도 있다.
모든 것을 다 사들이고 채우지 않아도 내 삶은 초라해지지 않는다. 음악이 모든 건반을 다 치지 않을 때 비로소 스윙하듯, 옷장의 틈을 열어두고 건반에서 손을 뗀 그 담담한 여백 속에서 내 몸에 꼭 맞는 옷과 하루의 경쾌한 리듬이 시작된다. 손아귀에 쥐고 있던 채움의 안달을 조금 덜어낼 때, 비로소 내 방에도, 내 삶에도 바람이 드나들 문과 창문이 활짝 열린다.
출처
- Good Morning Blues: The Autobiography of Count BasieRandom House / Da Capo Press (Albert Murray)원전
- The Swing Era: The Development of Jazz, 1930–1945Oxford University Press (Gunther Schuller)원전
- Daodejing (道德經)Chinese Text Project / Penguin Classics (Translated by D. C. Lau)원전
- The Atomic Mr. Basie (Basie)Roulette Records (SR 52003) / Verve Music Group원전
- Simple Made EasyStrange Loop Conference (Rich Hickey Keynote)원전
- The Birth of Bebop: A Social and Musical History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Scott DeVeau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