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ZZY

ESSAY / 018

앞이 잘 안 보일 때는 그냥 발밑만 보고 걷는다

When You Cannot See Ahead, Look at Your Feet

전체 경로를 한눈에 보려는 오만을 내려놓고, 당장 눈앞 2미터의 시야에 집중하는 태도에 관하여.

글
사월
발행일
주제
쇠렌 키르케고르 · 즉흥 · 불안
비오는 거리를 걷는 사람

어제 오후부터 시작된 비가 밤새 그치지 않고 창문을 두드린다. 아침에 일어나 빗물이 맺힌 유리창을 열면, 서늘하고 눅눅한 공기와 함께 도로 건너편의 건물들이 뿌연 안개 뒤로 희미하게 지워져 있다. 차들은 전조등을 켜고 물웅덩이를 가르며 조심스럽게 지나가고, 젖은 보도블록 위를 걷는 사람들은 우산 손잡이를 고쳐 쥐며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음을 재촉한다.

책상 앞에 앉아 차 한 잔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본다. 머릿속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함으로 가득 차 있다. 오랜 시간 당연하게 곁에 머물 줄 알았던 관계가 갑작스러운 이별로 끊어져 버렸거나, 삶의 중요한 축을 이루던 계획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어그러져 내일의 풍경이 송두리째 사라졌을 때 우리는 종종 이렇게 얼어붙는다.

당장 다음 달에 내가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앞으로 이 거대한 상실과 불안의 계절을 어떻게 통과해야 할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무엇 하나 확실하게 약속된 것이 없는 날, 우리는 멍하니 스마트폰 화면이나 빈 벽을 응시한 채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내딛지 못한다.

머릿속으로는 수십 가지의 가능한 시나리오와 최악의 절망을 헤아리느라 숨이 가쁘지만, 정작 현실의 몸은 제자리에 굳어 있다. 방 안에는 처마를 때리는 단조로운 빗소리와 식어가는 찻잔의 온기만이 남아 있다.

지도를 쥐어야만 안심하는 마음의 관성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우리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마비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언제나 '전체 경로를 한눈에 조망하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출발하기 전에 목적지까지 이어지는 모든 교차로와 신호등, 날씨의 변화와 예상되는 장애물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통제하려는 충동이다. 관계든 일상이든 미래든, 끝이 어떻게 될지 확실해질 때까지는 한 발짝도 떼지 않겠다는 이 계산적인 신중함은, 얼핏 보면 매우 합리적인 지혜처럼 보인다.

17세기의 르네 데카르트가 평생을 바쳐 구축하려 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의심의 여지 없는 명석판명한 총체적 지도였다. 그는 『방법서설』에서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오류와 나약함의 근원으로 규정하고, 단단한 이성의 토대 위에 모든 지식과 삶의 계획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연역해 낼 수 있는 완전한 체계를 세우고자 했다.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완벽한 설계도가 손에 쥐어질 때에만 비로소 인간은 오류 없는 확실한 전진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하지만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짙은 안개가 일상을 덮치는 현실의 아침에는, 아무리 정교하게 그려진 지도라도 빗물에 젖어 찢어지기 마련이다. 완벽한 전체 계획을 손에 쥐어야만 비로소 첫걸음을 뗄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시작도 하기 전에 불투명한 미래라는 거대한 그림자 앞에서 무력감에 짓눌린다.

사랑했던 이가 떠나간 자리의 막막함, 몇 년 뒤의 삶에 대한 아득한 불안, 심지어 오늘 저녁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조차 내다볼 수 없을 때, 우리는 안개가 걷히기만을 기다리며 삶을 무한히 유예한다. 지도를 갖지 못한 자의 불안은 그렇게 우리를 침묵과 정체 속에 가둬둔다.

안개 속에서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거리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안개 속에서 지도를 더 꼼꼼히 그리는 대신, 정반대로 자신의 시야를 과감하게 좁히는 방식을 선택했다.

미국의 소설가 E. L. 닥터로는 창작의 막막함과 불확실성을 설명하며 유명한 비유를 남겼다. 그는 글을 쓰는 과정이 마치 캄캄한 밤중에 짙은 안개 속을 자동차로 운전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운전자는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앞쪽 2미터 내지 3미터의 도로밖에 볼 수 없지만, 오직 그 좁은 시야에만 집중하면서도 목적지까지 전체 여정을 무사히 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끝이 어디인지, 10킬로미터 뒤에 어떤 코너가 기다리는지 지금 당장 보이지 않더라도, 눈앞에 드러난 몇 미터의 아스팔트를 정직하게 통과하다 보면 어느새 길은 계속해서 다음 구간을 열어준다.

작가 앤 라모트 역시 그의 저작 『Bird by Bird』에서 거대한 과제 앞에서 마비되었던 어린 시절의 결정적인 일화를 소개한다. 열 살이던 그의 남동생은 석 달 동안 손도 대지 않고 미뤄두었던 방대한 조류 보고서 숙제 때문에 제출 전날 밤 식탁에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다. 수백 마리의 새에 관한 백과사전을 앞에 두고 압도적인 막막함에 질려 있던 아이에게, 아버지는 다정하게 어깨에 팔을 두르며 이렇게 말했다. "새 한 마리씩, 얘야. 그냥 한 번에 한 마리씩만 쓰면 된단다."

이 소박한 태도는 소프트웨어 공학의 역사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어냈다. 엔지니어 켄트 벡은 수백 쪽에 달하는 사전 요구사항을 완벽하게 정의한 뒤 한 번에 거대한 구조를 지으려 했던 '빅 디자인(Big Design Up Front)'의 실패를 목격하고, 테스트 주도 개발(TDD)을 통해 '베이비 스텝(Baby Steps)'이라는 원리를 정립했다.

그는 완성될 거대한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를 상상하며 공포에 떠는 대신, 오직 지금 당장 실패하는 가장 작은 단위의 테스트 케이스 하나를 작성하고, 그것을 통과시킬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코드를 작성한 뒤 다음 걸음으로 넘어가는 방식을 제안했다. 보폭을 극단적으로 줄여 당장 검증 가능한 발밑의 디딤돌 하나에만 집중할 때, 복잡계의 늪은 서서히 길을 내어준다.

재즈 무대 위에 서는 즉흥 연주자의 호흡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32마디의 솔로가 끝날 때까지 펼쳐질 멜로디의 전체 곡선을 사전에 완벽하게 계산해 두고 첫 건반을 누르는 연주자는 없다. 그는 오직 직전 마디에서 울려 퍼진 음의 여운과 불협화음에 귀를 기울이고(Listen & Respond), 지금 자신이 밟고 있는 건반 하나의 코드톤이라는 좁은 제약(Constraint)에 온 감각을 집중하며 다음 마디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서재의 안전함과 삶의 비가역성 사이에서

닥터로나 라모트가 말한 고립된 서재 안에서의 작업은 외부의 충돌이 없는 안전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켄트 벡이 구축한 소프트웨어 공학의 세계에서도 실수가 발생하면 언제든 이전 상태로 코드를 되돌릴 수 있는 '롤백(Rollback)'이라는 강력한 안전장치가 존재한다. 잘못 디딘 발걸음은 터미널 명령어 몇 줄로 깨끗하게 지워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축축한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실제 삶의 거리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성의 세계다. 빗물에 젖어버린 바지는 즉시 마르지 않고, 한 번 내뱉어버린 말과 흘러가 버린 시간은 뒤로 감을 수 없다. 더욱이 타인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함께 살아가는 일상의 앙상블 속에서, 오직 자기 발밑만을 응시한 채 걷는 사람은 곁에 있는 동료의 발을 밟거나 전체의 리듬을 깨뜨리는 고립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렇다면 발밑만 보고 걷는다는 것은 목적지를 잊은 채 무기력하게 표류하는 체념인가?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헤겔의 웅장하고 완벽한 사변 체계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는 역사의 거대한 전개 과정을 높은 곳에서 조망하는 객관적 시스템 안에서는 정작 고통받고 선택해야 하는 구체적인 인간의 실존이 지워져 버린다고 비판했다. 삶은 결코 사전에 완성된 개념 체계로 살아낼 수 없으며, 불확실성과 불안이라는 심연 앞에서 단독자가 매 순간 내리는 결단과 도약 속에서만 비로소 자기 자신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발밑을 바라보는 일은 지도를 찢어버리거나 목적지를 망각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미래라는 통제 불가능한 환상에 빼앗겼던 에너지를 회수하여, 오직 지금 내 힘이 온전히 닿는 유일한 현실인 '당장의 한 걸음'으로 시선을 되돌려놓는 능동적이고 용기 있는 제약의 실천이다.

안개가 걷히기를 마냥 기다리며 문간에 웅크려 있는 사람은 영원히 맑은 날의 환영 속에 갇히지만, 안개가 자욱한 채로 눈앞 2미터의 젖은 보도블록 위로 작은 발걸음을 정직하게 딛는 사람은 이미 비를 뚫고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오늘 아침 눈앞을 밝히는 2미터의 시야

창밖의 빗줄기는 여전히 일정한 리듬으로 유리창을 적시고 있다. 뿌옇게 번진 창틀 너머의 세상은 여전히 자신의 전체 윤곽을 명쾌하게 드러내 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안개가 완전히 걷히고 하늘이 개일 때까지 마냥 출발을 미룰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10년 뒤의 장대한 청사진이나 완벽하게 검증된 성공의 경로표가 아니다. 텅 빈 방 안에서 차가워진 손으로 따뜻한 차 한 잔을 끓이는 일, 헝클어진 방 안에서 당장 갤 수 있는 옷가지 하나를 개어두는 일, 책상 위에 펼쳐진 빈 화면의 첫 문단을 조용히 써 내려가는 일처럼, 지금 당장 내가 만질 수 있는 가장 작은 매듭 하나에 손을 얹는 일이다.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앞쪽 2미터의 시야는 초라하고 좁아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빛이 닿는 곳으로 차분히 발을 옮기는 순간 다음 2미터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그렇게 이어진 지극히 작은 보폭들이 쌓여 결국 우리를 가야 할 목적지의 문턱으로 데려다준다.

오늘 아침, 당신의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안개는 얼마나 깊고 자욱한가. 그리고 그 불투명한 풍경 속에서, 당신이 지금 당장 정직하게 발을 딛을 수 있는 눈앞 2미터의 자리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출처

  1. The Art of Fiction No. 94 (E. L. Doctorow)The Paris Review원전
  2. Bird by Bird: Some Instructions on Writing and LifePantheon Books / Anchor원전
  3. Test-Driven Development: By ExampleAddison-Wesley Professional원전
  4. Concluding Unscientific Postscript to Philosophical FragmentsPrinceton University Press원전
  5. A Discourse on the MethodOxford University Press원전
  6. Everybody Digs Bill EvansRiverside Records / Discogs원전
  7. The Köln ConcertECM Records / Discogs원전