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ARDS / 개념
스토아 철학
Stoicism
스토아 철학(Stoicism)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발전한 실천 철학으로,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조건(운명, 타인의 시선, 결과)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내면의 판단과 선택에 집중함으로써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정(아파테이아)에 도달하려는 태도를 가리킨다.
어디서 나온 말인가
스토아 철학(Stoicism)은 기원전 3세기 초, 키프로스 출신의 사상가 제논(Zenon)이 아테네 아고라의 채색 주랑(Stoa Poikile, 스토아 포이킬레) 기둥 아래에서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태동했다. '스토아'라는 명칭은 창시자의 이름이 아니라, 비바람을 피해 누구나 모여들어 사유를 나누던 공공 주랑 복도에서 유래했다.
이 학파는 헬레니즘을 지나 고대 로마 제국 후기에 이르러 가장 강력한 실천적 지혜로 만개했다. 로마 시대 스토아를 이끈 세 사람의 신분은 사회의 양극단에 있었다. 에픽테토스는 절름발이 노예였고, 세네카는 제국의 부호이자 정치가였으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제국을 다스리던 황제였다. 신분과 처지는 판이했으나, 세 사람은 격변하는 세계와 정치적 불안 속에서 내면의 자율성을 지켜내기 위해 같은 삶의 기술을 필요로 했다.
스토아 철학의 핵심 명제는 에픽테토스의 저작 《엥케이리디온》(도덕 편람) 첫 문장에 명료하게 요약되어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가운데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고,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
에픽테토스는 생각, 충동, 욕망, 선택처럼 스스로의 의지로 주관할 수 있는 영역을 '우리에게 달린 것'으로 보았다. 반면 육체, 재산, 명성, 타인의 평판, 질병이나 죽음처럼 인간의 뜻대로 좌우할 수 없는 외부 조건을 '우리에게 달리지 않은 것'으로 갈랐다. 스토아 철학은 이 두 영역을 명확히 분리하는 인식의 결단에서 출발한다. 바꿀 수 없는 일에 매달릴 때 인간은 불안과 원망에 갇히지만, 선택할 수 있는 판단에 집중할 때 비로소 자유를 획득한다는 통찰이다.
흔한 오해
현대어에서 '스토익(stoic)'은 슬픔이나 고통 앞에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냉혈한, 혹은 즐거움을 거부하는 고행자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고대 스토아 철학자들이 추구한 삶은 감정을 기계처럼 거세한 무감각이 아니었다.
스토아 철학이 물리치고자 한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 그 자체가 아니라, 그릇된 판단에서 비롯된 파괴적 격정(pathe)이었다. 예컨대 천둥소리에 놀라거나 위험 앞에서 가슴이 뛰는 신체적 반응(propatheia)은 피할 수 없는 본능이다. 스토아 철학은 이 반응을 억누르지 않는다. 그들이 경계한 것은 그 뒤에 붙는 인간의 과장된 동의(assent)다. 실패를 겪었을 때 '내 인생은 끝났다'라거나, 험담을 들었을 때 '저 사람을 응징해야만 한다'라며 사태를 비약시키는 맹목을 문제 삼았다.
따라서 스토아가 지향한 '아파테이아(Apatheia)'는 감정이 메마른 무관심이 아니라, 헛된 집착과 격정에서 벗어난 맑고 평온한 마음 상태를 뜻한다. 세네카는 《마음의 평정에 관하여》에서 친구 세레누스에게 무작정 세상을 등지라고 권하지 않는다. 이웃과의 교제와 사회적 책무를 성실히 이행하되, 그 모든 조건이 운명에 의해 거두어질 수 있음을 알고 지나친 집착을 내려놓으라고 조언한다.
또 다른 오해는 스토아 철학을 세상의 부조리 앞에서 물러서는 수동적 체념이나 숙명론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통제할 수 없는 결과는 의연히 수용하되, 그 과정에서 쏟는 노력과 도덕적 의무에는 누구보다 전력을 다했다.
스토아 학파는 이를 '활을 쏘는 궁수'에 빗대었다. 시위를 당기고 과녁을 겨누는 일은 궁수의 몫이다. 그러나 화살이 날아간 뒤 명중할지는 돌풍이나 목표물의 움직임에 달려 있다. 참된 궁수는 쏘는 행위 자체에 정성을 쏟을 뿐, 빗나간 화살을 두고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되 과정에 온 정성을 바치는 태도가 스토아의 윤리다.
그가 삶에서 도달한 태도
스토아 철학자들의 사유는 안락한 서재에서 나온 이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쟁, 역병, 모함과 유배라는 벼랑 끝에서 자기 삶을 지켜내기 위해 건져 올린 생존의 태도였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생애가 그 증거다. 그는 재위 기간의 상당 부분을 도나우강 유역의 진흙탕 군사 막사에서 보냈다. 게르만족과의 처절한 전쟁을 치르는 동안 제국에는 안토니누스 역병이 번져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신임하던 장군 카시우스는 반란을 일으켰다. 황제 개인적으로는 자녀 여덟 명을 먼저 떠나보내는 비극을 겪었다.
북방의 겨울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전쟁터 천막에서 작은 등불 아래 《명상록》을 썼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책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비극 속에서 자신을 다잡기 위한 독백이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외부의 사건이 너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건에 대해 네가 내린 판단이 너를 괴롭히는 것이다. 그 판단을 지워버리는 힘은 지금 너 자신의 손안에 있다.'
그는 전쟁과 역병을 한탄하며 멈춰 서지 않았다. 파도를 멈추려 애쓰는 대신, 흔들리는 배 위에서 중심을 잡는 일에 몰두했다. 반란을 일으킨 장군이 살해되어 목이 도착했을 때도, 황제는 환호하지 않고 그를 직접 용서할 기회를 놓쳤다며 애통해했다. 외부의 잔인함이 내면의 품위까지 무너뜨리지 못하게 막아선 것이다.
세네카 역시 네로 황제의 변덕과 정적들의 모함 속에서 위태로운 나날을 보냈다. 억울한 자결을 명령받았을 때, 울부짖는 제자들에게 그는 눈물을 거두라고 말했다. 운명의 가혹함 앞에서 마음의 평정을 지키기로 한 철학의 다짐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분별을 잃지 않았다.
오늘 우리의 한 주에서
월요일 아침부터 한 주를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시로 통제할 수 없는 벽에 부딪힌다. 공들인 기획안이 석연찮은 이유로 반려되고, 약속된 일정은 어그러지며, 지하철은 신호 장애로 연착되고, 주말에는 비가 쏟아진다.
우리는 쉽게 분노하거나 무력감에 빠진다. '왜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가'라며 타인과 환경을 탓하느라 하루의 기운을 소진한다. 그러나 타인의 반응, 날씨, 지나간 과거는 애초에 우리의 통제 바깥에 있다.
스토아 철학은 그 혼란 속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묻는다.
'이 일은 지금 내게 달린 일인가, 달리지 않은 일인가?'
상사의 평가는 상사의 몫이다. 그러나 반려된 문서의 논리를 보완하고 다음 대안을 마련하는 일은 나의 몫이다. 타인의 오해는 타인의 몫이지만, 거기에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내 몫의 태도를 지키는 일은 나의 선택이다. 통제할 수 없는 조건을 쥐려던 손을 펴고 나면, 지금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분명한 영역이 드러난다.
풍랑을 향해 고함치는 항해사는 지칠 뿐이다. 능숙한 항해사는 바람의 방향을 탓하지 않고, 바람의 각도에 맞추어 돛의 밧줄을 고쳐 맬 뿐이다.
퇴근 후 켜진 모니터 앞에서 불필요하게 띄워둔 인터넷 창을 닫는다. 책상 위에 널린 메모지를 정돈하고, 찻잔을 비운 뒤, 오늘 내가 마칠 수 있는 다음 문장 하나를 건반 누르듯 차분하게 써 내려간다. 바깥이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손에 쥔 마우스와 펜의 움직임만큼은 나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 그 명료한 분별 속에서 우리는 한 주를 건너갈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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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스토아 철학의 핵심 명제는 무엇인가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입니다. 외부의 사건, 타인의 평판, 육체의 질병이나 죽음은 인간의 뜻대로 바꿀 수 없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내면의 태도와 이성적 판단은 온전히 나 자신의 통제 아래에 있다는 통찰입니다.
스토아 철학은 모든 감정을 억누르는 금욕주의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스토아 철학이 경계한 것은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대상에 매달리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비이성적 집착과 맹목적인 격정(파토스)입니다. 삶의 무상함을 직시하면서도 지금 마주한 일상과 이웃에 성실히 응답하는 적극적인 실천 윤리입니다.
아파테이아(Apatheia)란 무감각을 뜻하나요?
현대어 '아파시(apathy, 무관심/무기력)'와 달리, 고대 스토아 철학의 아파테이아는 비이성적인 격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맑고 평온한 마음 상태를 뜻합니다. 슬픔이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로봇이 되는 것이 아니라,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정에 휩쓸려 내면의 중심을 잃지 않는 분별력을 가리킵니다.
대표적인 스토아 철학자로는 누가 있나요?
아테네에서 스토아 학파를 창시한 제논을 비롯해, 후기 로마 시대에 노예 출신으로 자유를 가르친 에픽테토스, 네로 황제의 스승이자 정치가였던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그리고 전쟁터 막사에서 자신을 다잡은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대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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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De Tranquillitate Animi (마음의 평정에 관하여)Lucius Annaeus Seneca / 숲원전
- Enchiridion (엥케이리디온 / 도덕 편람)Epictetus / 민음사원전
- Ta Eis Heauton (명상록)Marcus Aurelius / 숲원전
- Stoicism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Stanford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